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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다샤 Aug 10. 2020

동굴 속의 호수

방위병

2.     

지겹도록 따분한 시간이다. 파출소라고는 하지만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파출소 직원이라고 해봐야 소장, 김순경, 그리고 방위병인 성기 이렇게 셋 뿐이다. 그나마도 소장은 늘 대민협력이라며 마을 유지들과 낮술 타령을 하려고 자리를 비우기 일쑤고 김 순경은 순찰이다 하며 오전에 잠깐 얼굴을 비출 뿐이다. 울리지 않는 전화기를 멍하니 쳐다보던 성기는 습관적으로 수화기를 들어 귀에 대보았다. '뚜'하는 소리가 선명히 들려왔다. 다행히 전화는 멀쩡하다.     

성기의 유일한 낙은 가끔 우두 파출소 앞으로 지나가는 트럭을 보는 것이다. 최근 대미산 아래에서 도로포장 공사가 한창이라 전에는 보지 못한 트럭들을 구경할 수 있다. 트럭이 지날 때마다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먼지가 일어 창문도 열지 못했지만, 최근 며칠 동안 내린 비로 인해 땅이 젖어 창문을 열 수도 있을 만큼 쾌적해졌다. 그나마 이렇게 공사라도 하니 사람 사는 것 같이 차라도 지나가지 그렇지 않으면 개미새끼 한 마리 구경하기도 힘든 곳이 이곳이다.      

'아, 나도 해안초소 근무 방위병으로 갔더라면 이렇게 파출소에 갇혀 있지 않아도 될 텐데'     

갑자기 같은 마을에서 방위병으로 근무하고 있는 민상이와 철우가 부러웠다. 야간 근무 후에 낮에는 자유롭게 자유시간을 갖는 것이 자신의 처지와는 전혀 달랐다. 같은 방위병인데 난 이게 뭐야라는 생각을 하던 중 저 멀리서 뛰어 오는 철우의 모습이 보였다.     

'저 녀석, 야간 근무하고 또 어디 놀러 가나?'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갑자기 화가 나고 부아가 치밀었다.      

‘약 올릴 거면 들어오지 말고 그냥 가라. 그냥 가. 제발.’     

성기는 속으로 파출소로 들어오는 철우가 그냥 가길 바랐다.      

그런데 뛰어오는 철우의 모습이 좀 이상하다. 뭔가 쫓기는 듯 허겁지겁 달려오는 것도 이상하지만 철우 혼자가 아니라 철우의 선임병인 민상이도 함께 뛰어 오는 것이다.      

'저것들 뭔 일이길래 저렇게 급하게 뛰지?'     

그사이 파출소에 들어온 철우는 숨을 헐떡이며 성기 책상 앞에 서서는      

'소장님, 소장님'하고 부르는 것이었다.      

'뭔 일이냐? 뭔 일인데 그렇게 소리를 질러?'하고 묻자 성기는 듣지 못한 사람처럼     

'소장님, 소장님 어디 있냐고?'하고 성기에게 얼굴을 디밀고 소리 질렀다.     

'소장님, 지금 안 계신데?'     

'김 순경은, 김 순경은 어딨냐?'     

'순찰 나갔는데?'     

성기 대답이 끝나자마자 철우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사이 뛰어 들어온 민상이 철우 곁에 앉아서는 헉헉 숨을 몰아쉰다.     

성기는 민상에게 경례를 하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말을 꺼내자마자 성기는 또 후회했다.      

‘에이 씨. 또 존댓말을 해버렸네.’     

친구지만 선임인 민상이한테 경례에 경어까지 쓴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주저앉아 고개를 뒤로 젖히고 거친 숨을 몰아쉬던 민상이 숨넘어가는 소리로 겨우     

'사람이 죽었어'라는 말을 토해냈다.     

'사람이...... 죽었다고요?'     

에이 씨 또 존댓말을 썼어. 바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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