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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다샤 Aug 10. 2020

동굴 속 호수

10. 당야공작

10.     

‘사체가 발견된 현장인 대미산은 국도 17번 도로에 접해 있으며 도로에서 약 65°의 경사로 해발 110미터 지점에 동굴이 위치하며, 위 동굴은 화강암이 굴러 내리면서 서로 포개져 형성된 바위틈에 형성된 것으로써 수직동굴이다.     

신호수의 사체는 팬티만 입은 채 매달려 있었고 동굴 부분의 바위와 바위 사이의 갈라진 틈새에 바지와 와이셔츠를 이어서 만든 끈을 끼워 고정시켰으며, 사체의 양팔 팔꿈치 부분과 몸통이 혁대로 묶여 있었고 양 발목에 패인 상처 외 다른 상처는 없었다. 사체는 눈을 뜨고 있었고 시강이 남아 있었으며, 눈가와 입 그리고 발목 상처부위 등에 구더기가 있었으나 그 크기를 특정할 수 없어 구더기를 통하여 사망시간을 추정하기는 어렵다. 신호수의 사체에 신겨져 있는 양말에서는 전체를 붉게 물들일 정도의 혈액흔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이 사망 이전의 출혈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사체가 매달려 있는 상태에서 혈액 침하 현상으로 인하여 발목 부위의  상처로 혈액이 흘러나온 것에 기인한 것인지는 확정할 수 없다.      

목을 맨 끈을 고정시킨 것으로 보이는 천정 부위의 바위틈까지는 타인의 도움이나 사다리를 이용하지 않고는 혼자서 올라갈 수 없다고 보이고, 천정 부위의 바위틈은 바닥으로부터 높이 250~280 센티미터의 높이에 위치하고 있어, 신장 165센티미터 정도의 변사자가 동굴 바닥에 선채로는 이를 확인할 수 없고, 동굴 내부의 바위를 타고 올라가야만 확인할 수 있어서 변사자가 자살을 할 끈을 묶는 장소로 선택하였다고 보기에는 부자연스러운 점이 있으나, 이것만으로 혼자서 위 장소에 올라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변사자의 사체를 검안한 의사 김 00은 사체가 발견된 동굴 안에 들어가서 사체를 검안하지 않았고 사체를 굴 밖으로 꺼낸 후에 검안을 하였으나 사체의 팬티나 양말을 벗긴 사실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체의 배면 부위 등을 검안하지 않았다. 그리고 변사자의 사체에 대한 부검은 사체 발견 후 20일이 경과한 돌산읍 평사리 마을 공동묘지에 가매장한 신호수의 사체를 발굴하여 관 속에 안치된 상태에서 지도관의 집도로 행하였다.     

부검 결과 ‘앞 목 부분에서 중심으로 양측 이하 부위까지 노끈에 의하여 압박흔이 있고 후두 및 기관이 협착되어 폐쇄된 것으로 보아 노끈으로 목을 달아매어 질식사(의사)로 사료되며 더욱이 사반 등이 사지 즉 손끝 발끝 등에 현재된 것으로 보아 본 사체는 의사’한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나 부검 당시는 부패된 매장 시신에 대하여 이루어졌는데 매장할 경우 입관 시 경부가 접히는 현상이 발생될 수 있으므로 경부 장기의 손상 여부를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이상의 점을 종합하면, 사후 검안 및 부검 결과가 정확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된다.‘          

한참 보고서를 쓰던 손은 전화벨 소리에 멈췄다.     

인천에 가 있던 정 형사의 전화다.     

‘지도관님, 안녕하셨어라? 어찌 여수 음식과 잠자리는 불편하지 않으신가요?’     

‘지금 남 걱정하실 때가 아닌 듯한데요. 건강히 지내시는 건가요?’     

‘아이고, 제 걱정은 하덜 않으셔도 된다니까요. 우리 정보과 사람들은 생명력이 바퀴벌레 같은 놈들이라 어지간해서는 불편한 걸 못 느끼니까요. 그나저나 새로운 소식이 있어서 전화했네요.’     

‘새로운 소식요?’     

‘예, 그게 지난번 변사자가 일했던 충전소로 걸려왔다는 전화를 분석해 보니 그게 인천 연안파출소더라고요.’     

‘예, 연안파출소요? 파출소에서 왜?’     

‘연안파출소에 찾아가서 확인해 봤더니 자기들이 전화한 게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아니 그럼 누가 전화했다는 겁니까? 연안파출소 전화번호라면서요.’     

‘전화번호가 맞기는 하는데 누가 연안가스에 전화를 했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평소에도 그곳이 인화물질을 취급하는 취약지구로 지정되어 순찰 시에 한 번씩 들르기도 하고, 들르지 못할 때에는 전화를 걸어 안전 확인을 한다고 합니다. 혹시 그래서 전화를 했는지도 모른다고 파출소장이 그러더라고요.’     

‘다른 직원들도 확인해 보셨나요?’     

‘네, 확인해 봤는데 특별한 건 없었습니다. 여기는 소장 한 분하고 순경 2명, 의경 1명밖에 없는 작은 파출소라 다 확인해 봤는데 특별한 건 없었습니다. 혹시 뭔가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지도관님 전화번호를 일러놓고 왔으니 전화가 갈 겁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그래도 고생하셨네요. 그럼, 이제 여수로 내려오실 건가요?’     

‘아뇨, 전 조금 더 있다가 내려가려고요. 모처럼 만에 서울 가까이 올라왔는데 그냥 내려가면 아쉽잖아요. 좀 더 서울 구경하다가 갈랍니다. 서장님께는 지도관님께서 잘 좀 말씀해 주십시오.’     

‘아, 그래요? 마침 잘되었네요. 그렇잖아도 정 형사님 좀 더 남아계시라고 부탁을 드리려고 하던 참이었는데...’     

‘아, 정말요. 야. 이거 이심전심이네요. 그럼 못 이기는 척 며칠 머물다 내려가겠습니다.’     

‘네, 정 형사님, 쉬시면서 강화에 좀 다녀오셔야겠습니다. 작년에 호수가 인천에 가스 배달하기 전에 강화에서 새우 잡이 배를 탔다고 합니다. 혹시 어떤 새우 잡이 배를 탔는지 확인 좀 해주시겠습니까? 마침 바닷가니 회도 좀 드시고, 아 강화는 꽃게탕이 유명하다고 하더라고요.’     

‘예, 강화요? 아니 지도관님... 이건...’     

‘정 형사님, 너무 고마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너무 무리하게 조사하지는 마시고요. 출장연장기안보고서는 제가 작성해서 협조해 놓겠습니다. 그럼 편안히 탐문하시길 바랍니다. 수고하십시오. 끊겠습니다.     

정 형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수화기 넘어 들렸으나 혁은 냉정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전화를 끊으며 혁은 그나저나 자신도 얼른 사건을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누군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네, 들어오십시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여수서 서장과 정보과장, 형사과장 등이었다.     

‘엇, 서장님, 어쩐 일로 여기까지’     

‘아이고, 우리 지도관님이 여기까지 내려와서 고생하시는데 제가 찾아뵙지도 못하고 죄송합니다. 수사하시는데 불편함이 많으시죠? 제가 빚을 많이 지게 되네요. 지도관님, 오늘 저희와 저녁식사하시도록 시간 좀 내주시죠.’     

‘아닙니다. 시간도 바쁘실 텐데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지도관님 꼭 오늘 모시고 싶습니다. 같이 나가시죠. 식당도 다 예약해 놨습니다. 저희의 정성을 물리치지 말고 같이 나가시죠. 그동안 고된 업무로 몸도 상하셨을 텐데 장어라도 좀 드시면서 좀 쉬셔야지. 자, 자’     

거의 떠밀리다시피 혁은 끌려 나갔다. 난감했다. 아직 할 일도 많은데 라는 생각을 하며 서장의 손에 이끌리고 있었다.          

저녁식사라고 하지만 술자리에 가까웠다.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젊은 여성들 한 명씩 손님 곁에 앉아 시중을 들고 있었다. 반찬을 덜어 챙겨주고, 생선을 발라놓고, 술잔이 비었을 때는 항상 채워 넣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말이 없었다. 말하고 듣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술잔을 입에서 떼며 서장이 말했다.     

'저희 관내는 사실 큰 강력사건이 그렇게 많지 않은 곳인데, 모처럼 골치 아픈 사건이 터져서 머리가 아픕니다. 특히나 돌산 같은 작은 섬은 바다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만 사는 순박한 사람들이라 이런 사건은 관내 치안담당자로서 굉장히 당황스럽습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사건이라는 게 도시나 농촌, 환경을 가려가며 발생하는 게 아니라서 말이죠. 사건의 개연성이란 워낙에 우발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서요.'     

이때 여수경찰서 형사과장이 냉큼 끼어들었다.     

'아무렴요. 사건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닌데 어디서 어떻게 사건 발생을 예측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죠. 개연성은 분명히 있을 수 있죠. 특히 대미산이라면...'     

불쑥 정보과장이 대화에 참여했다.     

'대미산의 개연성이라는 게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건지 궁금한데요?'     

'제가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지도관님'     

'김 과장, 말 끊지 말고 지도관님께 자세히 설명드려 보게. 작은 것이라도 지도관님에게는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을지 모르니...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정보과의 역할 아닌가... 하하하'     

서장이 떠밀듯 정보과장을 부드럽게 다그쳤다.     

'사실 별것 아닐 수도 있고, 지도관님께서 이미 파악하신 사항일 수도 있는데요. 그럼 두서없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정보과에서 하는 일은 관내 지역의 동향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그 임무입니다. 일반시민들 사이에서의 사안에서부터 관내 공기관, 유관기관 등에서 일어나는 모든 정보를 수집하죠. 그리고 중요하게 여기는 업무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관내 대공업무와 관련한 대공정보를 수집하는 일입니다. 일상정보활동에서부터 방첩 정보활동까지를 아우릅니다. 대공 방첩 정보업무에는 대공상 유의점이 있다고 판단되는 인물에서부터 대공 취약지역 감시까지 다양하게 있습니다.'     

'민간인에 대한 대공 사찰이야 익히 알고 있지만 대공 취약지역 감시 업무라는 것은 좀 생소합니다.'     

'대공업무는 치안과 별개의 업무이기 때문에 경찰 조직 안에서도 담당하는 사람들 이외에는 많이 생소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무장간첩 등이 육상이나 해안을 통해 침투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습니까. 그런 침투를 사전에 막아내기 위해 경비상황을 강화하고 과거 좌익 관련 가족들의 동향을 파악하는 것이죠. 특히 북한에서 6.25 때 월북했던 사람들을 남한에 남파간첩으로 내려보내 가족들과 접선하게 하여 남파공작거점을 만드는 일들을 하였습니다. 이것을 '당야 공작' 즉 하룻밤에 공작을 끝내고 올라가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내려올 때 쉽게 만나기 위해 비트나 무인포스트를 약속하고 올라갑니다.'      

'제가 경찰 조직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그런 사실들은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그러실 겁니다. 저도 관내 치안 책임자이지만 이렇게 자세한 설명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하 하하'     

경찰서장의 넉살스러운 웃음소리를 무시하듯 정보과장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여수 역시 그런 취약지역 중에 하나였습니다. 바닷가가 가깝고 한국전쟁 때 좌익분자들이 많이 활동했던 지역이었죠. 당연히 그 가족들 중에는 월북자 가족이 존재합니다. 그런 월북자 가족들에게 남파간첩들이 찾아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저희는 매년 정보활동계획을 세우고 그 해 정보사범 예상 인물들에 대한 사찰을 통해 정보활동보고를 안기부에 보고합니다. 그 성과에 따라 차기 연도 예산 등이 차등 편성됩니다. 저희도 매년 바닷가 주변의 취약지역을 중심으로 보고를 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뭡니까?'     

혁은 자신도 모르게 되묻고 있었다.     

'변사자가 발견되었다는 그 대미산 말입니다. 묘하게 그 대미산이 대공 취약지로서 매년 저희가 관리하던 곳입니다.'     

 '그곳이 대공 취약지로 지정 관리된 곳이었다고요? 왜 그곳이 대공 취약지라는 곳이죠?'     

'지도관님, 산 아래쪽이나 바닷가 쪽에서 대미산을 바라본 적이 있으신가요?'     

'예, 현장검증 시에 연안 쪽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대미산이 연안에 바로 붙어 있는 산이라 특이하다는 생각을 해 보긴 했습니다.'     

'맞습니다. 연안에 접해 있지요. 바로 그 점 때문에 대공 취약지라는 것입니다. 산을 바라보셨다면 대미산 8부 능선 정도 높이에 있는 붉은 바위를 보셨겠군요.'     

'예, 물론입니다. 변사자가 발견된 동굴 바로 뒤에 병풍처럼 펼쳐져 우뚝 서있는 바위를 말씀하시는 거 아닙니까?'     

'정확히 보셨습니다. 그 붉은 바위는 대공 활동 관점에서 보면 남파된 간첩들이 지령문을 전달하거나 공작 장비 등을 숨기기 용이한 무인포스트로 활용하기 좋은 지점입니다. 육지에서 뿐만 아니라 바다에서도 잘 보이기 때문에 간첩 침투 시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사람이 죽었다?'     

'사실 단순한 우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우연이라고 덮기에는 조금 개운치 않은 점이 있었습니다.'     

혁은 다시 정보과장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물었다.     

'개운치 않은 점이란 어떤 것이죠?'     

'자, 자 한잔씩 하고... 밤이 긴데 뭐가 이렇게 급하십니까. 한 잔 드시고....'     

서장의 제의로 건배 후 잔을 기울였다. 정보과장 역시 술잔을 기울인 뒤 다시 자세를 고쳐 잡고 앉아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호수라고 했던가요. 죽은 그 청년. 장소의 개연성이 있어서 좀 확인해 보았습니다. 오해는 마십시오. 단순히 직업적인 감 때문에 확인한 것뿐이니까. 가족관계 중 대공용의점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신원조회를 좀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가족 중 6.25 때 인민군에게 부역한 뒤 월북했던 가족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물론 그 점 이외에 다른 가족들에게서는 특별히 수상한 점이 발견되지는 않았습니다. 관할 형사에게 확인해 보았지만 그 지역에서 죽은 호수와 관련된 대공사 건도 발견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럼 아무것도 없이 깨끗하다는 거네? 에이 이 사람 싱겁긴...'     

서장은 방석을 뒤로 빼며 김샜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죠. 주목해야 할 것은 호수의 거주지는 여기가 아니라는 것이죠. 인천이라고 했던가요? 군 생활은 서울에서 했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미 정보과장은 죽은 호수에 대한 모든 정보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 정보력에 혁은 소름이 돋았다.      

'제가 만약 경기나 서울 관내 담당자라면 친인척의 좌익 경력과 월북 사실만으로도 호수를 주목했을 겁니다. 다시 말해 죽은 호수는 그런 주목을 충분히 받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오호. 그럴 수 있군. 하여간 우리 정보과장이 대한민국 최고의 대공 자원이라니까. 김 과장이 없으면 우리나라는 이미 적화통일 돼서 붉은 마수의 땅이 되었을 거야. 자 한잔하지. 정말 우리 김 과장 엄청나'     

서장이 치켜세운 엄지손가락을 쳐다보며 혁은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좌익 경력? 대공 활동 관련자?      

어쩌면 이 사건은 단순 형사사건에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공, 방첩과 같은 생소한 단어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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