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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다샤 Aug 10. 2020

동굴 속의 호수

1. 대미산 산딸기

1.     

돌산의 바위와 돌은 날카롭다. 한발 떼기가 쉽지 않고 그래서 발을 디디는 것 역시 조심스럽다. 한발 한발 움직일 때마다 바위틈에서 졸고 있던 비둘기가 오랜만에 듣는 인기척에 놀라 하늘로 날아오르기를 반복한다. 아직 오전 10시도 안된 시간이지만 6월의 햇살은 따갑게 내리 쏜다. 산을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 이마와 등줄기에 땀이 흥건하다. 입고 있는 군복은 돋보기 마냥 햇살을 모아 피부를 향해 강렬한 열을 쏟아내니 체감하는 더위는 더 심했다.     

'염병. 지랄이네. 산딸기 먹겠다고 이 고생을 하다니....'     

산에 오른 지 20분 만에 후회가 밀려왔다.     

선임병인 민상이 밤샘 초소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려는 철우에게 선임병 민상은 대미산을 돌아 걸어가면서 산딸기나 따먹자고 제안을 했다. 어린애도 아니고 딸기를 따먹자고 하는 민상이 한심했지만 선임의 말이니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동네 친구라지만 퇴근 후에도 선임은 선임이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밤샘 해안경계 근무로 배도 고팠고, 이 섬마을에 오가는 버스도 몇 대 없어서 어차피 걸어가는 것이 더 빠르기 때문이다. 기왕 걸어가는 거라면 딸기라도 따먹으며 가자는 심산에 그러자 했다.     

하지만 막상 오른 대미산은 여느 산들과 달랐다. 대미산은 사람의 발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돌산이다. 딸기 몇 알 따먹자고 이 고생을 하나 하는 후회를 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민상과 철우는 10여 미터 간격을 두고 산기슭을 돌며 산딸기를 찾고 있었다. 산 위쪽 능선을 타고 돌아가던 철우는 대미산 정상 아래 커다란 붉은 바위를 보고 호기심이 생겼다. 평소 출퇴근할 때마다 한눈에 들어오던 붉은 바위였다. 피를 칠해 놓은 것 같은 그 바위는 검은 돌산의 바위들 중 유일하게 다른 색이었다. 돌산의 유일한 붉은색 바위는 대미산 한가운데 뻘건 불기둥을 박아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평소 그 바위를 눈여겨보며 기회가 되면 저 바위에 가보리라 생각했던 철우는 이 기회에 붉은 바위 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저 특별한 바위 아래는 신비로운 세계를 안내해 줄 것 같은 기대감을 갖게 했다.     

가시덤불과 칼바위들을 넘어 어렵게 붉은 바위 아래로 도착했을 때 철우를 반긴 것은 돌 틈 아래에서 날아오르는 산비둘기 무리였다. 붉은 바위 아래에 도착해 붉은 바위를 등지고 서자 붉은 바위 앞으로 돌산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오른쪽으로는 여수로 나가는 돌산대교가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향일암으로 나아가는 넓은 도로가 보였다. 그 넓은 도로는 새로 도로포장을 하느라 공사차량과 중장비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철우는 붉은 바위 앞에 있는 평평하고 널찍한 바위에 올라 잠시 숨을 고르기로 했다. 바위에 앉아 남해바다를 바라보던 철우 눈에 특이한 것이 들어왔다. 철우가 앉아있는 바위 바로 앞쪽에 움푹 들어간 입구 같은 것이 보이는 것이다.      

'뭐지?'     

철우는 다시 일어나 그곳으로 다가갔다. 입구에 다다르자 지름 1미터 정도 되는 구멍이 보였다.      

'동굴인가?'     

구멍 안쪽을 보니 1.5미터 정도 되는 깊이의 동굴이었다.      

'이런 곳에 동굴이 있었네?'     

대미산 아래를 무수히 지나다녔지만 이 산 중턱에 동굴이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마을 사람 누구에게도 이곳에 동굴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장난기가 발동한 철우는 어쩌면 이 동굴은 자신만의 동굴이 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만 아는 비밀의 공간을 발견한 철우는 마치 보물로 가득할 것 같은 신대륙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또 아는가. 이곳에 고대의 유물이 가득할지....     

철우는 기대와 호기심으로 동굴을 탐사해보기로 했다.     

'얼마나 넓을까?'     

깊지 않은 동굴 바닥을 확인하고 철우는 동굴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동굴 벽을 타고 내려가면 그렇게 어렵게 내려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철우는 동굴로 내려가기 위해 머리를 동굴 입구로 내밀었다.      

'어?'     

동굴 속을 보던 철우는 동굴 속에서 흔들리는 흰 물체를 보았다.      

'뭐지?'     

철우는 좀 전에 보았던 물체가 뭐였는지 다시 확인하기 위해 다시 머리를 동굴에 밀어 넣었다. 밝은 곳에 있던 철우의 눈이 어둠에 적응하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이 흐르자 철우는 눈에는 흰 물체의 형체가 점점 선명히 보이기 시작했다.      

'흔들린다?'     

분명 흔들리고 있었다.      

'뭐가 매달린 건가?'     

라고 생각하는 순간 철우는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곧바로 뒷걸음질 치며 민상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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