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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숙 Feb 14. 2016

고통의 역사에 대한 통일된 목소리

과거사 정리를 위해 필요한 것 - 알비 삭스의 <블루 드레스>


처단과 응징, 청산 뒤에는 어떤 단어가 놓여야 할까? 일제 강점기와 미군정, 군사, 자본 독재로 이어진 우리의 근현대사는 정리되지 않은 채 흐르고 있다. '과거사 정리'만큼 우리 국민들이 자신  없어하는 과제가 또 있을까? 우리와 같이 오랜 '고통의 역사'를 겪어온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사례를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이유다.


 만델라 정권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응보가 아닌 화해, 처벌보다 진실을 밝히는 일'에 힘썼다. 가장 먼저 테러와 고문, 인권유린으로 뒤덮인 역사의 진실을 정리하고 바로잡고자 했다. 그들이 택한 방법은 파격적이었는데, 인종차별정책 하에서 일어났던 잔혹행위의 가해자가 자발적으로 나서 진실을 밝힐 경우 모든 민, 형사상 책임에서 면제시켜주는 것이다. 이는 '진실화해위원회'의 제1원칙이 된다.


@ 남아공 대법관이었던 알비삭스의 저서


 죄를 고백하는 것만으로 죗값을 치르지 않아도 되는 건 '부정의' 해 보인다. 하지만 진실을 밝히는 일은 범죄자가 죗값을 치르게 하는 것보다 더 큰 효용을 가진다. 법의 심판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서만 일시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만, 완전히 밝혀진 고통의 역사는 모든 구성원과 미래 세대 전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공유된 가치관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고통의 역사가 충분히 밝혀지고, 그것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사회 공동체의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때 한 사회는 단결되고, 구성원은 안정감을 느끼며, 함께 더 나은 미래를 꿈꿀 희망을 갖게 된다.


 더욱이 과거사,  그중에서도 '고통의 역사'가 지닌 특수한 성격을 고려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남아있는 과거사의 기록은 피해자의 입장 혹은 객관적인 입장에서 쓰인 것이 거의 없다. 역사는 가해자 혹은 승리자의 편이다. 오랫동안 감추어지고 왜곡된 '고통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기 위해선 가해자들의 협조와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사면'은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강력한 유인이다.


 비밀주의와 권위주의는 우리 역사의 어두운 틈바구니 속에 진실을 숨겨왔다. 기록들이 어디에 있는지, 증인들이 누군지도 알 수 없다. 그들은 죽었거나 살아 있어도 증인으로 나서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남아있는 것이라곤 깊은 정신적 충격과 동물적 불신감으로 분열 증세를 보이는 생존자들의 손상된 기억뿐인 경우가 많다.

* 진실화해위원회의 '사면 원칙'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설명한 판결문의 일부.


 고통의 역사에서 '진실의 가치'는 일시에 한 장소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진실이 온전히 밝혀지기까지의  전 과정을 통해 순차적으로 증명된다. 먼저 진실화해위원회에 나선 가해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범죄를 완전히 폭로해야만 하며, 그것은 피해자와의 직접 대면을 전제로 한다. 가해자에게 자신의 저지른 죄에 대한 '수치의 처벌'과 '참회의 기회'가 주어지는 셈이다. 사면위원회는 어디까지나 철저한 검증 절차를 거쳐 제한적으로 사면을 결정한다. 일괄적으로 모든 가해자를 법적 책임에서 자유롭게 해주는 것과는 다르다. 가해자가 자신이 저지른 악행에 대해 공정한 판결을 받는 과정에서 현대사는 고통의 역사와 화해가 가능해진다.


 역사학자 한홍구 씨는 우리나라 역시 일제강점기 직후에 과거사 청산에 대한 적극적인 흐름이 있었다면, '자발적으로' 죄를 고백할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라 안타까움을 표한 적이 있다. 그랬다면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는 서로 화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해자와 그의 후손들  역시 새로운 역사의 구성원으로 '재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죗값을 묻지 않을 것을 전제로 추진되는 과거사 정리는 피해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위원회의 다른 분과에서는 피해자들의 증언이 이어진다. '작은 사람들'을 위한 위원회라고 불리는 이곳에는 처벌과 보상보다 '진실을 말할 기회'를 원하는 사람들이 발언권을 얻는다. 그들은 자신이 겪은 일들이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에 반하는 행위였다는 사실을 인정받고 위안을 얻는다. 그들의 이야기는 텔레비전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되는데, 그 결과 온 국민들이 고통의 역사를 간접 체험하고, '과거사의 증인'이 된다.  당사자뿐만 아니라  제삼자, 모든 세대가 과거 고통의 역사에 동참할 기회를 얻는 것이다.


 이처럼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퍼즐 조각이 맞추어지듯 고통의 역사가 본모습을 드러낸다.


@ 고통에 대한 통일된 목소리

 중요한 것은 그것이 가해자도 피해자도, 이들을 지켜보는 국민들도 모두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공통의 역사'라는 사실이다. 오랜 시간이 걸려 드디어 '고통에 대한 통일된 목소리'가 완성된다. 과거 남아공의 역사는 흑인과 백인, 피해자와 가해자, 테러리스트와 반테러리스의 역사로 분리되어 있었다. 이제는 인종과 이념, 이해관계에 따라  자기 입맛에 맞는 역사를 주장할 수 없다. 적어도 하나의 체스판 위에서 게임을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일단 '고통에 대한 통일된 목소리'를 낸 뒤에야 화해와 공존의 길을 모색할 수 있다.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그 현장에 없었던 다른 세대 사람들이 각자 다른 역사를 이야기한다면 '고통의 역사'는 반복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역사를 이야기할 것이고, 피해자는 고통의 기억에 휩쓸려 객관적 판단을 내리지 못할 수 있다. 직접 대면과 충분한 대화, 토론을 통해 만들어지는 진실만이 과거사 청산 후의 미래를 보여줄 수 있다. 여기에는 단순히 공과 과를 따지고 합리적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물론 사면을 보장하는 방식은 악용되거나 악행에 대한 타협의 여지를 남길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절차의 대전제가 되는 공통의 가치이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고통의 역사를 밝혀야 하는가.의그것이 바로 서지 않으면, 이해관계가 치열하게 맞물린 과거사 정리에 모든 과정이 난관에 부딪힌다. 진실화해위원회는 '회복적 정의'를 운영 가치로 내세웠다. 그것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민들의 전통적 가치인 '우분투'(공생, 다른 사람을 위한 인간애)라는 한 단어로 표현된다.


@ 우분투, 다른 사람을 위한 인간애

 이들이 원하는 것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이해를 위해 과거의 역사를 들추는 게 아니었다. 그 목적은 인종차별주의 정책과 같은 비극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 것.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 그 후손들까지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남아공의 미래를 원했다. 흑인, 백인, 피해자, 가해자를 구분하지 않는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가치 실현'이 위원회 활동의 가장 큰 화두였다. 최종 목표가 분명하고, 그것이 국민 전체에 확고하게 공유되어 있었기 때문에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은 공정성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그 결과 인종차별과 식민지배에 저항해 불가피하게 선택했던 자신들의 테러활동에 대해서도 자성의 목소리를 냈으며, 진실화해위원회를 설립한 만델라 대통령의 부인까지도 인간 존엄성과 생명의 가치에 위배되는 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처벌받았다. 지키고자 하는 가치가 특정  이해관계에 좌우되지 않고, 충분한 대화를 통해 합의에 이른 것이라면 중간 과정에서 변질될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한민국 역시 과거사 청산을 위한 크고, 작은 노력을 해왔다. 반민특위를 설치해 과거사의 진실을 조사하고, 전두환과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통해 과거사와의 화해를 시도하기도 했다.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과거사를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 하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되었다는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반민특위 투서함


 '개별 인간의 존엄'이 아닌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에 집중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독일이 '나치즘'에 대해, 남아공이 '테러리즘'에 대해  강력하게 저항했던 것처럼 대한민국 과거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를 뽑으라면 '집단의식'이 될 것이다. 연고주의, 지역이기주의, 정경유착 모두 도가 지나쳐 변질되어버린 '집단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과거사 청산에 있어서도 개인은 없고 개별 집단이 등장한다. 특정 지역 출신인 것이, 특정 단체 활동을 했던 것이 더 중요한 문제가 된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일대일로 만나 대화하는 경우는 드물고, 과거사 기록에 개인의 목소리를 충분히 담기기 어렵다. 그러면 현장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은 역사적 진실에 공감하기 어려워진다.


 인간 보편의 존엄을 중심에 두지 않으면 도덕적 판단에 이중잣대가 생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있어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바라는 우리 정부가 베트남 여성들에 대해서 먼저 사과하지 않는 것이 대표적이다. 우리 민족, 우리 국민에 갇힌 채로는 우리가 겪은 고통의 역사도 제대로 인정받기 어렵다. 우리 국민들이 고통의 역사에 대해 통일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인의 부재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인식을 흐릿하게 만든다.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지나치게 이기적이 되어도 눈감아 주고, 개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선 소극적이 되어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우리에겐 한 집단, 한 계층 전체만큼이나 한 개인의 생명과 가치를 높이 사는 인식이 필요하다. 집단주의에 저항하는 의지가 사회적으로 공유될 때, 진정한 과거사 정리가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세월호 희생자 개개인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그것을 몇 백명의 사상자가 난 교통사고로 치환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기억을 특정 집단이 겪을 일로 뭉뜨그리기보다 한 분, 한 분 서로 독립적인 개인의 이야기로 서술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처단, 응징, 청산이 지나간 자리에는 상생의 싹이 자라날 것이다. 그 싹은 한꺼번에 큰 나무들로 자라나지 않는다. 수많은 작은 싹들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다른 싹들이 자라는 것을 방해하지 않을 균형을 찾으며 커갈 것이다. 과거사 정리에 있어 개개인의 목소리를 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목소리들의 무게를 평등하게 해주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작은 것은 더 크게, 큰 것은 더 작게. 모두가 한자리에서 대화할 수 있도록 조절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인간 보편의 가치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개인이 더 많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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