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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숙 Jul 20. 2016

운명과 마음은 사실 하나의 개념

내일을 기대하며 사는 것 : 영화 <벤허>와 <데미안>


운명과 마음은 하나의 개념에 대한 이름들이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222분 동안 단 하나의 질문을 받았다. 오늘 하루 당신은 '내일'을 기대하며 살았습니까? 밤 7시 20분에 입장한 극장에서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빠져나왔다. 영화 런닝 타임으로 4시간은 아주 오랜 시간이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사실 반나절에 불과한 순간의 한 토막이다. 촬영 스탭들을 '갈아서' 만들었을 것 같은 15분간의 전차 경주 장면에서는 입을 다물수가 없었는데 눈과 목에 뻐근함이 느껴졌지만, 한 장면이라도 놓칠 세라 정신을 바로 차리려 애썼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거대한 서사에 넋을 놓고 빠져 있다 3명의 주인공이 남긴 대사 몇 줄만 간신히 건져 올렸다.


 나는 <벤허>라는 영화를 난생 처음 본다는 행운 덕분에, 주인공 벤허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 매순간 궁금해할 수 있었다. 그 다음 장면에 그 앞에 어떤 운명이 닥쳐올 지, 그는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지 참을 수 없이 궁금했다. 유대인의 왕자로 태어난 벤허는 아랫사람의 존경을 받으며, 가족들의 사랑을 받았고 자신의 백성들(유대인)을 배신할 수 없다는 자신의 정의를 지키며 살아왔다. 하지만 권력에 눈이 먼 옛 친구의 배반이 있었고, 한 순간 노예의 신분이 되어 로마인의 함선에서 노를 젓는 비참한 생활을 4년동안 하게 된다. 그의 운명은 격랑에 휩쓸려 민족의 적인 로마인 사령관의 목숨을 구하고 그의 양자가 되어 로마 황제에게 직접 사사받는 권력을 손에 넣게 된다. 자신에게 누명을 씌워 내쫓은 친구에게 복수하는데 성공하지만, 그동안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은 나병에 걸려 망자의 계곡에 숨어사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를 이끄는 운명의 수레바퀴는 지나치게 가혹했고, 중간에 살아내기를 포기한다고 해도 그를 탓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왕자였던 그가 짐승처럼 수년간 노를 저으면서도, 내일을 기대하며 살았다. 사실 벤허를 살게 한 것은 증오와 분노였다. "저는 이 배를 나갈 겁니다. 신께서 저를 이대로 죽게 하려고 3년 동안 노예로 살게 하진 않으셨을 겁니다" 그의 눈에 서린 증오의 힘을 알아본 로마인 사령관은 그를 자유롭게 풀어주었고, 벤허가 지금껏 살아남게 된 것은 이유가 없어 보였다. 본인 스스로도 무엇 때문에 자신이 위기 상황에서도 거듭 풀려나게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에게 '내일'이 찾아올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있었다. 그의 눈빛은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는 사령관 앞에서도 흐려질 줄 몰랐다. 함선의 시커먼 바닥과. 그보다 더 검게 그을린 피부에  명령에 따라 온몸에서 땀을 흘리며 노를 젓는 벤허의 모습은, 비참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는 자를 향해 고정된 두 눈은 마지막까지 형형한 빛을 냈다. 41번으로 불렸지만 그는 벤허였다. 그를 시험해 보려 괜히 채찍질을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벤허는 순간 으르렁거리며 일어섰다 다시 자리에앉는다. 아직 반항할 증오의 찌꺼기가 남아있지만 그것을 억누를 수 있는 이성도 함께 가지고 있다고 그를 높이 평가했다. 많은 장면들이 기억에 남지만, 어두운 함선 바닥에서 기약도 없이 수백일간 노를 젓는 노예의 삶을 살았던 그가 독기를 품은 눈빛을 보여주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내가 정말로 깊은 생각에 몰두해 있다면 안전했다.
나는 강한 시선으로 상대를 노려보는 실험도 해봤는데, 그것도 믿을만했다.
지금은 강한 시선과 깊은 생각만으로 매우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그는 자신에게 닥칠 운명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게 오늘과 다른 것일 거란 기대만으로 노를 힘껏 젓고, 힘껏 살아냈다. 'Row well and Live' 자신이 노예살이 하던 배가 적선에 의해 침몰되고, 벤허는 뜻하지 않게 총사령관의 목숨을 살려준 채 배에서 표류하게 되는데 수치심에 자결하려는 총사령관을 억지로 살려두며 그가 내뱉은 대사였다. 노를 열심히 저어라, 그리고 살아 남아라. 무엇을 위해서 어떤 계획을 가지고 묻지 않고 있는 힘을 다해 쉼없이 노를 저으며 운명의 순간을 기다렸을 그의 안에 깊이 감춰져있었던 마음. 그에게 운명과 마음은 정확히 하나의 개념을 가리키는 두개의 말이었다. 증오심이었을지언정 그의 안에 자리잡은 강렬한 마음은 알 수 없는 내일이라는 운명을 강하게 믿을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벤허의 소꿉친구이자 그에게 누명을 씌워 노예선에 팔아버린 메살라는 누구보다 화려한 내일을 꿈꾸는 자였다. 하지만 그는 현실에 눈이 멀어 운명을 기대하며 그것이 다가오기를 기다리지 못한다. 자신이 직접 나서 계획하고 기교를 부리지 않으면 내일이 오지 않을 것만 같이 살았다. 그래서 친구에게 민족을 배신하고 절대권력을 손에 넣자고 부추긴 뒤, 그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친구에게 누명을 씌워 그를 파멸시킨다.

"He is god, the only god, He is power, real power on the earth.
Solomon's glory is gone. Do you think he will return? Josua will not rise again to save you  David.

There is only one reality in the world. Look at the west"
 


정신차려, 로마가 현실이야. 이 세상에 유일한, 실재하는, 단 하나의 힘이라고.
오랜 친구에게 현실을 보라고 주문하는 그는 결국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현실에 갇혀 파멸하게 된다. 자신의 욕망은 욕망대로 이루지 못하고, 자신의 꾀에 넘어가 비참하게 죽고 만다. 운명의 수레바퀴에 이끌리듯 살아왔던 벤허가 치밀한 계산을 거듭하며 친구조차 배신한 채 기어올라온 자신보다 높은 지위에 올라 돌아왔을 때 그는 얼마나 비참한 심정이었을까. 누구보다 기민하게 시대의 변화를 쫓아, 실존하는 권력의 최상부에 가까워지기 위해 애썼던 그의 내일은 비참했다. 선인이 복을 받고 악인이 벌을 받는 이야기는 이 영화가 처음은 아닐 것이다. 메살라의 죽음이 신선하게 와닿았던 이유는 내일을 간절히 바라는 것과 그것을 기다리는 일은 이렇게나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몸이 달아 내일을 당장 오늘로 끌어 오려는 사람에게 찾아올 운명이란 그가 살아낸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일 것이다. 우리는 현실에도 눈이 멀 수 있다. 거칠게 달리는 말 위에서 더 빨리 달리지 못할까 안달하는 사람은 자신의 채찍질에 정신이 팔려 마차의 바퀴가 빠지는 줄도 모를 수 있다.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고 복수에 성공한 벤허는 뒤늦게 자신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나병에 걸려 나라 밖으로 추방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무덤 속 시체처럼 목숨만 이어가고 있는 그들과 재회한 그는 자신이 안간힘을 써 지켜온 정의와 값진 승리가 가족들의 비참한 운명 앞에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한다. 한때 깊은 증오와 원한을 동력삼아 새로운 내일을 기대할 수 있었던 그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어 주저앉는다. "Back? Back to what?" 자신을 다독이며 위로하는 에스더의 말에 벤허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제 어디로 돌아가란 말인가. 하지만 그렇게 자신의 운명과 싸우고, 마음과 씨름하느라 나가 떨어진 남자들을 뒤로 하고 에스더는 말한다.



"The world is more than we know"

분노의 감정보다, '오늘'이라는 현실보다,
지금 내가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뛰어넘어,
운명의 불확실성 그 자체에 대한 열망이 훨씬 더 강력하다.

오늘의 나는 내일을 기대하며 살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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