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주민 20%, 30년간 美 방송 듣고 개방의 꿈 키웠다
오늘날 북한의 장마당에선 쌀 한 포대의 가격이면 남한 프로그램이 담긴 CD 한 장을 구입할 수 있다. 북한 사람들은 드라마, 예능과 함께 KBS 1 TV의 <6시 내 고향>을 가장 즐겨보는 프로그램으로 꼽았다. 같은 농촌을 배경을 하고 있지만, 현대화된 기계로 농사를 짓는 모습과 가족들의 자연스러운 대화는 북한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있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닮은 듯 닮지 않은 남한의 일상 모습은 남북한 주민들이 쉽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남북한 프로그램의 교류에는 여전히‘국가보안법’과 같은 규범적 장벽이 존재한다. 북한 역시 체제 안정을 위해 남한 프로그램 시청자를 공개 처형하는 등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물리적으로 전파 월경과 콘텐츠 교류는 가능한 시점이지만 정치 사회의 규범적 제약이 문제가 된다.
매스미디어는 사회 구성원들이 공통적 문화적 규범을 공유하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정 이슈에 관한 사람들의 의견을 단기적으로 전달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사회적 현실에 대한 가치나 규범, 그리고 태도를 장기적으로 형성하게 만든다. 통일 과정에서 독일의 매스미디어는 장기적으로 분단된 사회의 동질성 유지 및 회복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국내 현실과 달리 통일 이전 독일에서는 국경을 넘나드는 방송 및 통신에 있어서 매체가 극복해야 할 언어적, 기술적 걸림돌은 없었다. 매일 저녁 텔레비전 앞에서 실제로 독일은 통일 이전에 다양한 정보 프로그램 및 토론, 뉴스 등을 통해서 동독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끊임없이 그리고 폭넓게 다루었으며, 종합적으로 정리하여 보도하였다. 1989년 헝가리 서부 국경 개방 현장을 서독 방송이 동독으로 생중계 보도하지 않았더라면 동독 주민의 탈출을 재촉하는 촉매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동독 집권당이었던 사통당 정권의 붕괴는 더욱 오래 걸렸을 것이다.
'전파 월경'을 통한 교류를 확대하기 위해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이다. 1985년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쿠바의 민주주의를 촉진한다는 목표로 '라디오 마르티'란 채널을 출범시켰다. 지난 30여 년간 쿠바 주민의 20%는 꾸준히 이 라디오 채널을 통해 쿠바의 국영 언론이 전하지 않는 소식들을 접해왔다. 쿠바 국민들은 미국에서 국경을 넘어온 전파를 통해 민주주의와 시장 개방의 꿈을 키워온 것이다. 라울 카스트로 의장은 지속적으로 국제사회에 이 방송 폐지를 요구했다. 하지만 작년 라디오 마르티에 배정된 예산은 2700만 달러로, 지난 30년간 미국 정부가 7억 달러를 지원했다. 사회주의 국가 쿠바의 변화는 개방과 자유를 원치 않는 국가를 상대로 끈질기게 전파를 송출하는 미국 국가 정책의 기조가 유지되어 온 성과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보안법'과 같이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규제를 없애는 것부터가 정부의 통일 정책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