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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다샤 Aug 10. 2020

동굴 속 호수

17. 최면

17.     

‘자 이제 손뼉을 치면 잠에서 깨어날 거예요.’     

손뼉 치는 소리에 성기는 잠에서 깨어났다.     

좀 전에 자신이 보았던 장면이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 분명 꿈을 꾼듯했지만 의식이 분명했던 것이다.     

소파에서 일어나자 혁이 다가왔다.     

‘분명 그날 대미산 아래에 차를 두고 올라간 사람들이 세 명이었다는 거지? 그중 한 사람은 젊은 사람이었고, 두 사람은 중년의 사람들. 그중 한 명은 반팔 셔츠를 입은 사람이고.’     

‘네 맞아요.’     

‘협조해줘서 고마워.’     

성기를 내보내자 잠시 후 정 일병이 들어왔다.     

방의 조명은 어두운 편이었다. 낯선 향냄새 같은 기묘한 냄새가 방안 전체를 채우고 있었다. 누워있는 소파는 너무도 편안하지만 낯선 향기와 조명은 오히려 정 일병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너무 긴장하지 말아요. 그냥 잠깐 잠을 잔다고 생각해요. 정말 잠깐 잠을 잔 것과 같은 기분일 거예요.’     

편안한 얼굴과 음성으로 말을 건네는 중년 여성의 말에 조금은 안심이 되긴 했다.      

‘너무 긴장하지 않아도 됩니다. 마음 편안하게 가지면 금방 시간이 지나갈 거예요.’     

혁은 의자에서 허리를 떼며 말을 건넸다.     

갑자기 특박(특별외박)을 내보내 준다고 해서 기분 좋게 여수 시내를 나왔더니 정 일병을 기다린 것은 치안본부 수사관들이었다. 그리고 그들 손에 이끌려온 것은 최면술 연구소였다. 이곳에서 잠시 수사협조를 받으면 된다는 것이다. 최면으로 무슨 수사를 하겠다는 건지 도대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자, 이제 눈을 감고 제가 말하는 대로 해보세요. 자, 지금 상태에서 가만히 눈을 감으세요. 그렇게 눈은 감으시고, 눈꺼풀과 눈 주위 근육을 편안하게 이완하세요. 그렇게 편안한 상태를 느껴보세요. 지금의 편안한 상태를 유지한다면, 자연히 눈은 떠지지 않을 거예요. 그럼, 눈을 정말 잘 붙이고 있는지 테스트해보세요. 눈꺼풀의 힘을 충분히 빼고 이완하셨다면, 눈은 절대 떠지지 않을 테니, 그것이 잘 되고 있는지 테스트해보세요’     

정 일병은 그 말대로 눈을 뜨려고 했으나 눈꺼풀을 들어 올리려 했으나 눈을 뜰 수 없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편안한 상태라고 믿는 자신의 믿음대로 눈꺼풀을 들어 올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 맞는 건지도 모른다. 정 일병은 스스로 자기 최면에 빠진 상태가 되었다.     

정 일병은 의식은 있으나 꿈을 꾸는 듯, 자신의 몸이 공중에 붕 떠 있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몸이 하늘에 뜨는 자신을 느끼고 있나요?’     

‘예. 아주 편안한 것처럼 느껴져요.’     

‘좋습니다. 자, 이제 시간을 조금 뒤로 이동해 보겠습니다. 이제 열부터 하나까지 거꾸로 셀 겁니다. 하나씩 내려갈 때마다 과거로 과거로 이동하게 될 텐데요. 하나씩 셀 때마다 과거로 과거로 내려갈 거예요. 6월 9일까지 이동할 거예요. 그때로 돌아가게 되면 손가락을 들어주세요.     

이제 시작합니다. 열... 과거로 과거로 돌아갑니다. 아홉.. 조금 더 과거로 과거로 갑니다. 여덟... 조금 더 조금 더 과거로 갑니다. 일곱 다시 조금 더 과거로 갑니다.‘     

이때 정 일병의 손가락이 들어 올려졌다.     

‘좋아요. 이제 손가락을 내려주세요. 이때가 6월 9일인가요?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나요? 느낌은 어때요? 떠오르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말씀해 보세요.’     

‘저는 검문소에 서 있어요. 지루하고 심심한 기분이에요. 가족들도 보고 싶고, 친구들도 보고 싶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요.’     

‘그렇군요. 지루하고 심심하군요. 그리고 또 다른 일들이 기억나나요?’     

‘저는 사람들이 지나가기도 하고, 차가 지나가기도 해요. 저는 차량을 세우고 검문을 하고 있어요. 수상한 사람이 있나 확인하기도 해요.’     

‘그래요. 그 차들 중에서 특별한 차량이 있었나요?’     

‘대부분 자주 보던 차들이라 익숙한 차들이에요. 그런데 한 번도 못 봤던 차가 있어요. 서울 차예요. 서울 차를 보니 집 생각이 나요’     

‘그래요. 서울이 집인가 봐요. 집이 그립겠어요. 또 뭐가 보였죠?’     

‘서울에서 온 차를 유심히 바라봤어요. 차 안에는 남자 3명이 타고 있어요. 앞좌석에는 중년 남성 2명과 뒷좌석에는 젊은 사람이 타고 있어요.’      

‘그렇군요. 그 사람들 얼굴이 혹시 보이나요?’     

‘앞좌석 사람들은 신분증을 확인하느라 얼굴이 보이는데 뒷좌석 사람은 얼굴을 자세히 보지 못했어요. 차 유리 안으로 보여서 흐릿하게 보여요. 계속 차 바닥을 내려 보고 있어요. 저와 눈을 마주치지 않아요.’     

‘신분증에는 뭐라고 이름이 써졌던가요?’     

‘나제국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어요.’     

‘그렇군요. 혹시 다른 특이한 점은 없나요?’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은 반팔 셔츠를 입었는데 왼팔에 문신이 보여요. '조국', '안보'라고 새겨진 문신이에요’     

‘오, 특이한 문신이네요. 그리고 또 뭐가 보이죠?’     

‘그 문신한 사람이 수첩을 들고 있어요. 정유회사 마크가 새겨진 검은 수첩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잘 안 보여요.’     

최면술사는 더 물어볼 것이 있느냐는 표정으로 혁을 쳐다보았고, 혁은 없다는 표시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요. 오랜 여행을 하느라 피곤하겠어요. 이제 다시 원래 시간으로 돌아올 거예요. 다시 숫자를 세면 원래의 시간으로 조금씩 돌아올 겁니다. 그런 후에 내가 박수를 치면 잠에서 깨는 거예요. 자 그럼 시작할게요. 일곱.. 조금 앞으로 돌아옵니다. 여덟 조금 더 앞으로 돌아올 거예요....... 아홉....... 열...... 짝!’     

정 일병은 눈을 떴다.      

정말 의식이 또렷한 상태였으나 꿈을 꾼 듯했다.     

최면수사는 이렇게 끝이 났다.     

이로써 강차벽과 나제국이 6월 9일 돌산에 왔었다는 것과 동굴에서 발견된 수첩을 강차벽이 소지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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