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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숙 Jul 30. 2016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 <아리랑>

리영희의 김산, 그리고 김산의 톨스토이


 시대에 밀착해 살아간 대가를 혹독히 치른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분명 거대한 역사의 물결에 휩쓸린 희생양이다. 하지만 그 물결 사이에 조류를 바꾸고 웅덩이를 파내 역사를 바꾼 것 역시 그들이었다. 일제 강점기 7년간의 소모적인 군대 복역을 강요당했으나 본인은 정작 생활고로 친동생을 잃어야 했던 리영희 선생. 그가 동료 장병들처럼 권력에 아부하고 시대의 요청에 귀를 닫았다면 한평생 가난과 감시, 억압에 짓눌려 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11살에 집을 나와 최연소 만주무관학교 입학생이 된 김산. 그 역시 조선의 독립을 위해 만주, 일본, 러시아를 떠도는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키운 조직의 손에 처형당하는 운명을 맞게 되진 않았을 것이다. 시대의 물결에 몸을 내맡긴 채 그것을 거스를 때를 분명히 알았던 이들의 삶은 대부분 고되고, 비참하고, 상처 투성이었다. 온몸으로 물살을 맞으며 때론 바위처럼 이를 막아서 물살을 늦추고 흐름 자체를 바꾸기도 하는 것이다.
 
 때문에 그들이 남긴 이야기는 언제나 희망이다. 우리에게 더 반가운 소식은 '시대의 빛'이었던 그들 역시 어느 누군가의 삶에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리영희 씨는 김산의 <아리랑>이란 책을 통해, 김산은 톨스토이의 <인생이란 무엇인가>란 책을 통해 물결에 맞서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발견했다. 6.25 전쟁 시기 남보다 오랜 기간 군에서 복무한 뒤 뒤늦게 시대 인식에 눈을 뜬 30살의 리영희는 김산을 만났다. 그리고 1991년 한양대 교수가 된 리영희는  자신의 청년 시절을 밝게 비춰준 한 인물에 대한 책의 추천사를 적게 된다.


"그때는 광막한 중국 대륙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열화처럼 일어나고 있던 시기였고 우리나라에서도 건드리면 터질듯이 혁명의 기운이 충전돼 있던 이승만 정권의 말기, 4.19혁명 직전의 시기였다. 1960년 봄 '김산'을 만났고 그의 삶을 알게 된 것이다. 내 나이 30세, 남들보다 뒤늦게 의식의 눈이 뜨이기 시작한 청년이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며 해답을 찾아 헤매던 때였다.
 지금은 아리랑을 읽는 나의 마음이 30대, 40대 때처럼 설레질 않는다. 현실에 의해서 배반당하게 마련인 이상의 속절없음을 너무도 많이 보고 겪은 탓인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 나라의 젊은이들이 <아리랑>을 읽으면서 극한상황 속에서 오히려 더욱 빛나는 '김산'의 사상가적 지성과 좌절 속에서 더욱 강인해지는 혁명가적 신념에 감동을 받는 한, 인간과 사회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 추천의 글 '<아리랑>과 나', 리영희


  그런 삶이 가능했던 건 그들이 역사였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 스스로 역사의 일부라는 강한 자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대적 배경이 그들 삶의 많은 부분을 결정했을지라도 역사의 물살을 불리고, 웅덩이를 이루고, 새로운 조류를 탄생시킨 것은 결국 '사람'이었다. 추악하고 탐욕스럽고 남을 배반하고 비겁한 사람일지라도 그 안에 있는 인간 본원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는 기꺼이 역사의 희생양이 되었다. 인간의 사랑이 아닌 신의 사랑. 시대적 조류를 맨몸으로 헤엄치며 자신이 가라앉을 자리를 찾아 헤맸던 그들은 일찍이 신이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고 배웠던 것이다. 11살 집을 나서 타향을 떠돌던 어린 김산은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을 항상 품에 안고 다녔다. 게릴라전에서 수많은 죽음을 만나고, 그 자신이 비참한 모습으로 국경을 떠돌아야 했을 때. 희망이 좌절되고 동지의 모함으로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꼈을 때, 열병에 걸려 생사를 오고가는 중에 삶에 대한 허무와 깊은 고독에 빠졌을 때. 그가 인간과 사회와 인생을 포기하지 않게 붙잡아 준 것은 톨스토이가 전한 신의 사랑이었을지 모른다. 자신의 눈앞에서 세상이 바뀌는 것을 보려한 인간의 조급함을 버리고 강물처럼 흘러가는 세상이 자신을 바꾸는 것 역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은 그가 가장 절망했던 순간 그에게 새로운 깨달음으로 다가왔고 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비밀활동을 지도한 베이징과 만주에서의 지하생활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감옥생활은 수많은 거친 모서리들을 단단한 형태로 다듬어 주었다. 살인, 자살, 절망의 시대는 나를 인간답게 만들어 주었으며, 인간의 본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관용을 가져다 주었다."
- 님 웨일즈, 김산 <아리랑>


 김산은 역사의 물결에 내동댕이쳐지고, 인간으로서의 삶에 고난을 겪는 동안 단단한 형태로 다듬어졌다. 흔히 사회에 나가는 순간 사람이 '닳아버린다'라는 말을 한다. 이는 주로 개성과 신념, 순수함을 잃어버린다는 나쁜 뜻으로 쓰인다. 하지만 김산의 경우에는 달랐다. 그는 역사의 일부분으로서, 인간의 가장 순수하고 강한 모습으로 거듭난 것이다. 가장 자신다운 모습이면서 외부의 생각과 사건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한 인간으로 완성된 셈이다. 그와 같은 고난을 겪는다고 해서 누구나 김산과 같은 지향을 발견하고 완성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희망대로 풀리지 않는 세상을 원망하고, 보잘 것 없는 인간의 삶에 허무를 느끼며 빈 공간을 바라보다 일생을 마치곤 한다. 하지만 김산이라는 인물이 이 세상에 있었고, 그의 삶이 이렇게 생생한 기록으로 남아 있는 한 담대하게 역사를 맞이하고 그 일부가 되려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등장할 것이다.

   "내 청년 시절의 친구나 동지들은 거의 모두가 죽었다. 민족주의자, 기독교신자, 무정부주의자, 테러리스트, 공산주의자 등등 수백명에 이른다. 그러나 내게는 그들이 지금도 살아 있다. 그들의 무덤을 어디로 정해야 하는지 따위는 전혀 마음에 두지 않는다. 전장에서, 사형장에서, 도시와 마을의 거리 거리에서, 그들의 뜨거운 혁명적 선혈은 조선, 만주, 시베리아, 일본, 중국의 대지 속으로 자랑스럽게 흘러들어갔다. 그들은 눈앞의 승리를 보는 데는 실패했지만 역사는 그들은 승리자로 만든다. 한 사람의 이름이나 짧은 꿈은 그 뼈와 함께 묻힐지도 모른다. 그러나 힘의 마지막 저울 속에서는 그가 이루었거나 실패한 것이 단 한 가지도 없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그의 불사성이며, 그의 영광 또는 수치인 것이다. 자기 자신이라 할지라도 이 객관적 사실은 바꿀수가 없다. 그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 무엇도 사람이 역사라고 하는 운동 속에서 점하는 자리를 빼앗을 수가 없다. 그 무엇도 사람을 빠져나가게 할 수가 없다. 유일한 그의 개인적 결정이라고는 전진할 것인가 아니면 후퇴할 것인가, 싸울 것인가 아니면 굴복할 것인가, 가치를 창조할 것인가 아니면 파괴할 것인가, 강해질 것인가 아니면 나약해질 것인가 하는 것밖에 없다."
- 님 웨일즈, 김산 <아리랑>

 "사랑은 오직 자기 자신속에서 모든 사람들 속에 있는 것과 똑같이 있는 자만을 사랑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 속에 똑같이 있는 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곧 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뜻한다."

- 톨스토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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