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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다샤 Aug 10. 2020

동굴 속의 호수

12. 강화도

12.     

비릿한 바다내음은 여수 바닷가와 같지만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확실히 여수의 바람과 다르다. 한여름의 습한 바람 속에 북쪽의 찬 기운이 깊이 담겨있는 분명 남쪽의 바람과는 다른 해풍이었다. 강화도 창후리 선창가는 여수의 선창만큼 크고 화려하지는 않은 작은 선창가였다. 마침 정 형사가 찾아간 때가 '조금' 때라 출항하지 어선들이 제법 선창가에 모여 있었다. 선창가 방파제에서는 다음 출항 준비를 위해 그물을 손질하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장마가 끝나가기 전 새우 잡이를 준비하는 것이리라.      

선창가 가운데 위치한 '어촌계' 사무실에 들러 대풍호 선장의 배와 신원을 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뱃사람들이나 선주들이 모여 만든 어촌계에는 바다로 먹고사는 마을에서는 가장 큰 정보력과 조직을 가지고 있다. 항만시설과 어로 채취에 관한 모든 걸 결정하는 마을의 실질적인 권력기관이다.      

어촌계장에 의하면 대풍호는 여느 배들과 마찬가지로 출항 준비를 위해 부둣가에서 그물 손질을 한다고 했다. 어촌계장이 알려준 곳으로 가자 항구에 붉은 깃발과 흰 깃발을 가득 달고 선미에 '대풍호'라고 쓰인 푸른 배를 볼 수 있었다. 대풍호로 다가가자 그 앞에서 그물을 다듬고 있는 제법 나이가 들어 보이는 건강한 피부의 남자가 얼굴을 쳐들었다. 그 사내는 정 형사가 자신을 만나기 위해 접근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이 정 형사를 빤히 쳐다보았다.      

정 형사가 다가서며 인사했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어구 손질하시나 봐요. 요즘 새우 잡는 철인 가요?'     

'예~'     

사내는 정 형사의 살가운 말 붙임을 퉁명스럽게 받아쳐 냈다.     

'선장님, 혹시 대풍호 선장님 맞으신가요?'     

'맞는데, 그건 왜 묻소?'     

사내는 본론을 꺼내 달라는 듯 재촉하며 물었다.     

정 형사는 신분증을 꺼내 보이며      

'저 여수 정보과 정 형사라고 합니다. 뭐 좀 여쭤보려고요.'     

'이제 여수에서 까지 찾아오고.. 참 지랄 맞네.'     

선장이 내뱉는 말을 정 형사는 곧장 받아 챘다.     

'저야 처음 오는 건데, 어디서 또 찾아왔었나 봐요?'     

'아니 경찰들이 새우 잡는 법 배우러 오는 것도 아니고 바다에서 물고기 잡아 하루하루 먹고사는 우리 같은 놈들 왜 자꾸 괴롭히나 몰라. 왜 자꾸 이러는 거요?'     

'아니, 밑도 끝도 없이 뭘 괴롭힌다고 그러시는지.'     

'당신도 지난번에 찾아온 사람들처럼 호수인지 바다인지 하는 젊은 사람 때문에 찾아온 거 아니요?'     

'그러긴 하는데, 저 말고 누가 찾아왔었다는 겁니까?'     

'그럼 이번에는 나를  여수까지 데리고 가서 조사하는 거요?'     

'아니 자꾸 못 알아듣는 소릴 하시네. 누가 선장님을 데려가요. 데려가려면 영장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오늘 궁금한 거 여쭤보려고 온 것뿐입니다. 뭔가 오해가 있으신 거 같은데요.'     

'그럼 지난번 서울 경찰들과는 상관없나 보네.'     

'서울경찰이라는 게 뭔 말이에요?'     

선장은 자신이 뭔가를 오해하고 있었구나 하며 멋쩍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한 달 좀 넘었던 거 같은데 서울 무슨 경찰이라고 하면서 여길 찾아왔었거든요. 그 남자 형사 둘이 찾아왔는데 호수라는 젊은 사람이 우리 배에서 일을 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몇 달 일한 적 있다고 했더니 잠깐 같이 가서 몇 가지만 확인해 달라고. 그래서 근처 파출소로 가는 줄 알고 따라나섰더니 서울까지 데려가지 뭐겠소. 거기서 조사하면서 그 호수라는 젊은이가 월북을 하려고 하지 않았느냐, 북한 선전을 하지 않았느냐, 배를 타면서 해군 경비나 경비정 정보 같은걸 수집하는 거 같지 않더냐 하고 맥없는 소리만 잔뜩 물어보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런 거 없었다고 했더니 아니 형사들 태도가 변하더니 아주 나를 고약하게 괴롭혀서 혼났소.'     

선장의 말을 듣고 정 형사는 짐짓 놀랐다. 그리고 뭔가 하나의 실마리와 풀릴 것이라는 감을 잡았다. 그 사이 선장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형사들이 나보고 납북된 적이 있냐고 물어봐. 그래서 20년 전에 한 번 북한 경비정에 납치되었다가 풀려난 적이 있다고 했더니 그때부터 나를 간첩으로 몰아가려고 하는 거예요. 내가 북한에 있을 때 지령을 받고 와서는 20년간 한국에서 숨어 지내면서 간첩을 했다나 뭐라나. 그래서 내가 그 젊은이를 데리고 월북하려고 한 거라면서... 나 참 기가 차지도 않아서..'     

'그래서 거기서 조사받고 어떻게 되셨어요?'     

'하룻밤을 꼬박 조사받고 둘째 날 밤에 도저히 못 버티겠더라고. 그래서 그 젊은이가 좀 수상한 거 같다. 뭔가 간첩 같은 수상한 행동을 보이더라 이렇게 써주니까 풀어주더라고요.'     

'조사받았던 경찰서 이름이 기억나나요?'     

'조사하는 사람들도 이름을 서로 부르지 않고 무슨 과장, 대리 이렇게 부르더라고. 들어갈 때나 나올 때 눈도 가리고 나와서 경찰서 이름도 못 봤어요. 아 맞다. 거기서 버스를 타고 오는데 경찰서 근처에 불광 터미널이 있더라고. 서부시장이라는 시장도 있고...'     

'아, 그래요?'     

'근데 당신이 경찰이라니까 말을 하긴 했는데 나올 때 밖에 나가서 거기서 조사받은 거 입 밖에 내지 않겠다고 각서 쓰고 나왔는데 별 일없겠죠? 그 새끼들한테 거기서 두드려 맞고 혼난 생각을 하면 지금도 무서워서...'     

'에이. 별일이 어딨어요. 그리고 나도 경찰이라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설마 경찰이 그렇게 사람을 때렸을라고요.'     

정 형사의 이 말에 선장의 얼굴색은 금세 잿빛이 되었다.      

선장은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후회를 했지만 이미 늦었다.      

조금 전까지 친절하고 생글생글했던 정 형사의 얼굴에서 이미 웃음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선장, 거기서 말한 대로 입 꾹 다물고 사시는 게 앞으로 건강에 좋을 거요. 어디 가서 함부로 주둥이 놀리다가는 그나마 그물 만져보기도 힘들 테니 그리 아쇼. 그럼 새우 많이 잡으시고.'     

허리를 들어 일어나며 선장에게 지그시 주의를 주었다.     

선장은 손질하던 그물을 놓고 넋 나간 사람처럼 멀어져 가는 정 형사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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