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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다샤 Aug 10. 2020

동굴 속의 호수

8. 다시 만난 호수

8.     

얼마나 잠을 잔 걸까? 잠깐 잔 것 같은데 시계를 들여다보니 1시간이 훌쩍 흘렀다. 1시간이라고는 하지만 참으로 오랜만에 깊게 잠을 잔 것 같다. 한철 장사를 해야 또 근근이 한해를 버틸 수 있기에 밤낮없이 분주한 여름 바닷가에서의 장사란 한해의 생계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다. 늦은 밤까지 몰려다니는 젊은 무리들은 저마다의 열기를 뿜어대며 어슬렁거린다. 대부분은 술에 취해 이곳을 찾아와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찾는다. 6월부터 시작해 8월까지 열리는 이곳 대천 해수욕장의 개장기간은 재영의 가족에게는 생존기간인 것이다.     

여수에서의 생계가 어려워 생계를 위해 이것저것 찾다가 결국 이곳 충남 대천까지 올라오게 되었다. 비싼 임대료를 지불하고 아이스크림 판매대를 분양받았다. 7월 한 달 손님이 6, 8월 손님 매출보다 높으니 이제 다가올 7월을 기대하는 건 그런 이유다. 여름 한철 벌이에 1년 가족의 생계가 달렸다.     

'아~ 지금 벌어야 한 해를 넘기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재영은 여수로 가는 버스 안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여수경찰서로부터 전화를 받은 건 오늘 아침이다. 호수가 돌산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이다.      

'무슨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거죠? 무슨 일인데요?'라고 물었지만 직접 방문해 달라는 말 뿐이었다.     

'인천에서 가스 배달하면서 착실히 지내고 있던 놈이 웬 여수?'     

재영은 아들 호수가 여수에 갔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통 종잡을 수 없었다.      

서울 은평구에서 방위병 복무를 마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인천에서 일자리를 찾았다고 하길래 좀 더 놀다가 일을 하지 그러냐고 했지만 호수는 하루라도 빨리 일을 해서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자립하겠다고 하던 독한 놈이다. 하긴 어릴 적 여수에서 올라온 뒤로 변변히 잘 입히고 잘 가르치지도 못했던 부모 입장에서는 내심 스스로 밥벌이를 한다고 하니 미안함과 고마움이 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여수에 왜 갔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 달 전쯤 호수가 일하던 인천 가스충전소 사장으로부터 호수가 일을 나오지 않는다며 어디 있는지 아느냐는 전화가 집으로 걸려온 적이 있었다. 호수가 말도 없이 없어졌다면 분명 가게 영업에도 피해가 될게 뻔했다. 아들 때문에 영업에 지장을 끼치게 되어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호수에게 연락이 닿으면 곧바로 연락드리겠다는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으려 하자 오히려 충전소 사장은 호수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 호수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되물었다. 재영은 자세한 사정을 알게 되면 다시 찾아뵙고 인사드리겠다고 하며 재차 죄송하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겠다고 했다.     

그러자 충전소 사장은      

'잠시만요. 아버님. 호수가 저희 충전소에서 일하면서 지내던 방에 호수 옷과 짐이 좀 있습니다. 혹시 돌아올지 몰라 치우지 않고 있었는데요. 나중에 호수에게 챙겨가라고 말 좀 전해주세요'라고 했다.     

그러겠다고 한 후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호수의 옷가지를 찾으러 갈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지금 호수는 여수에 있다는 것이다.      

오래전에 충전소를  그만두고 여수라니..... 그런데 왜 그동안 연락이 없었을까?     

모든 게 혼란스럽고 궁금했다.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마음 한편이 매우 불안하다는 것이다.     

'여수에 가보면 알겠지'     

재영은 버스 창밖을 내다보았다.     

창 밖 도로 표지판에 광주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이제 조금만 더 내려가면 여수구나라고 생각한 뒤 재영은 다시 눈을 감았다.      

'잠깐이지만 잠이라도 더 자야지.'     

감은 눈꺼풀 위에 따스한 햇살이 무겁게 뒤덮었다.          

작은 시신 보관 냉장실에서 꺼내진 것은 군데군데 백골화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분명 호수였다. 재영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호수 맞네요.'     

넋이 나간 목소리로 옆에 있던 형사에게 말했다.      

돌산읍사무소에서 사건과 관련된 취재를 하던 중 피해자 부친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접한 순진은 사망자 시신이 보관된 병원으로 달려왔다.      

사망자의 이름과 신원이 확인되어 가족에게 연락이 닿았다는 것이다.      

부친은 한참을 바닥에 앉아 흐느끼다가 형사의 부축을 받으며 복도 의자에 앉았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허리를 숙여 한참을 흐느끼던 부친에게 혁이 다가왔다. 커피를 건네며 말을 건넸다.     

'상실감이 크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뭐라고 위로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고개를 들어 혁을 바라보던 재영은 짧게 고맙다는 말을 건넸고, 혁이 건네는 커피를 받아 들었지만 마시지는 못했다.      

건네받은 커피를 한참 바라보다 재영은 혁에게 말을 건넸다.     

'어떻게 죽은 겁니까?'     

'죄송합니다. 현재로서는 사망원인을 조사하고 있는 중이라 저희가 명쾌하게 해 드릴 수 있는 말씀이 없습니다. 단지 대미산에서 발견되었고, 현재 그 죽음에 대해 자살, 타살 모두를 염두 해 두고 조사 중입니다.'     

'아니 그럼 누군가가 호수를 죽였을 수도 있다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아직 명확하지는 않지만 타살 가능성 역시 배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다시 머리를 숙여 흐느꼈다.      

'집안이 가난해서 혼자 힘으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혼자 힘으로 독립하겠다고 버둥거리며 살던 놈이 죽다니.'     

다잡았던 감정이 북받치는 듯 흐느끼기 시작했다.     

'집이 여유가 없어 늘 밖으로만 자식이 나돌았습니다. 부모 사랑 제대로 받지도 못했는데 왜 하필 여기서 죽었는지'     

잠시 흐느끼던 재영이 좀 진정되자 혁은 다시 질문을 던졌다.     

'혹시 호수가 여기서 죽을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그건 저도 이상한 일입니다. 호수가 여수 돌산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5살 때 이사를 나가 타지에서 살았기 때문에 호수는 여기를 전혀 알지 못할 겁니다. 더군다나 대미산 그 산 위 동굴에서 죽었다는 건 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여길 어떻게 알고 죽었다는 건지.'     

'그렇군요. 여기 연고는 전혀 없는 건가요?'     

'네, 여기서 5살 때 떠난 이후로는 가족이고 친척이고 이 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없어서 연고라고는 전혀 없습니다. 그 뒤로 여수 돌산에 온 적이 없으니까요'     

'그렇군요.'     

마시지도 않는 커피잔을 만지작 거리면서 재영은 말을 계속 이어갔다.     

'호수가 작년에 방위병 제대하고 나서 자기 힘으로 살아보려고 별일을 다 하더라고요. 가스배달도 하고 새우 잡는 배도 탄다고 강화도도 간다고 하기도 하고...'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순진이 나섰다.      

'네? 배를 탄다고 하던가요?'     

갑작스럽게 끼어드는 바람에 재영이 누군가 하는 표정으로 순진을 쳐다보았다.     

'죄송합니다. 저는 순진 기자라고 합니다. 제 소개가 늦었네요.'     

순진은 재영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얼떨떨한 얼굴로 순진이 내민 명함을 받아 든 재영은 명함을 잠깐 쳐다보았다.     

“그런데 죽은 호수 씨가 배를 탄다고 했다고요?‘     

'예, 몇 달 새우 잡이 배를 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강화에 얼마간 있다가 왔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새우 잡이를 했다가 가스배달원으로 일했다는 거군요?'     

'네, 그렇습니다.'     

'오늘 여러 가지로 힘드실 텐데 말씀은 여기까지 하시고 좀 쉬시는 건 어떨까요? 필요하면 저희가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숙소는 저희가 마련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숙소는 제가 알아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저희와 당분간은 연락이 필요하실 듯합니다. 저희가 안내하겠습니다.'     

재영은 더 뿌리치지 못하고 혁을 따라나섰다.      

일어나는 혁을 향해 순진은 나지막이      

'강화 알아봐. 난 돌산 좀 더 캐볼게.'     

하고는 복도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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