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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다샤 Aug 10. 2020

동굴 속 호수

16. 여관에서 안보의 길을 묻다

16.     

선지 해장국의 국물을 들이켜고는 뚝배기를 내려놓다가 문득 정 형사는 경찰 초년병 시절 생각이 떠올랐다. 남편과 말다툼을 하던 50대 여인이 자신이 살던 아파트 창문으로 뛰어내려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었다. 이미 구급대원들이 여인을 긴급히 인근 병원으로 옮겼으나 사망한 뒤였다. 사망과 관련한 관계인 조사를 벌인 뒤 부검을 실시하였는데, 두개골 골절에서 척추 손상 등을 확인한다면서 머리부터 하복부, 다리까지 모두 절개하여 골절 상황이나 장기 손상 등을 확인하였다. 표피 아래에 숨어있던 장기의 적나라한 모습을 처음 보았고, 많은 혈액이 쏟아져 나와 주변이 온통 피비린내로 진동했었던 기억이 있다. 두개골 골절 시 보았던 흰 순두부와도 같은 골수들을 잊을 수가 없다. 유족이 함께 부검에 참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 앞에서 표정을 함부로 할 수가 없어서 부검 시간 내내 표정관리하느라 무척이나 힘들었다. 부검이 끝나고 나오면서 선배는      

'처음 부검에 참여하느라 고생했다. 기분도 그렇고 속도 좋지 않을 테니 어디 가서 속 좀 달래자'며 데려간 곳이 선지 해장국 집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시뻘건 선지를 주섬주섬 해장국에 넣어 먹는 선배를 따라 선지 한 입을 넣었다가 나는 그날 온통 속을 다 게워냈다. 그리고 한동안은 선지 해장국이나 순두부찌개, 내장탕은 입에도 대지 못했다. 그런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해장국을 먹고 있는 것이다.      

5시에 식당에 들어와 저녁을 먹었으니 좀 이른 감이 있다. 그래도 지금 먹어두지 않으면 저녁때를 놓쳐버릴 수 있으니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두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우리 같은 형사들은 때를 맞춰 끼니를 챙겨 먹는 건 사치다.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두는 것이 우리의 식사 규칙이다.      

'아주머니, 커피 한 잔 먹을 수 있어요?'     

그릇을 치우던 주인아주머니에게 부탁했다. 아주머니는 주방에서 투명한 음료수 컵에 1회용 커피믹스를 타서 가져다주었다.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입에 가져간 일회용 커피는 커피 양에 비해 물을 너무 많이 타서 커피라기보다는 커피 맛이 나는 뜨거운 물이었다. 어차피 커피를 먹는 것이 목적이 아니므로 별로 개의치 않았다.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식당 창문 밖을 응시하였다. 정확히 서부경찰서 정문이 한눈에 들어왔다. 민원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간혹 오가고 있었고, 차량도 간간히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저녁시간이 되어서인지 낮 시간보다는 드나드는 사람들이 현저히 줄어들기는 하였다. 그들 사이에는 외근 나갔던 직원들이 저녁 회의와 퇴근을 위해 들어오는 모습도 보였다. '석회'가 끝나면 직원들이 퇴근할 것이다. 정 형사는 그들 사이에 섞여 나오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변사사건인 줄 알았던 이번 사건은 예상치 못한 곳까지 흘러가고 있다. 그것도 아주 찝찝하고 귀찮은 곳으로 달려가고 있다. 예상되는 결과가 틀리기를 바라며 한발 한발 다가가지만 오히려 피하고 싶은 예상에 더욱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에이 씨, 좀 세련되게 하지.'     

정 형사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왜 하필 여수로 내려왔을까 라고 생각하는 그때 정문에서 네댓 명의 사람들이 정문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중 낮 익은 얼굴이 보였다. 안주머니에서 가지고 있던 사진을 꺼내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틀림없다. 강 차벽이다. 식탁에 돈을 내려놓고는 급히 식당 문을 열고 강 차벽을 향해 걸었다. 직원들끼리 인사를 나누고 강차벽은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혼자 남겨진 강차벽을 향해 정 형사가 다가갔다.      

'강차벽 경사되시죠?'     

누군가 자신의 이름 부르자 당황한 듯 강 경사가 정 형사를 돌아보았다.      

'누구시죠?'     

'아이고, 놀라게 해 드릴 생각은 아니었는데 죄송합니다. 갑자기 이렇게 찾아와 좀 놀라셨겠네요. 제가 인사가 좀 서툴러서. 저는 정 형사라고 합니다.'     

정 형사는 자신의 경찰 신분증을 강 경사에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내밀었다가 곧바로 넣었기 때문에 신분증을 보여주는 건 형식적인 행동에 지나지 않았다.      

'경찰이요? 경찰이 무슨 일로? 공무상 업무로 오신 건 아니신 것 같고'     

'하하. 그러게요. 저도 공무상 찾아뵙는 거라면 모양도 이렇게 빠지지는 않고 좋을 텐데요. 뭐  일 때문에 온 건 아니고요. 그냥 몇 가지 궁금한 것이 있는데 그걸 제 머리로는 도저히 풀 수가 없어서 이걸 풀어줄 사람을 찾다 찾다 보니 차 경사님이 풀어주실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업무상 요청이라면 공문을 통해 협조 요청을 하면 될 테고. 궁금증이라는 건 또 뭔 소린지도 모르겠고. 당신 정말 경찰 맞아?'     

차 경사의 말투와 억양이 조금씩 격앙되어 가고 있었다.      

'에이, 경찰이 맞고 말고요. 아까 신분증도 보여드렸는데 이거 섭섭하네요. 저도 길바닥에서 이렇게 대화하는 건 좀 그런데, 어디 자리를 좀 옮겨볼까요? 제가 이 근처는 아는 곳이 없어서요. 어디 적당한 장소가 없을까요?'     

'도대체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당신한테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무슨 이유로 당신을 따라가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내가 왜 당신을 따라가야 한다는 거지?'     

'그러니까 그 이유를 길거리에서 이야기하는 게 뭣해서 조용한대로 가자는 건데 굳이 여기서 얘기할까요?'     

'가고 안 가고는 내가 결정할 문제지 당신이 그걸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뭐 정이 그러시다면 여기서 이야기를 하시고요. 장흥 공작 아시죠?'     

말을 던지며 정 형사는 강 경사의 표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확인하였다. 분명 장흥 공작이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올 때 굳어지는 강 경사의 얼굴을 틀림없이 확인하였다.      

'당신이 장흥 공작을 어떻게?'     

'계속 여기서 이야기할까요? 아니면'     

'이야기하기 적당한 장소가 있으니 자리를 옮깁시다. 저녁식사 때도 되었고..'     

'저녁은 괜찮고요. 어디 가서 차나 한잔 하시죠?'     

'그럼 적당한 곳으로 옮깁시다. 따라오시죠?'     

강 경사는 앞서 걷기 시작했다. 5분 정도 걸었을까 강 경사가 들어간 곳은 오래되어 보이는 여관이었다. 경찰서들마다 피의자들을 연행해 입건하기 전에 입건 조사를 위해 경찰서가 아닌 여관이나 여인숙을 이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피의자를 조 사하다 보면 영장 없이 잡아두어야 하고, 피의자를 압박하기 위해 압박 조사를 하기도 하는데 그러다 보면 손찌검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경찰서라면 아무래도 그런 일이 밖으로 새 나가는 경우가 있어서 이런 여관에서 조사를 하기가 훨씬 수월하기 때문에 자주 이용하는 것이다.     

강 경사는 여관에 들어서 카운터의 작은 창문을 열고는 여관 주인에게 눈인사를 하고 저녁식사를 준비해 달라는 짧은 말만 던지고는 열쇠를 집어 들고 곧장 2층으로 올라갔다. 이곳을 수시로 이용한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복도 가장 끝 쪽에 자리 잡은 210호 실에 들어갔다. 방은 여느 방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지만 어두웠다. 눈에 띄는 것은 창문이 모두 나무판자로 막혀 있다는 것과 시계가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방에 들어온 피의자에게 시간과 공간의 흐름을 모두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앉읍시다.’     

방석을 내주며 강 경사가 말을 꺼냈다.      

강 경사는 앉자마자 텔레비전 장식대 위에 있는 손톱 깎기를 집어 들었다. 별로 길지도 않은 손톱을 또깍또깍 자른다. 아마도 손톱이 조금도 자라는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생각했다.      

그때 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여관 주인이 맥주와 마른안주를 담은 쟁반을 바닥에 내려놓고 나갔다. 익숙한 듯 물 흐르듯 능숙한 솜씨였다.      

주인이 나가자 강 경사는 자르던 손톱을 치우고는 맥주병을 집어 들며 말을 꺼냈다.     

‘여수경찰이 왜 서울에서 와서 장흥 공작에 대해 묻는지 궁금하네요.’     

‘오히려 제가 왜 여기 왔는지 짐작하실 것 같은데요.’     

강 경사가 내미는 맥주를 유리잔으로 받으며 정 형사가 대답했다.     

‘그러니까 그 장흥 공작을 왜 여수경찰이 와서 묻느냐는 거지’     

조금 전까지 능글대며 웃음 짓던 정 형사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킨 뒤 잔을 내려놓으며 정 형사가 강 경사를 노려보았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왜 공작 대상을 여수 동굴에 묻었냐고. c8'     

한참의 침묵이 흘렀다.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호수는 당일 조사 후에 저녁에 훈방을 했는데 뭔 소릴 하는 거요. 그 녀석 알리바이야 다 증명이 된다고. 치안본부 보고서에 이미 다 보고도 됐고 우리 팀장님이나 과장님, 서장님 결재도 다 받은 사항인데 갑자기 찾아와서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     

‘난 당신 변명이나 해명에는 조금도 관심 없어. 다만 알려주려고 온 것뿐이야. 치안본부에서 장흥 공작 꼬리를 잡았어. 조만간 당신 속옷까지 뒤질 거야. 당신이 말한 보고서대로 수사를 한 것이 사실이라면 전혀 문제 될 게 없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단단히 준비해야 할 거야. 어설픈 준비로는 당신을 조여 오는 사람들이 만만하지 않아. 본부 사람들이 잡은 꼬리가 몸통으로 연결될지 안 될지는 당신만이 아는 거고..’     

정 형사는 다시 술잔을 들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고 안 듣고 난 관심 없다니까. 그거야 당신 문제니까. 그리고 내가 오늘 여길 나간 뒤 당신을 다신 만나지 않길 바라. 분명 좋은 일로 만나지 않을게 뻔하니까. 그럼, 술 잘 마셨소.’     

정 형사는 잔을 비운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고 나가는 정 형사에게 강 경사가 말했다.     

‘우리 같이 조국의 안보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안보가 곧 법이고 절차잖소. 당신도 그걸 잘 알 텐데.’     

정 형사가 나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세상은 변하고 있어. 우리가 믿고 있던 조국도... 이제껏 우리가 애국이라고 믿던 조국은 이미 다른 세상이 되어 가고 있는지도 몰라. 우리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지.’     

문을 닫고 어두운 복도를 따라 환하게 밝은 창문이 있는 계단을 향해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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