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젊고 생기있는 여자는 스스로의 지성과 재치를 뽐내고 싶어한다. 여자의 일생에서 그것이 허락된 시기는 길지 않을 것이다. 여성이 나이를 들수록 지성과 재치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그것을 뽐내고 싶어하는 마음을 갈무리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젊고 생기있는 여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것들을 겉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녀는 누굴 만나든 어떤 장소를 방문하든 주어진 상황에 어울리는 방식을 찾아내고야 만다.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지성과 재치가 어떻게 오만과 편견을 낳을 수 있는지 깨닫게 된다. 스스로 자신의 분별력을 지나치게 신뢰하고 그것을 무의식중에 뽐내고 싶은 마음이 타인과 상황을 완벽하게 오해하게 만들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다아시는 미덕의 내용에 오만의 겉모습을 갖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가 사랑뿐만 아니라 '명예'를 위해 기꺼이 희생을 치르는 모습은 진실되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지성과 오감에만 의지한 결과 그런 그의 진짜 모습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지성과 당당한 기질은 결국 그녀에게 가장 좋은 짝을 찾아준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 모두 '부끄러움'을 알고 그것에 대해 깊이 반성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스스로의 지성과 명예를 중시했지만, 장애물에 부딪혔을 때 그것들을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릴 용기 또한 가지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의 인격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었고, 다아시는 오랜 시간 오만한 태도를 버리지 못했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이 모든 결함을 없애고 더 큰 행복을 맛볼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처음 자신의 딸이 결혼 상대자를 정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그 결정을 말렸다. 자신의 둘째 딸은 그녀가 우러러볼 수 있는 남자와 맺어지지 않는다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는 여자였다. 그런 딸의 성향을 일찌감치 알고 있던 그는 일찍이 딸이 '오만하고 불쾌한 남자'리고 소개한 다아시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딸의 분별력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넌 자기 남편을 진심으로 존경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도 자부심을 가질 수도 없는 아이야. 네 남편이 자기보다 낫다고 우러러봐야만 행복할 거다. 네게 맞지 않는 결혼을 하면 네 팔팔한 성질 때문에 결혼 생활이 위험해질 거야. 수치감과 불행을 모면하기 힘들거다."
극중에 맺어지는 네 쌍의 커플은 '결혼'을 결정되는 네 가지 경우의 수를 보여준다. 엘리자베스의 아비지는 자기 자신의 결혼 생활을 포함해 어떤 종류의 불행한 결혼 생활이 딸의 미래에 놓여있지 않길 바랐다. 매달 정기적으로 보장되는 얼마간의 수입과 목사관에서의 소박한 삶, 화려하지 않지만 안정적인 삶 그 자체에 의의를 둔 친구 샬롯. 물려받을 재산도 빼어난 미모도 없는 그녀는 미래가 보장된 삶을 위해 지위가 높은 사람의 비위 맞추기를 좋아하고 쉴새없이 자기자랑을 늘어놓기 바쁜 한 목사와 결혼을 결정해 버렸다. 자랑할만한 외모와 사교성을 겸비한 남자를 얻기 위해 가족들에게 수천 파운드의 빚을 남긴 넷째 딸 리디아. 그녀의 남편이 된 사람은 당장의 경제적 궁핍을 벗어나고 앞으로도 스스로의 무절제한 삶의 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오랜 친구에게 뇌물을 요구하는 뻔뻔한 사람이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상대방의 애정을 확신하지 못해 결국 주변의 도움으로 맺어진 큰 딸 제인 커플. 마지막으로 이 모두를 지켜본 후 전적으로 두 사람의 분별력과 의지를 통해 결혼을 결정한 엘리자베스와 다아시 커플이 있었다.
네 커플이 부부로 맺어지는 과정은 하나같이 드라마틱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그들과 같은 동기와 계기를 통해 결혼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장차 그들 앞에 펼쳐진 결혼 생활이 어떠할지 우리는 상상해볼 수 있을 뿐이다. 엘리자베스는 결국 자신보다 낫다고 우러러볼 수 있는, 진심으로 존경할 수 있는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의 팔팔한 성격 떄문에 결혼생활이 위험해지거나, 수치심과 불행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될 위험은 어느정도 피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오만과 편견이 둘 사이를 방해했지만, 여자는 전에 없이 남자를 존경하고, 남자의 사랑은 변치 않았다.
그들의 오만과 편견은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제인 오스틴은 먼저 편견을 갖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정도의 지성을 갖춘 한 여자를 창조했다. 그리고 '오만하다'는 평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진실된 덕성을 갖춘 한 남자를 만들었다. 두 사람의 결합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편견을 가질 수 없을만큼 위대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정도는 위대해질 수는 있다. 엘리자베스는 각 인물들에 대한 모종의 편견 덕분에 가족들 중 누구보다 사리 분별에 밝았다. 언니의 결혼을 방해하는 무리가 있다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차렸고, 동생의 일탈을 미리 내다보았다. 그녀는 나중에 근거없는 편견이라는 사실이 밝혀질지언정 자신의 판단을 신뢰했고 시의적절하게 행동에 나서기 위해 애썼다. 부끄러워할 것은 한쪽으로 치우진 생각 자체가 아니라 편견이 근거 없는 것으로 완전히 밝혀진 뒤에도 여전히 그것을 붙잡고 있는 아둔함이다.
한편 우리는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고자 할 때 '오만하다'는 평을 피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만큼 그 내용을 채워야 한다. 다아시는 주변 사람들의 자신의 뜻대로 행동해주기를 바랐다. 자신의 높은 지위가 타인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상대방에게 가장 좋은 방향을 제시해주기 위해 애썼다. 그는 남보다 두배 세배 더 큰 희생을 치르며 가문의 명예와 여동생에 대한 사랑, 친구에 대한 우정을 지켜왔다. 자신을 물려받은 자산과 직위로만 평가하는 이들에게 살갑게 굴어 굳이 '오만하다'는 평가를 없애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진짜 삶에 대해 알게 된 사람이라면 어떤 뜬소문에도 불구하고 그를 가장 신뢰하며 존경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