눈을 감아도 파도가 보여

기사문 서핑 로그_2

by 민지숙

태국 꼬따오에서 처음 다이빙을 배울 때가 그랬다. 하루 종일 수영장과 바다, 언덕 위에 있는 숙소를 오가는 매일이 이어지자 어느날부턴가 눈을 감아도 눈앞에 계속 파도가 밀려왔다. 꿈속에서도 바다가 나오고, 샤워기 물줄기에서도 조류가 느껴진다는 상상을 하게 됐다. 물놀이에 이렇게까지 진심이 될 수 있다니. 신기할 정도로 바다와 한 몸이 되어가는 나날이었다.

여름 끝물에, 한 계절씩 늦게 찾아오는 바닷물의 온도가 이제 딱 놀기 적당해졌다. 롱제인을 입고 하루 종일 물에 있어도 마냥 괜찮은 날씨에 온몸이 새카맣게 타버렸다. 일출 서핑하다 배가 고프면 초코파이 하나 먹고 다시 물에 들어간다. 서너 시간 지나 점심시간이 되면 라면이나 매운탕을 먹고 다시 바다에 들어간다. 좋은 파도를 잡아보려 아등바등하다 해변에 나와 잠깐 낮잠을 잔다.


파도가 올라오는 선셋. 분홍빛 하늘 아래 사람들과 웃고 떠들면서 하는 서핑에 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컴컴한 어둠에 더 이상 수평선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또 패들패들. 더 이상 팔이 저어지지 않을 때까지 버티다가 나와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맥주를 한잔 마신다. 그렇게 하루 종일 들어가 있어도 눈을 감으면 컬이 선 파도가 계속해서 다가온다.


에메랄드빛 동남아 바다도 아니고 동해 바다에 이렇게까지 빠지게 될 줄이야. 아파트 대신 해변가 장박 텐트 생활을 시작하면서 증상은 더 심해졌다. 술 몇 잔에 곯아 떨어졌다가도 이른 새벽 누군가 보드에 왁스 올리는 소리에 잠이 깬다. 해가 뜨면 또 입수. 스스로 약간 미친 사람 같다가도 바닷물에 몇 발자국 몸을 담글수록 “살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어제 하루 쌓였던 근육통이 저절로 풀리는 느낌에 취해 또다시 파도를 기다리면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둘씩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