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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다샤 Aug 10. 2020

동굴 속의 호수

3. 피로 물든 환형

3.      

길도 없는 돌산을 헤집고 올라가는 내내 맨손으로 암벽등반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깨에 걸친 카메라가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느라 속도는 더 더뎠다.      

'어떤 인간이 이런 데서 죽은 거야??'     

죽을 자리가 이렇게 험한 산이라면 오히려 자살할 생각을 포기할 법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든 산행이었다. 산 아래에서 본 붉은 바위는 금방이라도 닿을 듯 가까이 보였다. 그러나 막상 산행을 시작하니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 가까웠던 바위와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입고 있던 셔츠를 다 적시고도 모자라 뒷머리에서는 땀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셔츠뿐만 아니라 바지 벨트 아래도 젖기 시작해 바지는 마치 소변을 지린 듯 땀에 젖어 있었다.      

그렇게 힘겨운 등정을 한 지 20여분 정도 지나자 정형사가 말한 대로 과연 우뚝 솟은 커다란 붉은 바위가 보였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 주저앉아 주변을 살피니 바위 아래에는 장을 열어 놓은 듯 경찰과 군인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평평한 바위 한쪽에는 정 형사가 전화통화로 말한 대로 사체로 보이는 천이 보였다. 숨이 좀 잦아들고 뿜어져 나왔던 땀이 좀 진정되자 김 기자는 흰 천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정 형사가 다가가는 김 기자를 알아보고 아는 체했다.     

'어이, 김 기자. 용케 올라왔구먼. 난 또 올라오다 힘들어서 도로 갈 줄 알았더니.. 헤헤헤'     

저놈의 주둥이를 확 찢어놓으면 좋으련만.     

'이것도 밥벌인데 안 올라올 수 있나요? 사건도 별로 없는 이 촌구석에서 오래간만에 변사사건 사진이라도 찍어야 밥벌이를 하죠.'     

‘김 기자 밥줄 안 떨어지려면 사람 여럿 죽어야겠네. 헤헤헤’     

미친놈, 말하는 폼 하고는...     

‘농담이라도 무섭네요.’     

시큰둥한 대답을 던지며 놓여 있는 사체로 시선을 옮겼다. 흰 천을 덮은 사체 옆에 갈색 신발, 매듭 있는 셔츠와 바지, 벨트가 놓여 있었다.      

‘언제 죽은 거 같아요?’     

‘아 우리도 온 지 얼마 안 됐어. 이 동네에 병원 전문의가 없잖아. 여수에 있는 오 내과에 전화를 했는데 아직 안 오네. 환갑 넘은 노인네라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으려나 몰라.’     

‘어디서 죽은 거예요?’     

정 형사는 턱을 죽 내밀며 말했다.     

'요 구멍 보이지? 요 동굴 안에서 목 매 죽은 시신을 방위병이 발견해서 신고를 했어. 근데 변사자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을까?'     

천을 걷어 사체를 보니 20대 초반이나 중반으로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두 팔은 가지런히 차렷 자세를 하고 있고, 옷은 흰 팬티와 양말만 신은 상태였다. 사체의 옆에 있는 바지와 셔츠를 엮어서 목을 맸으리라 하고 생각했다. 사체를 살펴보던 중 양쪽 팔꿈치 위쪽에 멍든 것 같은 퍼런 자국이 보였다.      

'저건 무슨 자국이래요?'     

정 형사는 손가락으로 코털을 잡아 뽑다 미간을 찌푸리며     

'발견되었을 때 양쪽 팔에 허리띠가 단단히 묶어 있더라고. 자살할 때 한 번에 죽으려고 팔까지 묶었나 보더라고. 아이고, 지독하지? 저기 저것이 그 허리띠야'     

옷가지 옆에 자동 버클로 된 검은 허리띠가 있었다.      

진화는 한참을 팔에 난 흔적과 허리띠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내려가 봐도 되죠?'     

코털을 잡아 뜯기에 정신없는 정 형사의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에 이미 진화는 동굴로 다리를 집어넣고 있었다.     

'아이, 저 성격 하고는... 야! 현장 감식 다 안 끝났으니까 조심해, '     

밝은 곳에 있다가 동굴로 내려오니 그야말로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동굴의 사물을 알아볼 수 있었다. 동굴의 크기는 대략 3~4평 정도 되는 공간으로 바위와 바위가 무너질 때 서로 겹치며 빈 공간이 형성되었다. 입구의 높이는 동굴 바닥에서 대략 3미터 정도였으나 사체가 목을 메 걸려있던 높이는 바닥에서 대략 2.5미터 정도의 높이에서 발견되었다. 목매달았다는 지점의 바닥에는 돌무더기가 놓여있었다. 아마도 자살할 때 옷가지 등을 동굴 천정 바위틈에 걸기 위해 발을 디디기 위해 만든 것이리라. 천정을 올려다보니 돌과 돌 사이에 작은 틈이 있었다. 아마도 저 틈으로 옷가지를 연결하여 줄을 만들어 자살을 시도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사체 발견 지점 바로 옆 바닥에는 무언가를 태운 검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 외에는 별다른 흔적이 없었다.     

'사체를 끌어내리려고 무지하게 고생했겠네'     

김 기자는 걱정하는 듯 생색내며 동굴 밖으로 다시 올라왔다.     

‘그러게. 목마를 태워 올라가 보고 등을 밟고 올라가 보고 하면서 줄을 푸는데 얼마나 힘들던지. 아니 저 높은데 어떻게 혼자 줄을 매고 목을 걸었는지 몰라.’     

김 기자는 정 형사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바닥에 뭔가 태운 흔적이 있던데요?'     

'아, 그거 수첩 하고 주민등록증을 태웠더라고. 저거'     

하며 턱으로 가리킨 곳을 보니 시체 다리 쪽에 투명 비닐봉지가 있었고, 그 안에 수첩과 주민등록증이 있었다. 다가가서 비닐을 들어 안의 내용물을 보니 반쯤 다다 만 주민등록증은 이름과 주소 등이 기재된 곳이 타버렸다. 수첩도 검은 비닐로 된 겉포장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뭐 없어. 특별히 신원을 확인할 만한 게...'     

'그러게요. 뭐가 없네요.'     

'근데 이렇게 힘든 데를 어떻게 알고 왔을까? 그리고 봤어?'     

'뭘요?'     

'죽은 사람 발목 말이야'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발목을 쳐다보았다. 흰 양말 위쪽으로 폭 5센티미터 정도의 둥글게 패인 상처가 보였다. 상처의 혈액이 아래로 흘러 신고 있던 양말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죽은 사람 발목에 둥그런 환형의 상처가 왜 났을까?     

'자살을 확실한데 뭔가 찜찜해'     

돌아서서 담배를 물며 정 형사가 말했다.     

그랬다. 찜찜하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꼬일 대로 꼬인 실타래를 마주한 것처럼....     

‘이렇게 배배 꼬인 상황을 즐기는 녀석이 하나 있긴 해요. 전화해서 내려오라고 하면 아주 즐거워할 미친놈이...’     

김 기자는 즐겁다는 듯 킥킥 웃으며 말했다.     

습한 6월의 바닷바람이 길고 긴 장마를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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