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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숙 Mar 30. 2016

누구를 위한 규제 개혁인가

1,382,768개 사업장을 439명의 근로감독관이 담당하는 나라에서

“빅데이터 산업, 규제 풀면 5년 내 52만 명 일자리 생긴다”


규제로 사라진 청년 일자리’   


 어제자(3월 29일) 한국일보 2면 특집기사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틀간의 시리즈 기사를 읽는 중 설득이 되지 않는 부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규제공화국’ 인대 한민국에서 청년들의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선규제 ‘개혁’이 필요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규제를 더 신속하게 많이 없애야 한다는 게 논지이다. 하지만 가장 먼저 인용된 대화문부터 정확히 어떤 규제가 문제인가를 짚어내지 않고 있었다. 결국 전체기사에서 단 하나의 원칙만 등장한다. ‘기업활동에 방해가 되는 규제라면 없애도 좋다’ 뒤이어 관광비자, 면세점 사업, 개인정보 활용 등조 금이라도‘비효율적 규제’ 논란이 있었던 모든 사업분야를 폭넓게 다룬다. 논조는 공정한 시장질서, 사회적 신뢰구축을 위해 고안된 규제라도 수익성(00개의 일자리)만 증명된다면 언제든지 철폐할 수 있다는 식으로 흘러간다. 결국 규제개혁에는 기업 하기 ‘편한환경을 구축하는 목표만 남는다.




1. 관치의 잔재인 행정 규제와 시장경제 규제는 다르다.


"2년 전 공장을 신축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에 건축허가를 신청했더니 차일피일 미루다 자치단체장이 공약으로 내건 지역 숙원사업(체육관 신축)을 우리 회사가 처리해 주면 좋겠다는 요구를 해 오더군요. 허가를 내줘야 하는데도 지자체장이 계속 승인을 미뤄 곤욕을 치렀습니다. 설비 투자는 타이밍이 중요한데 허가권자가 질질 시간을 끌면 그 손해는 기업이 고스란히 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일보가 실시한 ‘규제 개혁 관련 설문조사’에 응한 A기업 최고경영자(CEO)의 하소연이다. 그는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일부 지방 중소도시에는 아직도 각종 인허가 과정에서 공무원들이 대가를 요구하는 관행이 남아있다”며 “지자체와 경찰의 규제 개혁 마인드는 여전히 바닥 수준”이라고 말했다.  
 -한국일보 3월 29일 자 2면 기사 “빅데이터 산업, 규제 풀면 5년 내 52만 명 일자리 생긴다”

  기자 역시 명문화된 규제 제도가 아닌 규제 집행 과정의 잘못된 관행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위 같은 상황에서 A기업 대표를 돕기 위해 필요한 처방은 불필요한 ‘행정규제의 폐지’가 될 것이다. () 주도 시절의 관행 인각 종인 허가절차가 경제활동에 비효율을 조장해 온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분별한 개발 건축을 통제하는 것 역시 정부 규제가 맡아야 할 역할이다. 규제내용 자체는 관할 공무원이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부정부패가 유발된 현실과는 별도로 다루어져야 한다. ‘규제’ 전체를 뭉뚱그려 비판한 결과 모든 규제가 곧 비효율성의 온상이라는 프레임만 부각되었다. 정작 문제는 규제를 둘러싼 각종 관행을 눈감아온 주체들의 도덕성과 자질이다. 하지만 이 인용문 뒤에 이어지는 비판은 관치행정의 비효율성이 아닌 시장 경제에 관련된 규제들로 곧장 이어진다. 행정규제와 시장경제규제 사이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지점이다. 이와 함께 규제를 집행하고 따르는 사람들의 자질과 도덕성의 문제는 가려진다. 가장 먼저 중국인 관광객 의무 비자 입국 허용범위를 늘려야 한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2. 규제 풀면 00만 개 일자리가 생긴다?


 한국을 경유하는 중국인 관광객에 대한 무비자 입국 허용도 그런 예다. 이렇게 규제가 풀리며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은 연간 1만 9,000여 명이나 늘어나고 157억 원의 추가 관광 수익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2013년 432만 명의 중국인 관광객으로 인한 고용 유발 효과가 24만 798명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100명의 중국인 단체관광객을 유치하면 평균 5.57명의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  한국일보 위의 기사    


 더욱이 규제가 철폐되면 경제적 성과가 보장된다는 계산법은 현실을 돌아봤을 때 안일한 숫자 놀음이다. 현재 한국을 다시 찾는 중국 관광객이 갈수록 줄어들고, 체류 기간도 감소하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의 한국 재방문율은 20%에 불과해 이웃나라 일본이 80%에 이르는 것과 대조적이다. 대부분 한국을 싼 맛에 들어왔다 쓴 맛만 보고 돌아갔기 때문이다. 쇼핑 중심에 바가지요금, 별다른 문화 관광 콘텐츠가 구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처럼 지방 도시 투어 중심으로 재방문 관광객들을 위한 다각도 전략을 구상하는 노력은 게을리하면서 비자 규제만 완화한다고 위의 전망과 같은 일자리 창출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재방문율이 개선되어 안정적인 관광 산업이 인력을 고용하지 않는 한, 어쩌다 한 번 싼 맛에 오는 관광객들에게 바가지 씌우는 식의 사업으로는 청년들이 원하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 수 없을 것이다. 준비가 덜된 우리나라엔 비자 규제를 풀어 무작정 관광객 숫자를 늘리기보다 바가지요금, 저가 여행사, 무자격 가이드를 솎아내기 위한 규제를 통해 관광산업의 질을 끌어올리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도움이 되는 전략일 것으로 보인다.        


3. 모든 법은 그 나라의 특수성을 반영한다.


 “5년마다 허가권을 다시 심사받아야 한다는 건 다른 나라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글로벌 유통전문지 영국 무디 리포트의 더못 데이빗 사장이 최근 방한했을 때 한 이야기다.
- 한국일보, 인허가에 파국 내몰려 [규제개혁 없이 미래 없다]   


 맞는 말이다. 우리나라이기 때문에 이런 법이 나온 것이다. 규제 법안은 각 나라의 특수성을 반영한 결과이다. 이 특수성에는 경제 구조의 특수성과 사회적 여론의 풍향도 포함된다. 면세점 특허기간을 5년 이내로 제한한 일명 ‘면세점법’은 현 정부에 들어서 뒤늦게 ‘졸속 입법’이라 비판받고 있지만 2012년 11월 발의 당시에는 재벌 특혜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이 커지는 사회적 분위기로 국민적 지지를 얻었다. 중소중견 기업 제품 판매, 지역 경제 활성화, 이윤의 사회 환원 등의 사회적 기여도가 낮다는 문제가 경제적 효율성보다도 중요한 해결과제로 받아들여지던 때였다. “1분 졸속”이라 비난받을지라로 애초에 사회적 분위기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합법적 절차를 거쳐 국회를 통과할 수 있었던 법안이다. 그간 재벌 기업이 누려왔던 혜택과 비합법적인 고용 승계, 제왕적 지배 구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쌓이고 쌓인 결과였다. 면세점 사업의 이윤이 특정 주체에게 과도하게 집중되며, 그것이 재벌경제구조에서 주변부 중소상업으로 확산되지 않고 있다는 현실 인식이 면세점법이라는 일종의 제어 장치로 가시화된 것이었다.


탈락 면세점 직원들 울렁증, 대인기피증 호소   


 무엇보다 민주공화국이라면 특정 법안이 정식 절차를 밟아 국회를 통과한 이상 법안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수정되기 전까지는 그 룰에 따라야 한다. 하지만 막강한 시장 영향력을 자랑하는 몇몇 경제 주체와 새로운 정치권력은 일단 한 판 열띤 승부를 벌인 뒤에 그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자 아예 판을 엎어버리겠다고 나서고 있다. 새로운 규칙으로 시장 경쟁을 한 결과 낙오된 기업과 20대 국회는 법안 자체를 폐기하고 경쟁의 결과 자체를 뒤집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19대 국회에서 새로운 관세법이 통과된 이후로 재심사까지는 몇 년의 시간이 있었다. 그렇다면 탈락한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과 SK 워커힐 면세점은 스스로가 면세점 사업자 심사에서 탈락할 가능성을 애초에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일까? 승자와 패자가 뒤바뀔 수 있고, 같은 룰로 게임을 하는 공정 경쟁이었지만 관련 직원의 대량 실직사태가 벌어졌으니 나라가 알아서 책임을 지라는 식의 배짱은 재벌 기업이 자신이 소유한 막대한 자본의 영향력을 과시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탈락 면세점 직원들의 울렁증과 대인기피증을 앞세워 면세점법의 잔혹성을 선전하는 것 역시 그간 누려왔던 시장 점유율 90%의 고지를 넘겨주지 않으려는 속셈으로 읽힌다.


 진정 '시장 질서를 위한' 규제 개혁을 주장하고 공정 경쟁의 결과에 순응할 생각이었다면 면세점법 도입에 따라 나름의 대비책을 간구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들은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규제에는 ‘졸속’, ’ 비효율’의 꼬리표를 붙여 민주공화국의 정의 위에 군림하고 있다. (*2014년 기준 국내 전체 면세점 시장점유율은 롯데 50.7%, 호텔신라 30.7%로 둘을 합하면 81.4%나 된다. 서울 시내로만 보면 87%를 차지하고 있는 독과점 구조다. 법안 발의 당시 80% 초반이었던 대기업의 면세점 시장 점유율은 2015년 90%로 높아졌다.)    


4.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규제가 정말 많은가?   


 이 질문에 답을 찾던 중 작년에 읽은 책 한 권이 떠올랐다. 제목은 <노동자, 쓰러지다> ‘르포 - 한 해 2000명이 일하다 죽는 사회를 기록하다’라는 부제가 붙은 책이었다. 우리 사회에 규제가 많은지 적은 지는 잘 모르겠다. 국민 개개인의 도덕성과 사회적 심리 자본이 열 약한 우리나라에 현실적으로 얼만큼의 법적 규제가 필요한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노동자의 생명과 관련된 규제가 충분하지도, 제대로 지켜지지도 않고 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문제는 규제의 숫자가 많고 적음이 아니라 어떤 가치를 위해 규제를 만들고 진정성 있게 이를 지켜나가는가에 달려있었다.


 안전 비용을 부담하기 싫은 마음이야 이해할 수도 있다.
천석꾼 놀부도 밥풀 몇 알이 아까워 주걱을 씻어 흥부 뺨을 때렸다는데,
삼성 놀부, 대림 놀부, 현대 놀부 등등은 오죽할까.
그래서 법이 있고, 사회적 기준이 있는 거다. <노동자, 쓰러지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산재사망률 1위, 10만 명당 21명이 일하다 죽는 ‘산재공화국’이다. 이 책의 저자는 조선소와 건설현장, 코레일과 KT, 우체국과 택배 퀵서비스 배달, 자동차 공장과 대형마트 백화점, 버스 노동자, 간호 노동자의 노동 현장을 쫓아다니며 끈질기게 기록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바로 위의 문장이다. 산업재해 보험으로 대표되는 노동자 안전에 관한 규제 사항을 지키는 일은 곧 비용의 문제이다. 지키지 않을 수만 있다면 가능한 규제를 피하고, 애초에 규제를 없애는 쪽으로 나가고 싶은 게 인간적인 생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각종 법이 있고, 사회적 기준이 존재하는 것이다.


 규제 개혁을 외치는 목소리가 무섭게 들리는 이유는 사람의 목숨에 직결된 규제마저 너무나 쉽게 어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보다 자본의 효율성이 우선인 이 사회에서 각종 규제를 피해 가는 꼼수로 한 해 2천 명의 사람들이 일하다 죽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규제 개혁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면, ‘행정규제의 비효율성’, ‘규제 개혁을 통한 일자리 창출’, ‘면세점 사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이야기하기 전에 사람 목숨이 달린 산업 재해에 관한 규제부터 손봐야 하는 것 아닐까. 청년들의 일자리 역시 생존과 기본적인 안전이 보장된 다음의 이야기일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사례 하나가 함부로 규제 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노동하는 사람들을 위한 규제는 너무 많아도 애초에 신경 쓰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다.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위해 산재 적용률이 낮은 기업일수록 정부의 지원금을 더 받는다고 한다. 그 덕분에 일하다 다치고 병을 얻은 사람들은 혼자 숨죽여 생활고를 감당하고 있다. 면세점에서 쫓겨난 직원들의 미래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재벌의 독과점이 아닌 공정 경쟁 시장에서 현실적으로 장기사업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그 결과 일할 수 없게 된 근로자들의 삶을 책임져주지 못하는 기업에게는 언제나 ‘경제 발목 잡는 규제’라는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 우리 사회에 정말 규제가 많은가? 그리고 정말 규제가 문제일까? 조금 길지만 아래 인용한 한 가지 사례와 몇 개의 숫자, 그리고 한 사람의 연설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대림산업 화학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나 6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을 입자 특별근로감독이 들어왔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1,002건이나 적발됐다. 이 많은 위반 사실을 찾아낸 근로감독관의 노고에 치하를 표하고 싶지만, 그전에 도대체 한 공장에서 천 건 넘는 법을 위반하고 있을 때 노동부와 산 안부 공단 등 정부기관은 뭘 했단 말인가. 현대제철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매년 사고사 끊이지 않는 고로 3호기 건설 현장을 조사해달라 노동조합 이근로 감독을 요구했으나, 특별근로감독 대신 한 단계 낮은 수준의 수시감독이 실시되었다. 안일한 대처를 넘어 방조 수준이다.

  방조는 적발 이후에도 나타나는데, 현대제철과 대림이 1,000여 건의 산안법 위반으로 인해 부과된 벌금은 각각 6억, 8억 원이다. 억대의 벌금이 과도해 보이나? 현대가 산재를 숨겨 산재보험금을 감면받은 금액은 한 해 858억 원에 다다른다. 대기업들의 산재보험 특례요율제도를 통한 보험료 감면은 한 해 1조 1,376억 원에 달하고, 이중 20대 기업의 감면액은 3,460억 원에 이른다.(감면액 1위는 삼성으로 868억 원, 2위가 현대와 현대 중공업, 그 뒤를 LG와 SK(233)가 잇는다) 사람 목이 날아간 사고를 낸 후 특별근로감독에 의해 적발된 벌금 금액은 이의 1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 몇 백개의 사업장이 밀접한 공단 지역에 배치된 공무원이 고작 3~4명. 정확히는 전국 1,382,768개 사업장을 근로감독관 439명이 담당하고 있다(2006년 기준)
 누가 안전을 이토록 소홀히 여기도록 만들었을까. 1년 광고비로 1조 원을 넘게 쓰는 대기업이 몇 차례의 대규모 사고를 겪고는 안전관리를 위해 내놓겠다는 돈이 고작 1200억 원이다. 사람 목숨 값이 왜 이리 싼 것일까.
 원칙적으로 모든 산재는 예방 가능하다. 사람이 실수하더라도 사고가 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산재 예방의 기본이다.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환경과 구조를 만들어놓고 노동자 실수 운운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다. 건설 현장에서 어쩔 수 없이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면, 왜 유럽 주요 나라 건설 현장에서는 사고가 적은 것인가? 문제는 한국 노동자의'안전 불감증'이 아니다. 한국 기업의 노동자 생명과 건강에 대한 책임 회피, 속도 경쟁, 실적 위주의 관리와 운영이 문제인 것이다.

-2010년 최악의 살인기업 시상식 중에서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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