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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다샤 Aug 10. 2020

동굴 속의 호수

6. 가스 배달

6.     

‘예, 아직 도착 안 했다고요? 죄송합니다. 다른데 배달이 밀려서 좀 늦는 모양인데 아마 금방 도착할 겁니다. 제가 지금 전화해서 다른 곳 배달보다 거길 제일 먼저 가라고 하겠습니다. 네. 네. 죄송합니다. 그럼요. 식당에 가스가 없어서야 안 되죠. 네 바로 가라고 하겠습니다. 네 죄송합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전화기가 울렸다.      

‘네, 연안 가스입니다. 아, 네, 덕적 식당이요. 네. 5분 안에 도착한다고 하네요. 네네 죄송합니다.’     

오늘따라 가스배달로 전화기에 불이 날 지경이다. 가스배달은 점점 늘어나는데 배달원 손이 모자라 늘 저녁시간에 이렇게 전화기에 연신 사과를 하는 일이 매일 반복되고 있다. 전화를 끊으며 연안 가스 조 사장은 속으로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일 잘하던 호수가 있었다면 이 난리도 없었을 텐데.... 도대체 호수 그놈은 왜 갑자기 사라진 거야? 일을 하는 동안 동료직원들과 관계도 좋았고, 급여문제로 갈등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다른 직장으로 옮기려고 하지도 않았다. 함께 일했던 현구나 동료들도 특별히 일을 그만둘 이유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호수는 한 달 전에 사라졌다.          

호수를 처음 본 것은 작년 11월경이었다. 군에서 막 제대한 호수는 일자리를 찾아 이곳에 왔다고 했다. 첫날 호수를 만난 자리에서 이 아이는 진실한 눈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눈이 맑고 말수가 없었으나 성실하고 착한 아이였다. 이름처럼 맑은 호수 같은 눈은 처음 만난 누구에게나 편안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첫인상과 같이 호수는 늘 성실했고 어긋남이 없었고 말수가 적었으나 착한 아이였다.     

호수는 날이 좋거나 궂은 날씨와 관계없이 늘 같은 시간에 배달 거래처에 정확히 가스를 배달하였다. 호수가 담당했던 거래처에서는 단 한 번도 항의 전화가 걸려오는 법이 없었다.      

호수는 연안 가스 사무실 옆에 달린 작은 쪽방에서 생활하였다. 2층은 신혼부부가 살고 있었지만 신혼부부도 늘 말수가 적은 호수를 칭찬하였다. 그런 호수가 사라진 것이다.     

‘이 녀석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그때 연안 가스 사무실 유리문이 열렸다.     

덩치가 제법 좋은 남성이 들어왔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여기 가스 집은 가스배달도 하는가요?’     

‘네 그렇습니다만’     

‘아, 저는 여수에서 온 경찰입니다.’     

정 형사는 조 사장에게 신분증을 내밀며 자기를 소개했다.     

‘아, 네. 그런데 여수경찰서에서 인천까지는 무슨 일로?’     

‘아, 사람 하나를 좀 찾고 있거든요. 혹시 여기 한 달 전쯤 일을 그만두거나 사라진 종업원이 없나 해서요.’     

‘네? 사라진 사람이요?’     

잠깐 사이를 두고 혹시 호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잠시 뜸을 들인 조 사장은 다시 입을 뗐다.     

‘네 한 명 있기는 한데요.’     

‘아, 그래요? 그게 누굽니까?’     

‘여기서 일하던 가스배달 종업원입니다.’     

‘그래요? 혹시 이 사진 좀 봐 주실 수 있습니까?’     

수사관들은 작은 가방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조 사장에게 내밀었다. 수사관들은 사진을 본 조 사장의 표정이 분명 붉게 상기되며 놀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는 사람이죠?’ 정 형사는 짐짓 넘겨짚어 물었다.      

그랬다. 옷을 벗고 누워 있는 것은 분명 호수였다. 눈을 감고 있고 너무도 낯선 모습이지만 분명 호수였다. 이 녀석, 왜 여기 누워 있는 거지?     

‘맞아요. 여기서 일하던 호수라는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 왜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거죠?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누가 죽인 거예요? 한 달 만에 이런 꼴을 하고 있다니. 누가 죽인 거죠?’     

불안해하며 끊임없이 질문을 쏟아내는 조 사장에 반해, 정 형사는 변사자가 특정되어 속으로 너무도 기뻤다. 수사의 끝이 보이는 것이다. 이제 변사자 신원을 확인하고 보고서만 작성하면 골치 아픈 변사사건 하나를 해결하게 되기 때문이다. 기쁜 마음 한편에 지도관의 놀라운 추리력에 감탄했다. 인천 연안 가스충전소에서 이렇게 쉽게 변사자를 찾아내다니 다시 생각해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 호수와 관련된 이력서 같은 서류나 인적사항에 대해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하고는 책상에서 서류철을 꺼내며 조 사장은 연신      

‘그 녀석이 그럴 녀석이 아닌데, 도대체 , 아이고 참!’     

하며 탄식을 쏟아냈다.     

정 형사는 서류철을 넘겨받으며 조 사장에게     

'혹시 여기서 함께 지내던 다른 동료가 있었습니까?'     

'뭐 다른 동료라고는 없었고 충전소에서 먹고 자는 건 호수 혼자였습니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모두 출퇴근을 하던 사람들이죠. 그나마 현구가 좀 친해서 호수와 잘 어울렸던 것 같은데..'     

'현구, 지금 그 친구는 어딜 가면 만날 수 있을까요?'     

'오늘 자기 배달하고 자기 구역에 있는 거래처 가스점검 후에 돌아온다고 했는데, 제가 한번 연락해 볼게요.'     

말을 마친 조 사장은 사무실 책상 옆에 마련된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거래처 배달이나 가정집에 배달 주문이 들어오면 이렇게 무전기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는 모양이다. 사장은 1호차를 호출하였고, 잠시 후 1호차라는 사람의 목소리가 무전기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현구야, 여기 사무실인데 잠깐 들어왔다 가야겠다.'     

'거래처 가스통 교체하던 것 마저 끝내고 들어갈게요. 한 15분이면 될 거 같아요.'     

무전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20대 청년의 목소리였다.     

무전을 마친 사장은 무전기를 내려놓으며 금방 들어올 것이라고 했다.     

'배달은 무전기를 통해 주고받나 보죠?'     

'네, 연락할 방법이 없으니 이렇게 무전기를 통해 배달 연락을 합니다. 가스배달은 신속이 생명인데 무전기만큼 좋은 게 없어요. 사무실에서는 20여 킬로미터까지 무전연락이 가능하니 저희 배달지역은 모두 커버된다고 보면 돼요.'     

'모두 같은 무전 채널을 쓰는 건가요?'     

'그렇죠. 모두 같은 채널을 쓰죠. 근데 배달원들이 자기들끼리 연락을 할 때 쓰는 채널 번호를 서로 정해 놨나 보더라고요. 그래서 자기들끼리 모일 때는 다른 채널을 정해서 연락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종업원들끼리 모인다고요?'     

'예, 저도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직원들끼리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배달이 좀 한가한 시간에 직원들끼리 무전을 통해 가게나 공터에 모여 커피나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나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사무실에서는 사적인 용도로 무전을 사용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데 직원들끼리는 공공연히 그렇게 사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 네, 그렇군요.'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조금 전 조 사장과 무전연락을 나눴던 것으로 보이는 직원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아, 현구 왔니? 다른 게 아니라 여기 분들이 경찰서에서 오신 분들인데 호수와 관련해서 물어볼 게 있다고 하셔서 들어오라고 했다.'     

'호수요? 호수를 찾았대요? 그 새끼 무슨 사고 친 건 아니죠?'     

정 형사가 끼어들며 말을 막았다.     

'아니 그건 아니고. 우리가 좀 궁금한 게 있어서'     

'호수는 지금 어디 있어요?'     

'호수는 여수 돌산에 있습니다. 사망한 채로'     

'예, 사망이요? 호수가 죽었다고요?'     

'아, 네.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입장에서도 여러 가지 궁금한 게 있어서 물어보려 합니다만.'     

정 형사는 현구를 바라보며 수첩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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