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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다샤 Aug 10. 2020

동굴 속의 호수

7. 깨끗한 손, 그리고 불온문서

7.     

혁은 동굴 안으로 플래시를 비춰보았다. 동굴 입구는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만큼 좁았다. 한 여름인데도 동굴 안쪽에서는 서늘한 공기가 에어컨 바람처럼 뿜어 나오고 있었다. 제법 깊은 동굴의 깊이는 거의 2미터 가까이 되어 보였다. 함께 간 순진이 먼저 내려갔다. 언제 봐도 씩씩한 사람이다.      

'내가 밟고 내려가는 대로 밟고 내려와'     

순진은 입에 플래시를 물고 천천히 동굴 아래로 내려갔다.     

먼저 성큼성큼 내려간 순진이 플래시를 비추며     

'자, 천천히 내려와. 발밑을 조심하시고.'     

장갑을 한 켤레밖에 가져오지 않아 먼저 내려간 순진에게 장갑을 건네주었다. 막상 맨손으로 내려가려니 혁은 막막했다.     

한 발 한 발 조심히 내딛으며 아래로 내려갔다. 동굴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대낮이었지만 아래로 내려갈 때 플래시를 비추지 않으면 내려가는 것이 쉽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튀어나온 돌들은 칼처럼 날카로워 손을 짚을 때마다 통증이 밀려왔다. 바닥에 내려가서 손바닥을 보니 손바닥 서너 군데가 긁혀 찰과상을 입고 피가 나고 있었다.      

'어머, 손바닥에 상처가 났네? 괜찮아?'     

플래시로 혁의 손바닥을 비추던 순진은 걱정이 되는 듯 물었다.     

'괜찮아. 살짝 긁힌 것뿐이야.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자기 장갑을 뺏은 바람에 다친 것 같아 괜히 미안하네.'     

혁은 미안해하는 순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동굴 안을 살폈다. 2평 정도 되는 동굴 안을 꼼꼼히 다시 확인하며 혹시 놓친 유류품이 있는지 다시 확인해 보았으나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한쪽 구석 바닥에 검게 그을린 자국이 있는 것이 보였다. 수첩과 주민증을 태운 곳 주변에 성냥개비 잔해나 나뭇재 등이 없는 것으로 보아 라이터 같은 것으로 태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상하네. 뭘로 태운 거지?'     

'두꺼운 비닐 코팅이 된 수첩 비닐이나 주민등록증을 태우려면 라이터 이상의 화력은 되어야 할 거 같은데? 성냥으로 태우려면 여러 개의 성냥개비를 태워야 가능할 거 같아. 만약 수첩 종이로 태우려 했다면 수첩 종이가 탄 재 같은 것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여기는 그런 게 없는 걸로 봐서 라이터 같은 것이 아닐까? 그리고 라이터를 밖으로 버리려고 하면 밖으로 직접 올라가서 버리고 다시 내려와야 하는데 너무 어두워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건 쉽지가 않아. 올라갔다가 왔다면 몸 다른 곳에 다른 찰과상을 입었을 가능성이 있는데 사망 직후에 몸에 그런 상처는 발견되지 않았잖아. 그럼 남은 건 동굴 밖으로 버려야 하는데 2미터의 동굴 입구가 지붕을 덮고 있는 모양이라 동굴 안에서 밖으로 버리는 것은 쉽지 않아. 그리고 설령 동굴 밖으로 운 좋게 던졌다 하더라도 동굴 밖은 평평한 판 같은 곳으로 떨어졌을 텐데 그곳에서도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어. 그렇지?'     

'응 네 말대로야. 그럼 어떻게 되었을 거라는 거지?'     

'그거야 네가 풀어야지 왜 자꾸 기자인 나한테 물어? 내가 법의관이야?'     

'몰라서 물어보는 게 아냐. 내 생각을 확인하고 싶어서 되물었던 거야. 사실 내가 이상하다고 하는 점이 하나 있는데.'     

'뭔데?'     

'사실 유류품 감식 과정에서 주민등록증이나 수첩을 포함해 지문감식을 시행했는데 이상하게도 지문감식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어. 수사관들에게 유류품 취급을 제대로 했는지 물어보았는데 규정대로 취급했다고 하더라고. 시골 형사들이 규정대로 했는지 조금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적어도 담당 수사관들을 포함한 어떠한 지문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거야.'     

'그래? 나한테는 말하지 않았던 고급 정보네?' 하며 순진은 짓궂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래서 사망한 사람의 손을 확인해 보았을 거 아냐. 어땠는데?'     

'시간이 좀 지나서 부패 상태를 제외하고는 손바닥과 손가락의 상태는 너무 깨끗했어. 지문이 남지 않을 정도로 손가락이 훼손된 상태가 전혀 아니라는 거야. 그러니까 사전이나 사후에 유류품에 대해 조치를 취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러네. 근데 손바닥도 역시 깨끗했다는 거야?'     

'응. 맞아. 별다른 외상이 발견되지 않았어.'     

'그럼 사망한 사람은 이 동굴에 내려온 뒤에 다시 올라간 사실이 없을 가능성이 높네.'     

'나도 그 말에 동의해. 적어도 맨 손으로 이곳을 내려온다면 상처가 생길 가능성이 매우 높아. 재차 올라갔다 왔다면 반드시 손바닥에 상처가 났을 거야. 조금 전 나처럼. 그런데 손바닥에 상처가 나지 않았다는 것은 상처가 나지 않도록 장갑을 끼고 내려왔다든가 누군가 도움을 받고 내려왔다는 이야기겠지. 수첩, 주민등록증뿐만 아니라 심지어 옷 등에서도 지문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이 죽음에 제삼자의 개입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의심케 해. 그리고 다른 인화물질이 동굴 내에서 발견되지 않은 점, 혹시나 인화물질을 처리했다면 사망자의 손 등에서 유황 성분 등의 잔류물질이 발견되거나, 다른 상처 등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사망자의 손 등에서 별다른 찰과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을 보면 이건 자살이라고 보기에 아주 부적절해. 어때?'     

과연 순진의 말대로였다. 특별히 혁이 반박할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동굴에서 나온 혁은 산을 내려오며 순진에게 어디로 갈 거냐고 물었다.     

'음, 난 이 산 주변을 좀 탐문해야겠어. 특별히 뭔가 짚이는 건 없지만...'     

하며 환하게 웃었다.     

'난 사무실로 돌아가서 부검서나 서류를 다시 검토해 보려고. 혹시 중간에 놓친 게 있는 건 아닌지 다시 확인해 보고 타살 가능성을 좀 더 열어놓고 고민을 좀 해봐야겠어.'     

'알았어. 그럼 뭔가 나오면 사무실로 연락할게. 그리고 정보는 꼭 공유하는 거야. 치사하게 숨기는 거 없기다.'     

'숨기긴 뭘 숨겨. 시골에서 너무 파고 다니지 말라고. 가뜩이나 이 동네 사람들 무척이나 긴장하고 있을 테니. 몸조심해.'     

'알았어. 그럼 이따 봐. 저녁에 갓김치에 장어탕 먹으러 가자. 알았지?'     

환하게 웃으며 순진은 포장공사가 한창 마무리 중인 길을 따라 걸었다.     

사무실로 돌아온 혁은 다시 유류품 목록과 변사자가 최초로 발견된 변사자보고서를 꼼꼼히 재검토하고 있었다. 혹시 현장검증 과정에서 변사자가 가지고 있었던 물건을 놓친 것은 없는지 다시 확인해 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시 살펴보아도 순진이 말했던 인화물질이 발견되지 않았다. 또 부검감정서에 변사자의 손이나 몸에서 유황 물질 등도 발견되지 않았다. 현장감식에 참여했던 수사관들에게 재차 확인해 보았지만 역시 특별한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때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정 형사였다     

'여보세요. 아 정 형사님. 잘 지내셨어요? 어떻게 성과가 좀 있습니까?'     

'네, 지도관님 말씀하신 대로 변사자를 찾은 것 같습니다. 인천 연안가스 종업원이고 이름은 신호수라고 합니다. 67년생이고요. 약 한 달 전에 갑자기 사무실에서 사라졌다고 합니다.'     

'아, 그래요? 다행이네요. 근데 왜 갑자기 그만두었다고 하는지는 확인해보셨습니까?'     

'네, 근데 그게 좀 애매하더라고요. 여기 사장이나 종업원들 모두 신호수가 갑자기 사라질 이유가 없는데 갑자기 사라졌다는 거예요. 오히려 신호수가 매우 성실한 친구라서 다시 돌아올 줄 알고 신호수가 생활하던 사무실 쪽방에 물건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더라고요. 여기 사람들 모두 신호수가 착하고 성실하고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요? 고생하셨습니다. 그럼 조금 더 그곳에서 확인해 보시고 내려오시겠습니까?'     

'아, 근데 지도관님, 조금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습니다만.'     

'네? 그게 뭔가요?'     

'여기 같이 일하던 현구라는 동료 직원 말로는 호수가 사라지던 날 사무실로 웬 남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는데 호수를 찾아서 신호수에게 바꿔 주었다고 합니다. 잠깐 1분 정도 전화통화를 한 후 전화를 끊길래 무슨 전화냐고 신호수에게 물었더니 친구가 불온문서 같은 걸로 뭔가 문제가 생긴 거 같다, 별일 아니다라며 웃으며 말했다는 겁니다. 웃으며 별일 아니라고 하길래 크게 개의치 않아서 기억하지 못했다고 했더라고요. 그런데 신호수가 사망했다고 하니 갑자기 그 일이 떠올랐다고 하더라고요.'     

'불온문서요?'     

'네, 그래서 전화가 어디서 왔는지를 좀 확인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 그 전화가 신호수 사망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수서에서 인천서로 공문 좀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공문 발송되는 대로 인천서에서 기다렸다가 확인해보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신호수 인적사항을 알려주시면 곧바로 공문을 통해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럼 좀 더 남아서 고생해 주세요.'     

전화를 끊고 나니 혁은 점점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여수 돌산, 동굴, 인천, 전화, 불온문서.... 이게 무슨 조합이지?     

혁은 곧바로 공문을 작성해 인천경찰서로 협조공문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하고 허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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