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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숙 Apr 11. 2016

오만한 소수, 한 맺힌 다수?

영화 <주토피아>의 뒷이야기, 웹툰 <파리대왕>

*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자와 양. 영화 <주토피아>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두 마리의 동물이다. 한쪽은 90%의 초식동물, 다른 한 편은 전체 사회의 10%에 불과한 육식동물을 대표한다. 영화 속 사자는 주토피아의 시장(市長)으로 가녀린 양은 그의 비서 역할로 등장한다. 사자는 번번이 양을 무시하고, 일을 떠맡기며, 모욕적인 별명으로 그녀를 호출한다. 자기보다 완력도 권력도 약한 상대를 한 마디로 ‘막 대한다’.   


 그러던 중 사자가 누명을 써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똑똑한 양이 사자의 자리를 대신해 시장의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권력을 넘겨받은 ‘한 맺힌 초식 동물’은 사실 무고한 육식 동물들을 사악한 맹수로 돌변하게 만들어 초식동물만의 세상을 만들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양은 순진한 얼굴을 하고서 자신의 계획에 방해가 되는 인물은 누구라도 없애버리려 들었다. 그녀에겐 그동안 육식 동물들로부터 무시받고 핍박받던 모든 초식동물들의 복수, 즉 정의(定義)를 실현한다는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만한 소수와 한 맺힌 다수. 분열된 인간 사회를 설명하는 데 자주 인용되는 수사이다. 한쪽은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일반 대중이고 반대편엔 그들을 무시하고 지배하는 권력 계층이 있다. 주토피아의 양과 사자가 대결하는 구도 역시 이와 같았다. 하지만 애초에 70%와 30%, 90%와 10%, 99%와 1% 구분선은 얼마든지 움직인다. 한 개인이 두 집단 가운데 어디에 속할지, 어떤 경계부터 소수와 다수를 구분할 것인지부터 문제가 된다. 무엇보다 얼핏 보기에 뜻이 통하는 것 같은 수사는 사실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 이는 양 쪽 계급 모두에 대한 편견 와 오해를 부추긴다.  


 먼저 ‘오만한 소수’를 묘사하는 가십들은 권력 계층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만 남긴다. 요즘 주기적으로 뉴스거리가 되는 ‘갑(甲) 질’에 대한 이야기들이 대표적이다. 이는 물론 우리 현실의 일부이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양산되었을 때 권력과 힘 자체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사회 전체가 좋은 힘, 좋은 권력에 대한 희망과 상상력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결국 '그 자리에 올라가면 다 어쩔 수 없어’라는 식의 체념과 회의주의만 남는다.   


 한편, '한 맺힌 다수'는 일반 대중은 대화와 상식, 이성이 통하지 않고, 합리적인 판단이 불가능해 물대포와 시위 경찰 같은 폭력적인 방법으로만 통제가 가능하다는 인식을 강화시킨다. 결국 ‘오만한 소수, 한 맺힌 다수’라는 프레임이 강화될수록 두 집단 사이의 공생과 화해는 불가능한 과제로 남는다. 회복적 정의가 아닌 특정 집단의 응징과 처벌이 목표가 될 뿐이다.  


 그렇다면 한 맺힌 다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평범한 개인은 소수보다는 다수의 입장에 더 자주 속한다. 만화 속 세상에서는 자세하게 그려지지 않았지만, 한(恨)이 맺힐 만큼 상처받은 다수는 우리 현실 속에 엄연히 존재한다. 양이 나쁜 계략을 꾸몄다고 해서 그간 사자가 그녀에게 함부로 대한 잘못들이 저절로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주토피아의 마지막 장면에서 수많은 동물들이 가젤의 공연에 초대된다. 토끼와 여우, 기린과 사자가 어울려 춤추는 모습이 나온다. 하지만 육식동물 중심의 사회로부터 상처를 받았으며, 스스로 90%의 약자를 위해 행동했다고 생각하는 양은 여전히 감옥 안에서 이를 갈고 있다. 양을 비롯한 초식동물이 감내해왔던 부당한 문제들이 있다. 주인공 토끼는 자신의 노력으로 이를 극복해내었지만, 평범한 대부분의 초식동물은 스스로의 한계에 갇혀 주어진 운명대로 살다 죽는다.   


 현실에는 구조적 착취와 비정상적인 불평등으로 인해 고통받는 다수가 존재한다. 하지만 소수와 다수를 아울러 올바른 목소리를 내줄 착한 토끼나 여우는 우리 사회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는 자신의 평균 재산의 10배가 넘는 자산을 가진 후보자들 가운데서 서민 대중의 이익을 대변해줄 대표를 뽑아야 한다. 최악의 실업률, 자살률, 자녀 교육비, 평균 근로시간, 출산율 등 몇 개의 숫자만으로 충분히 그려지는 비정상적인 사회에서 한이 맺힌 사람들은 그렇다면 어떤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는 말인가. 흉악한 범죄자가 된 양처럼 살아선 안 된다면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그렇게 행복하게 살았대요. 주토피아의 결말은 이렇게 끝나지 않는다. 그 대신 ‘새로운 실수를 잔뜩 하라(Keeping those new mistakes)’는 메시지로 끝난다. 영화는 해피 엔딩이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우리 사회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실수하게 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웹툰 <파리대왕>은 정치, 경제, 국가 권력으로부터 소외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리고 이 만화의 인물들이 이야기하는 삶의 방식이 바로 새로운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 내용이 주토피아보다 구체적이고 우리 삶의 지침으로 삼을 만큼 현실적이어서 그대로 옮긴다.   


@ 올레웹툰 <파리대왕>


 이 만화에 등장하는 다수는 힘이 있고 권력이 있고 돈이 있는 소수로부터 사랑하는 친구와 가족, 자신의 꿈을 짓밟힌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극 중에서 누구 못지않게 한이 맺힌 주인공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폭력과 자기 희생으로 복수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그 대신 ‘진정한 복수’를 할 것을 사람들에게 부탁한다.     


“내가 나 자신의 삶을 사는 게 복수가 된다는 말.. 어째서 그렇죠?”  

"그들의 생각보다 잘 먹고, 잘 자고, 다시 기운 내서 또 열심히 사는 것.  

그래서 지치지 않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환자도 돌보고, 노래도 하고, 투표도 하고..  
그렇게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고 화를 내는 것.  

무리를 이루는 개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고 확실한 복수지.”  

-올레 웹툰 <파리대왕 - 105화 보통날>  
“고집불통 외길로 걸어가시는 아버지를 설득해 주세요.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세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조금 더 마음을 열고 들어주세요.  

그리고 그들이 살아왔던 세상과 지금이 어떻게 다른지, 어떻게 이어져있는지 이야기해 주세요.  

여러분이 보고 들은 진실을 공유하세요.   

좀 더 정상적인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 세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 주세요.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학벌, 고향, 소득 수준, 주거 환경…
어떻게든 사람들을 갈라놓으려는 문화와 직접 대화해 주세요.  

우리를 불필요한 경쟁으로 줄 세우지 못하게,
우리가 서로를 미워하지 못하게.  사람답게 살 수 있게.

이 나라를 자랑스러워하고 사랑할 수 있게  

우리 스스로와.. 싸워주세요”    

-올레 웹툰 <파리대왕 - 104화 지하 강당 연설문>    

 지치지 않고 나 자신의 삶을 살 것, 그리고 사람들을 갈라놓으려는 문화와 직접 대화할 것.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와 싸우는 것. 그것이 진정한 복수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일을 하고, 투표를 한다. 자신의 방식대로 목소리를 내고, 잘못된 결정에 정당한 방법으로 화를 내며 살아가야 한다. 자신의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이를 공적 영역의 문제와 연결시키는 ‘정치적 민감성’을 잃어버리지 않는 다수가 모인 사회. 소수는 오만하다는 편견과 다수는 비이성적이라는 편견을 똑같이 거부하는 사회. 우린 그런 곳을 꿈꾸어야 한다.


 고집불통 외길로 걸어가시는 아버지를 설득하고,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다른 세대가 살아왔던 세상과 지금이 어떻게 다른지,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이야기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내가 보고 들은 진실을 누군가와 나누고, 더 정상적인 세상을 위해 해야 할 일을 고민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번거롭다. 그런 생각보다 힘든 일을 해낸 다음엔 더 큰 변화를 계획할 자신감이 생겨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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