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에겐 빌어먹을 변호사가 필요하다
자본주의(Capitalism: A Love Story)
마이클 무어 시리즈는 꼭 한번 챙겨봐야지 했다. 다큐멘터리 감독 중에 그만큼 핫한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챙겨 보고 챙겨 읽어야 할 컨텐츠는 항상 쌓여 있었고, 그의 영화를 다운 받아 재생하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지난 주말 오전 내가 처음으로 보게 된 작품은 '사랑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영화 <자본주의>였다. 감독은 영화의 풀네임이 '자본주의와의 불장난(a big love affair with capitalism)'이라고 말한다. 자본주의는 숭고한 가치도 유일한 체제인 것도 아니다. 우리는 자본주의면서 민주주의가 아닌 나라를, 자본주의가 아니면서 민주주의인 나라를 떠올릴 줄 알아야 한다.
35세까지 변변한 직업이 없던 그는 16밀리 카메라 하나를 구입해 들고 다니며 3년 동안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법적 성인이 된 이후 그때까지 살아온 시간 만큼을 백수로 살아온 그였다. 돈이 궁한 시기만큼 돈에 대해 생각하기 좋은 시간도 없다. 무어는 자신의 주머니가 비어 있는 동안 마음껏 돈에 대해 그리고 자본에 대해 연구했다. 그 둘의 차이를 발견하고, 사회 정치적 권력과의 밀접한 관계성을 깨달았다. 자본주의는 경체체제, 민주주의는 정치체제라 외워 온 사람들은 스스로 알아채기 어려운 '미친 불장난'이다.
감독이 직접 제너럴 모터스 본사 앞을 찾아간다. 그리곤 무작정 사장을 만나겠다고 우긴다.
"내가 10년 동안 여길 찾아왔어. 이젠 좀 들여 보내줘야 되지 않나?" 이 영화는 코미디가 아닌 다큐멘터리다. 보는 내가 민망해진다.
그는 또 월스트리트의 골드만삭스를 체포하러 간다. 건물을 통째로 폴리스라인 테잎으로 둘러싸사는 그의 기행은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
"시민의 이름으로 당신들을 체포하러 왔습니다!"
메가폰을 잡고 금융사 직원 아무개에게 소리치는 영화 감독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제너럴모터스는 241억 달러의 흑자를 내고, 10만 명을 해고했다. 제너럴일렉트릭은 204억 달러를 벌고, 10만명을 잘랐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사이 노동 생산성은 45% 증가했다. 하지만 노동 계층의 임금은 1% 늘었다. 마이클 무어는 이같은 경향성이 존재함을 숫자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문제의 원인은 아주 간단하게 진단한다.
'단기 이윤을 위한 선택. 그리고 노조 와해'
감독은 직접 제너럴모터스의 경영진을 찾아가서 묻는다. 왜 대기업들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없애는지.
"만약 GM이 부도가 나면 득 볼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하는거죠. 요즘처럼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요"
대기업이 망하면 득볼 사람이 아무도 없을까? 대기업의 경쟁, 실패, 몰락에 대한 이야기는 손쉽게 막연한 공포를 조장한다. 하지만 대기업이 살아남는 상황에서 득을 보는 사람 또한 손에 꼽힌다는 사실을 알아둬야 한다.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살아남은 기업이야말로 우리가 피해야 할 실존하는 위험인지 모른다. 대기업이 망하면 우리 모두가 망한다고? 사실 우리 중 대부분은 어떤 대기업이 망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자리를 잃고 파산한다.
같은 기간 가계부채는 111% 늘었고, 개인파산은 610% 즉 6배 늘었다. 그러나 다우지수는 1,371% 상승, CEO와 노동자의 임금 차이는 649% 늘어났다. 금융시장을 규제하는 사람들은 낮은 이자율을 보장받고, 수수료를 면제받지만 마지막 남은 자산인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이들은 '파생상품'이라는 복잡한 도박기술에 휩쓸려 자기 집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 감옥에 들어간 시민의 숫자는 4배 가까이 늘었으며, 항우울제 판매액은 3배 늘어났다. 대기업은 채용한 노동자 앞으로 '죽은 일꾼 보험(DEAD PEASANT)'을 들어두고 그가 죽기를 기다린다. 그들에겐 직원이 살아있을 때보다, 죽었을 때 더 가치있기 때문이다. 은행원 댄은 암으로 죽었고, 회사가 자기 앞으로 들어둔 생명보험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의 장례식을 치른 가족들 앞으로 회사가 150만 달러의 보험금을 타게 되었다는 고지서가 배달된다. 시티뱅크, 월마트, 허쉬, 네슬레.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회사들이 '죽은 일꾼 보험'을 들고 있다.
무어가 골드만삭스를 체포하려 한 데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부시, 클린턴 정부는 '골드만 정부'라 불릴 정도로 골드만삭스 경영진이 정부 요인으로 대거 포진되어 있었다.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 당시, 기업들에게 7천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지원해야 한다는 안건이 표결에 부쳐졌다. 월가의 금융기관들이 잘못 투자한 잘못으로 손해를 메꾸기 위해 7천억 달러, 우리 돈으로 770조원의 세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이었다. 안건은 단 12표차로 부결되었다. 하지만 월가의 ceo들과 대통령 사이에 비밀회담이 있었고, 상원의원이 되고 싶은 민주당원들 역시 비밀리에 회담을 가졌다. 이어진 재표결 결과 찬성 263 대 반대 171 92표 차이로 구제금융은 통과되었다.
"구제금융은 첩보작전과 같았다"
"재무부는 그 돈의 용처를 묻지 않았다"
마이클 무어는 이번엔 국회의사당 앞으로 날아가 국회의원들의 육성을 담는다. 결국 국민의 돈 770조원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알 길이 없다. 골드만삭스를 찾아가 시민의 이름으로 체포한다고 외치는 그의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가 미친척 하고 벌인 퍼포먼스 덕분에, 시민들은 자신의 돈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관심을 가질 기회가 한 번 더 생겼다.
영화의 마지막 무대는 시카고의 한 파업장이다. 직장폐쇄로 임금도 받지 못하고 해고된 노동자들이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 둔 추운겨울, 이들은 직장에 모여 고된 농성을 시작한다. 주민들이 음식을 가져오고, 양심 있는 일부 언론이 부당한 해고를 비판하기 시작한다. 오바마는 이 소식을 듣고 이야기한다. "나는 그들의 편입니다" 자신의 집에서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 일자리를 마련해주지 않는다면 770조의 세금을 그들에게 준 의미가 어디에 있을까. 은행이 아닌 노동자를 구하라는 파업장의 구호가 눈에 들어온다. 그들은 수천억의 주식이 아닌 사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걸 위해 싸우고 있었다.
그리도 또 다른 파업장의 모습이 비친다. 1937년 무어의 고향인 미시건 플린트에서 있었던 파업사건이다. 지엠 자동차 노동자들은 회사 건물에서 44일간 농성을 벌였다. 사측은 경찰을 끌어들이고 폭력배들을 고용해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한다. 당시 대통령이던 루즈벨트는 군사력을 동원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군대는 경찰이 아닌 노동자를 보호한다.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을 지키기 위해 사측을 향해 총구를 겨눈 대통령은 '제 2 권리장전'을 발표한다. 건강이 좋지않아 라디오 담화를 통해 전국민에게 전달된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알맞은 보수의 직장, 음식, 의복, 기업의 정당한 경쟁, 의료서비스, 양질의 교육 등 인류 행복의 새로운 목표이자 세계 평화를 위해 국가가 보장해야 하는 가치들이 헌법에 명시 되었다.
"이런 나라에 살기를 거부합니다. 떠나지도 않을 겁니다"
자본주의를 민주주의로 교체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인터네셔널가로 자신의 긴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블랙 코미디 같은 그의 기행, 객관을 담보하기 어려운 숫자들. 이 영화는 과장되고, 의도적으로 편집되고, 한 쪽의 말만 제멋대로 담은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들려준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미드 <뉴스룸>에 나온다.
잘나가는 케이블 앵커인 주인공이 자신의 회사의 '물주'인 공화당원들을 열심히 까대는 뉴스를 만들자 경영진은 "언제부터 뉴스룸이 법정이 됐냐"며 빈정거린다.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정치인들의 빈정거림, 추정, 과장, 말그대로 허튼소리를 하나하나 지적하며 책임을 추궁하는 앵커의 모습이 통쾌하다.
미국 정치 상황을 잘 알지 못하는 내가 봐도 화면에 등장하는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을 물로 알고, 그들의 표와 세금을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을 몇가지 팩트로 꼼짝못하게 하는 앵커는 사실 전직 검사였다. 법원에서 일하는 동안 94%의 유죄판결을 기록했던 그의 논리력과 입담은 이제 권력을 가진 자들을 향해 날을 세우게 된 것이다.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노동자들에게도 그와 같이 실력 있는 대변인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