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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숙 Feb 16. 2016

2029년, 기자는 '시인'이 되어야 한다.

2400 자정의 뉴스 #1


2400 자정의 뉴스 첫 번째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쓰되 그 속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삶이나 우정이나 성이나  인간관계나 일 등에 대하여 여러분이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것들을 섞어 넣어 독특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 스티븐 킹, <유혹의 글쓰기> 중에서


 스티븐 킹은 어떤 소설을 쓰고 싶어 해도 문제 될 것은 없다고 말했다. 자기가 좋아하고 잘 아는 소재를 쓰는 게 가장 좋다는 것이다. 오히려 작가 자신이 일상적으로 관심을 갖는 소재를 회피하고 다른 사람이 좋아할 것 같은 것들을 택하는 것이야말로 큰 잘못이라고 했다.


 <2400 자정의 뉴스>하루 혹은 며칠간 내가 접한 뉴스 가운데 몇 가지를 모아 한 편의 글로 엮어 쓰는 코너이다. 나는 이 코너의 글쓴이이자 편집자가 된다. 평소 나는 하루 2가지 종류의 일간지를 읽고, 푸시 앱 알림으로 평균 15개 정도의 모바일 뉴스를 접한다. 정기적으로 구독하는 주간지가 하나 있고, 월간지 르디플로를 함께 읽는다. 내게 있어 킹이 이야기하는 '좋아하고', '잘 아는' 소재로 뉴스 기사만 한 것이 없다.  


@ 프랑스 월간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단행본이나 논문에 비해 '실시간'으로 세계 석학들의 글을 읽을 수 있다.

 뉴스 기사는 질문을 하기 위한 '좋은 재료'다. 하지만 뉴스 자체가 곧 좋은 질문을 뜻하지는 않는다. 사실 왜곡되고 편향된 정보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이 제시하는 문제의식 역시 고루하거나 일률적이다. 그럼에도 시시각각 우리에게 질문할 기회를 준다. 적어도 시시각각 새롭게 벌어지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뉴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이 뉴스가 하는 질문이 시의적절한지, 발생한 이슈의 핵심에 대해 묻고 있는지, 나라면 어떤 식으로 기사화했을지. 눈앞의 뉴스 기사를 재료 삼아 나만의 요리를 완성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재료를 가공하지 않고 먹을 것인가, 나만의 조리법으로 하나의 요리를 만들어나갈 것인가. 선택하기 나름이다. 좋은 요리는 곧 좋은 질문이다.


 나는 일간지와 주간지, 종이 신문과 온라인,  흔히 정치/  경제/ 사회/ 국제/  안보 분야로 구분되는 모든 경계를 넘나들고자 한다. 수많은 조각 기사들 사이를 누비며 나만의 문제의식으로 그것들을 엮어보려 한다. 사실 이것은 여가활동이라기보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에 가깝다. 서로 한참 동떨어진 이야기인 것 같은 뉴스들의 연관성을 발견하는 것. 처음에는 어색하고 작위적인 나열에 그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작업을 계속해나가다 보면 정말 '나 자신의 물음'을 제기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갖고 시작한다. 다른 사람이 뉴스 기사화한 물음이 아닌, 내가 책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전해 들은 물음이 아닌 나 자신만의 물음을 발견할 수 있길 바란다.


 오늘의 요리 재료는 '저널리즘의 미래'이다. 지난 2015년도 KBS 방송국의 기자 공채에서는 '로봇 저널리즘의 미래와 기자의 역할'을 물었다. 방송뉴스에서 KBS 채널의 점유율은 종편 출범 후 10% 포인트 이상 줄었다. 종이신문의 구독률을 따지는 일이 의미가 없어졌다. 지금 이 시점에서 예상되는 모든 저널리즘의 미래를 고민하고, 대안을 선점하지 않으면 어떤 메이저 언론도 살아남기 어렵다.


* 영국 대표 일간지 '인디펜던트' 종이 신문 없애고 온라인화 추진


 보도에 따르면 현재 인디펜던트  홈페이지의 하루 조회 건수는 유료 판매 부수의 50배가 넘는다.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는 종이 신문 분야를 포기하고, 온라인 쪽에 집중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활자와 이미지뿐인 종이 매체에서 동영상과 링크, 가상현실이 구현되는 온라인 뉴스 환경으로 빠르게 넘어가는 중이다. 주력 매체들의 경영 전략상 합리적인 선택은 그들의 전환을 더 쉽게 만든다.


* 알리바바, 미 가상현실 스타트업 '매직 리프' 9,500억 규모 투자 주도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의 러브콜을 받은 유니콘 벤처기업, '매직 리프'의 기술은 저널리즘의 미래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매직 리프'의 기술은 말 그대로 소설과 영화 속에서 봤던 그대로다. 우리는 어떤 특수안경을 쓰지 않고도 증강 현실을 볼 수 있다. 농구 경기장 한쪽에서 고래가 뛰어오른다. 내 책상 아래 작은 로봇이 고개를 내민다. 아무런 조작도 거치지 않은 채 눈앞에서 구현되는 화면에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가 구분은 불가능해진다.


https://m.youtube.com/watch?v=W7CNBa3gSZU



 이런 기술이 뉴스 콘텐츠에 적용된다면 어떨까? 뉴스는 더 이상 종이 신문 위의 이야기, 온라인상의 이야기로 남아 있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들의 물리적 현실을 곧바로 파고드는 파급력을 갖게 된다. 어떤 이들은  환경오염, 테러 사태와 같이 현장에 직접 가볼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 사람들이 더 큰 경각심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저널리즘에 가상현실 기술이 적용된 미래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눈앞에 잡힐 듯이 살아 움직이는 뉴스 콘텐츠를, 그대로 믿지 않을 수 있을까? 현재의 관행대로 기득권의 이해만을 대변하는 저널리즘이 이 기술을 사용한다면 그 숨은 의도를 쉽게 간파할 수 있을까? 뉴스 소비자들이 뉴스에 대해 비판적 사고를 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눈앞에 솜털이 복슬복슬한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는데, 이를 경계하며 뒤로 물러서기란 쉽지 않다.


* 로봇 기자 시대 왔지만... 왜, 어떻게는 인간만 쓸 수 있다


 로봇 저널리즘, 가상현실 저널리즘 환경에서 인간인 기자는 목숨을 걸고 두 가지를 찾아야 한다. 육하원칙 가운데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왜(why)', 그리고 '어떻게(how)'다. 첫째, 로봇이 더 신속 정확하게 정보전달용 기사를 작성할 수 있기 때문이고, 둘째, 가상현실 기술로 더 교묘하게 대중을 홀리는 '나쁜 뉴스'가 세를 확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또 본분을 다하기 위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데더 집중해야만 한다.   


@ 현재 쓰이는 기사의 8할은 로봇 알고리즘으로 충분히  작성 가능해 보인다.


 결국 미래에는 '인문학적 사유가 담긴 뉴스'를 쓰는 기자만 살아남을 거라 생각한다. 객관성과 불편부당, 논리적 완결성을 추구하는 글쓰기는 저널리즘에서 자리를 지키기 어려울 것이다. 사람들은 인간의 얼굴을 하고 표정을 가진 뉴스에 반응할 것이다. 더 이상 사람들은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사람이 쓴 뉴스 기사를 읽지 않을 것이다. 더 좋은 질문, 더 깊이 있고 본질적인 물음을 던져주는 새로운 소식에 기꺼이 돈을 지불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외의 것들은 눈과 머리가 피로할 정도로 많이 접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29년. 내가 40살이 되어 내 이름을 걸고 기사와 칼럼을 발행할 수 있는 때가 되면 그렇게 될 것이다. 기자는 더 이상 직업 글쟁이가 아닌 '시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가상을 눈앞에 보여주는 기술이 일반화되고, 신속하고 정확하게 사건 소식을 보도하는 로봇이 기자 업무의 상당 부분을 대신하게 되면 새롭고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고, 알고리즘으로 파악할 수 없는 사실 간의 추상성을 붙잡아 표현해낼 줄 아는 소수의 사람들만 '저널리스트'의 이름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인문학적인 사유가 인간의 삶의 문제에 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것이라고 할 때, 관건은 그 물음이 자기 자신의 물음으로 제기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시인의 불안'을 감내하면서 그런 물음을 물어야 한다. 즉 그 물음은 내가 읽은 책이나, 나를 가르친 선생님, 나를 기른 부모님의 물음을 내가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의 물음은 그 모든 영향으로부터 벗어난 나 자신의 물음인가를 반문해야 한다.

- 이유선, <인문학적 사유와 글쓰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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