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그래서 결론은? 자살? 타살?
5.
오래간만에 취재도 없는 천금 같은 비번인 날이 찾아왔지만 순진은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쉬는 날이라고 남자 친구와 놀이동산을 꿈꾸거나 여행을 꿈꾸지 않는다. 단지 소박하게 극장에서 영화 한 편 보고, 밥 한 끼 함께 먹고, 그것도 힘들면 잠깐 아주 잠깐이라도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정도만 바라는 것이다. 아니 그것도 사치라면, 으깨지고 부서져 선혈이 낭자한 사건 현장에서 함께 마주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다고 순진은 생각했다.
의학을 전공하고 평범하게 흰 가운 걸치고 병원에서 의사 대접받으며 적당히 살 걸 왜 이 고생을 하며 사나 후회가 밀려온다. 같은 대학, 같은 의대에서 만나 연인이 된 우리는 대학 전공 선택을 앞두고 엉뚱한 결정을 서로 했다. 남자 친구는 죽음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내는 법의학을 전공하겠다고 선언했다. 평소 추리소설이나 탐정소설을 좋아했던 그 녀석은 취미를 넘어 인생을 걸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말리고 말려도 설득이 되지 않아 결국 나도 '너 전공의 안 하면 나도 그만두련다. 너 없이 내가 무슨 재미로 병원 생활하겠냐'하고는 언론사 시험을 보고는 의학전문 기자로 살게 된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사건 사고 현장에서 우리는 자주 얼굴을 보고 함께 할 수 있었다. 트럭에 으깨진 사람과 함께, 물에 빠져 익사한 사체와 함께, 찜질방에서 질식사한 부검 사체와 함께라는 전제가 있지만... 그래도 얼굴을 보는 것이 어디인가?
그런데 오늘은 연락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용기를 내 회사에 전화하니 여수에 내려갔다고 한다. 사건이 난 모양이었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여수 지국에 있는 진화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사건이 났는데 아주 흥미로워할 만한 사망사건이라며, 괜찮으면 취재차 내려오라고...
주저 않고 데스크에 전화해 내려가기로 했다. 혁이도 내려갔으니 잘 됐다 싶은 생각에... 쉬는 날 취재를 간다고 하니 회사에서는 흔쾌히 취재를 허락했다.
여수는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멀기도 하지만 생소한 도시이다. 여수 터미널에서 내린 다음 다시 돌산으로 들어가는 시외버스로 갈아타고 또 한참을 들어갔다. 취재비 아낀다고 회사에서 상주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궁상맞게 다니는지...
혁이가 있다는 여수의 병원에 도착해서 임시 부검실로 찾아갔더니 서류 종이에 뭔가를 끄적이고 있는 혁이 보였다.
'야! 어딜 가면 간다고 연락이라도 하고 가야 하는 거 아냐? 내가 실종된 널 이렇게 찾아다녀야겠냐?'
혁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더니 눈을 껌뻑거리며 '너 어떻게 여길 내려왔어?'라고 물었다.
대충 알아들을 만큼 잔소리를 섞어 내려오게 된 경위를 말해주었다.
'에이, 잘됐네, 남자 친구도 보고 사건 취재도 하고. 마침 나도 이 먼 돌산에서 좀 외로웠는데 잘 됐네. 하하'
'너 좋자고 내려온 거 아니니 착각하지 마. 그리고 현장에서 만날 때는 적당히 체면 좀 지켜라. 애도 아니고'
'깐깐하기는'
'헛소리 소리 그만하고, 어떤 억울한 죽음이 부른 거야?'
혁은 변사사건에 대해 대충 설명해 주었다. 발견 과정, 검안, 부검, 유류품, 인적사항 진행 등 수사상황에 대해서도 대략 설명하였다.
'그래서 결론은? 자살? 타살?'
‘급하긴, 온 지 얼마나 됐다고 자살 타살이야?
‘지금까지 조사한 상황만 가지고 물어보는 거야.’
'발목 부분이나 인적사항에 대한 의구심은 있는데 그게 자살을 뒤집을만한 건 못돼, 현재까지는 자살 가능성이 더 커 보여'
'그래? 사체 상태가 의심이 가는 것이나 인적사항이 이곳과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측면의 의구심 말고 자살이 아닐 수 있다는 결정적 증거는 없다 이거지?'
'응, 그래'
갑자기 순진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풋! 정말? 그렇게 추리소설 읽고 탐정되겠다고 탐정 놀이하려고 법의학 공부해서 수사지도관 하더니 머리가 굳어 버렸나? 뭐가 자살이야?'
'야, 너 어디서... 함부로 자살이니 타살이니 하는 거야? 이건 사건이야. 사람이 죽은 사건!'
'그러니까 더더욱 신중했어야지. 이게 어떻게 자살이야. 수첩과 주민증을 태웠다면서. 그럼 죽은 사람이 태웠을 텐데 그 사람이 태우고 바로 죽었을 것 야냐. 그럼 현장 유류품 중에서 타다 남은 성냥이나 라이터가 있어야 하잖아. 근데 여기 유류품 증거목록에 없어. 죽을 사람이 자기 물건 태우고 친절하게 타다 남은 성냥개비나 라이터를 그 높은 동굴 밖으로 낑낑 거리며 올라가서 버리고 다시 내려와서 목을 매지는 않았을 거고... 그럼 다른 놈이 태우고 나갔을 가능성. 이거 어떻게 설명할 거야?'
'아~~` 혁은 망치로 크게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