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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다샤 Aug 10. 2020

동굴 속의 호수

5. 그래서 결론은? 자살? 타살?

5.     

오래간만에 취재도 없는 천금 같은 비번인 날이 찾아왔지만 순진은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쉬는 날이라고 남자 친구와 놀이동산을 꿈꾸거나 여행을 꿈꾸지 않는다. 단지 소박하게 극장에서 영화 한 편 보고, 밥 한 끼 함께 먹고, 그것도 힘들면 잠깐 아주 잠깐이라도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정도만 바라는 것이다. 아니 그것도 사치라면, 으깨지고 부서져 선혈이 낭자한 사건 현장에서 함께 마주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다고 순진은 생각했다.     

의학을 전공하고 평범하게 흰 가운 걸치고 병원에서 의사 대접받으며 적당히 살 걸 왜 이 고생을 하며 사나 후회가 밀려온다. 같은 대학, 같은 의대에서 만나 연인이 된 우리는 대학 전공 선택을 앞두고 엉뚱한 결정을 서로 했다. 남자 친구는 죽음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내는 법의학을 전공하겠다고 선언했다. 평소 추리소설이나 탐정소설을 좋아했던 그 녀석은 취미를 넘어 인생을 걸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말리고 말려도 설득이 되지 않아 결국 나도 '너 전공의 안 하면 나도 그만두련다. 너 없이 내가 무슨 재미로 병원 생활하겠냐'하고는 언론사 시험을 보고는 의학전문 기자로 살게 된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사건 사고 현장에서 우리는 자주 얼굴을 보고 함께 할 수 있었다. 트럭에 으깨진 사람과 함께, 물에 빠져 익사한 사체와 함께, 찜질방에서 질식사한 부검 사체와 함께라는 전제가 있지만... 그래도 얼굴을 보는 것이 어디인가?     

그런데 오늘은 연락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용기를 내 회사에 전화하니 여수에 내려갔다고 한다. 사건이 난 모양이었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여수 지국에 있는 진화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사건이 났는데 아주 흥미로워할 만한 사망사건이라며, 괜찮으면 취재차 내려오라고...     

주저 않고 데스크에 전화해 내려가기로 했다. 혁이도 내려갔으니 잘 됐다 싶은 생각에... 쉬는 날 취재를 간다고 하니 회사에서는 흔쾌히 취재를 허락했다.      

여수는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멀기도 하지만 생소한 도시이다. 여수 터미널에서 내린 다음 다시 돌산으로 들어가는 시외버스로 갈아타고 또 한참을 들어갔다. 취재비 아낀다고 회사에서 상주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궁상맞게 다니는지...     

혁이가 있다는 여수의 병원에 도착해서 임시 부검실로 찾아갔더니 서류 종이에 뭔가를 끄적이고 있는 혁이 보였다.     

'야! 어딜 가면 간다고 연락이라도 하고 가야 하는 거 아냐? 내가 실종된 널 이렇게 찾아다녀야겠냐?'     

혁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더니 눈을 껌뻑거리며 '너 어떻게 여길 내려왔어?'라고 물었다.     

대충 알아들을 만큼 잔소리를 섞어 내려오게 된 경위를 말해주었다.     

'에이, 잘됐네, 남자 친구도 보고 사건 취재도 하고. 마침 나도 이 먼 돌산에서 좀 외로웠는데 잘 됐네. 하하'     

'너 좋자고 내려온 거 아니니 착각하지 마. 그리고 현장에서 만날 때는 적당히 체면 좀 지켜라. 애도 아니고'     

'깐깐하기는'     

'헛소리 소리 그만하고, 어떤 억울한 죽음이 부른 거야?'     

혁은 변사사건에 대해 대충 설명해 주었다. 발견 과정, 검안, 부검, 유류품, 인적사항 진행 등 수사상황에 대해서도 대략 설명하였다.     

'그래서 결론은? 자살? 타살?'     

‘급하긴, 온 지 얼마나 됐다고 자살 타살이야?     

‘지금까지 조사한 상황만 가지고 물어보는 거야.’     

'발목 부분이나 인적사항에 대한 의구심은 있는데 그게 자살을 뒤집을만한 건 못돼, 현재까지는 자살 가능성이 더 커 보여'     

'그래? 사체 상태가 의심이 가는 것이나 인적사항이 이곳과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측면의 의구심 말고 자살이 아닐 수 있다는 결정적 증거는 없다 이거지?'     

'응, 그래'     

갑자기 순진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풋! 정말? 그렇게 추리소설 읽고  탐정되겠다고 탐정 놀이하려고 법의학 공부해서 수사지도관 하더니 머리가 굳어 버렸나? 뭐가 자살이야?'     

'야, 너 어디서... 함부로 자살이니 타살이니 하는 거야? 이건 사건이야. 사람이 죽은 사건!'     

'그러니까 더더욱 신중했어야지. 이게 어떻게 자살이야. 수첩과 주민증을 태웠다면서. 그럼 죽은 사람이 태웠을 텐데 그 사람이 태우고 바로 죽었을 것 야냐. 그럼 현장 유류품 중에서 타다 남은 성냥이나 라이터가 있어야 하잖아. 근데 여기 유류품 증거목록에 없어. 죽을 사람이 자기 물건 태우고 친절하게 타다 남은 성냥개비나 라이터를 그 높은 동굴 밖으로 낑낑 거리며 올라가서 버리고 다시 내려와서 목을 매지는 않았을 거고... 그럼 다른 놈이 태우고 나갔을 가능성. 이거 어떻게 설명할 거야?'     

'아~~` 혁은 망치로 크게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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