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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다샤 Aug 10. 2020

동굴 속 호수

18. 각자의 헌신

18.     

‘장흥에서의 삐라발견, 장흥 공작 시작, 호수의 동료 방위병 조사, 강화도 선원 시절 조사, 신호수 연행, 일주일 조사, 여수 돌산 출장, 하루 뒤 사망한 호수 발견’     

동료의 방위병과 선장 등을 데려다 조사한 결과 이들이 서부서에서 강 경사로부터 조사받을 때 심한 구타를 당했다고 진술했다. 또 호수가 조사를 받았던 일주일 사이에 서부서에 연행되었던 다른 연행자들을 조사한 결과 그곳에서 조사받던 호수가 수사관들에게 수차례 구타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했다. 호수가 서부서에서 가혹행위를 당한 것만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왜 호수를 대미산에 데려갔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호수가 왜 죽어야 했냐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          

조사실에 강 차벽이 들어왔다.     

‘6월 1일 장흥 공작에 나섰던 것과 6월 9일 대미산에 호수와 함께 올랐던 것이 이미 확인되었습니다. 왜 대미산에 올라갔습니까?’     

‘여수에 간 기억이 없습니다.’     

‘여수에 간 기억 없다고요? 이걸 보면 기억이 나시겠군요.’     

강 차벽이 앉아 있는 책상 위에 혁은 도로교통위반 통지서를 던졌다.     

‘이건 6월 8일 나제국 경위 차량 앞으로 발부된 속도위반 통지서입니다. 당일 오후에 여수까지 내려가려니 속도를 좀 냈나 보네요. 이건 광주에서 여수로 가는 방향의 도로에 설치된 무인감시카메라에 6월 9일 새벽에 찍힌 나제국 경위의 사진입니다. 해당 차량이 절도 신고가 된 적도 없더군요. 해명해 보시죠.’     

강 차벽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수까지 갔던 것은 틀림없이 기억한다고 생각하고 다시 질문하겠습니다. 6월 9일 오전에 여수 돌산에 도착한 것으로 압니다. 왜 아침에 돌산 대미산에 왜 올랐습니까?’     

강 차벽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무인포스트 확인 차원에서 올라갔습니다.’     

‘무인포스트 확인을 왜 하필 대미산에서 확인해야 했죠? 신호수는 여수에서 출생했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미 여러 수사 기록을 확인해 보셔서 알 텐데요. 신호수는 대공용의점이 있었습니다. 혹시나 북한과 연관되어 지령을 받았다는 의심이 있었고, 그래서 강화도에서 선원 활동을 조사했던 것이고 혹시 출생했던 연고지인 돌산의 대미산을 무인포스트로 정해놓고 북한과 연락을 주고받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대미산의 무인포스트 확인 시간은 얼마나 걸렸나요?’     

‘아마 한두 시간 정도 걸렸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장검증 차원에서 호수가 했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차원에서 이것저것 확인하느라고요.’     

‘그리고 세 명이 함께 돌아왔나요?’     

‘예, 현장 검증 후 내려와 지금 기억으로 서울로 돌아와 호수를 서울 역에서 내려주고 온 것 같습니다. 아마 제가 호수를 7일 날 돌려보냈다는 것은 9일 날 돌려보낸 걸 가지고 서류에 날짜를 잘못 기재한 것인가 봅니다.’     

‘세 명이 함께 내려온 것이 확실합니까? 그럼 호수가 스스로 다시 여수로 가서 죽었다는 거군요?’     

‘당연하죠. 서울까지 데려왔다니까요.’     

‘그럼 이 사진들에 대해서 설명 좀 해주시죠. 이건 먼저 서울 톨게이트 통과할 때 찍힌 차량의 사진입니다. 여기 호수의 모습은 없습니다. 최소한 호수는 서울에 오지 않았다는 거죠. 그럼 여수에서 호수를 내려줬을까요? 안타깝게도 그것도 아니네요. 돌산에서 여수로 나오는 길에 있었던 울돌목 초소의 군인들 증언에 의하면 세 사람이 들어갔던 차량에 두 사람이 타고 나왔다고 하네요. 그럼 호수가 다시 차량에 타기는 했던 걸까요? 그것도 아니었나 봅니다. 나제국 경위의 차량을 오늘 아침 압수 조사했습니다. 다행히 나 제국 경위가 차량관리를 잘 안 하더라고요. 차량의 앞자리에는 돌산 대미산의 암석과 토양 성분이 동일하게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뒷자리에서는 전혀 검출이 되지 않았어요. 호수의 발이 땅에 닿지 않고 날아서 대미산을 다녀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앞자리에서 검출되었던 토양이 뒷자리에서는 발견되지 않았을까요? 왜 호수가 대미산에 혼자 남았던 거죠? 이제 진실을 이야기하시죠?’     

잠자코 혁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강 차벽의 입가에는 차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흐느끼는 듯한 웃음소리가 ‘흐흐흐’하고 새어 나왔다.      

‘그게 호수의 죽음과 무슨 관계가 있다고 그러는 건지 알 길이 없네요. 흐흐’     

‘호수가 죽기 직전에 스스로 신분증과 수첩을 태우고 자살했다는 건 아시죠?’     

‘예, 나중에 치안본부 감찰실에서 조사받는 중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저희와는 무관한 사안이라서....’     

‘무관한 사안이 되어야 맞는 것이죠. 그럼 이건 어떻게 설명할까요?’     

혁은 작은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그 속에는 작은 손톱이 들어 있었다.     

‘이게 뭐죠?’     

‘설명해 드리죠. 나제국의 차량을 조사할 때 차량 안에서 나온 손톱 조각입니다.’     

‘그게 사건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손톱 조각을 국과수에 감정을 맡겼더니 강 경사의 손톱이더군요.’      

‘아마도 내가 조수석에 타고 있을 때 손톱을 깎았었나 봅니다. 이제 생각나네요. 그날 라이터로 불을 붙이다가 비닐이 녹아 손톱에 붙는 바람에... 헉!’     

‘맞아요. 비닐이 녹아서 강 경사의 손톱에 붙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 비닐이 바로 호수 수첩 성분 비닐과 동일한 성분이라는 거죠. 호수는 자살하기 위해 스스로 비닐을 태운 것이 아닌 거죠. 양파껍질을 벗기듯 당시의 상황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건 더 이상 의미가 없지 않을까요? 그것이 강 경사 당신을 더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 될 테니.’     

강차벽은 실성한 듯 웃음을 지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손톱을 물어뜯지 말라고 늘 잔소리하셨지. 그게 습관이 되어 손톱이 조금만 자라거나 지저분하면 참지 못하고 잘라버려야 하는데 그게 증거가 되어 버렸네. 맞소. 우리가 호수의 신분증을 태운 것이. 그리고 호수의 신분증을 태울 당시 호수는 이미 사망했던 것도. 그러나 그건 우연한 사고였소. 무인포스트 지점을 자백하라고 해도 독한 녀석이 자백을 하지 않더라고. 그냥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을 뿐인데 며칠 잠을 안 재워 그랬는지 그냥 쓰러지더니 안 일어나더라고. ’      

‘그래서 수갑을 호수 발목에 채워 동굴에 끈을 묶은 뒤 호수를 목 메 자살한 것처럼 위장한 거군요?’     

‘동굴 벽이 높으니 안고 메고 올라갈 수가 있어야지. 나제국의 생각대로 잘 처리했는데 그놈의 손톱이....’     

‘호수가 정말 간첩 혐의가 있다고 믿은 건가요? 휴가를 가려고 모아둔 삐라를 두고 간 게 확인됐는데도?’     

‘당신 경찰 맞아? 간첩은 우리 주변 어디에도 있는 걸 몰라? 남파 간첩만 간첩이 아냐. 학생, 노동자, 농부, 회사원, 주부, 공무원, 해외 교포, 유학생 천의 얼굴을 하고 있는 놈들이야. 그 놈들은 철저히 교육을 받은 놈들이야. 죽어도 자백하지 않는 교육을 받았다고. 또 증거라고는 머릿속에 교묘히 박혀 있는 붉은 사상이야. 그걸 끄집어내려면 우리도 독하게 다루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그걸 끄집어내는 게 어디 쉬운지 알아? 그건 예술의 경지나 다름없다고.’     

‘증거 없이 사람을 데려다가 조사를 하고 그 결과 결국 사람을 죽였어. 그걸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거야?’     

‘이 나라가 어떤 나라야? 누가 이 나라를 지켜왔는지 알아? 우리 같은 같은 사람들이라고. 우리는 조국과 민족을 지키기 위해 애국을 한 죄밖에 없어. 당신이 숨 쉬고 편안히 먹고 잘 수 있는 건 모두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잠을 설쳐가며 빨갱이 새끼들 때려잡았기 때문이라고. 지독한 빨갱이 새끼들 조지느라 몇 날 며칠 집에도 못 들어가고 애새끼들 자라고 학교 가는 것도 보지 못하면서 공작 사업하는 우리 보고, 뭐? 불법 수사? 빨갱이 새끼들 법 지켜가면서 영장 받아 대우해주면서 조사하면 그 악질 같은 간첩 새끼들이 자백을 할 것 같아? 정말 그렇게 믿는 거야? 대가리 속이 빨갛게 물든 놈들이 얼마나 지독하고 치밀한 교육을 받았는지 몰라서 그래?      

그런 놈들은 조금도 불씨를 남겨놓으면 안 되는 거야. 조지고 담그고 밟아야 하는 거라고. 차라리 불지 않으면 숨통을 끊어야 하는 거야. 세균 같은 놈들은 언제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지 모르니까 우리는 끝까지 그 놈들을 박멸하는 거지. 세균을 박멸한다고 살인이라고 하지 않잖아. 우린 오히려 영웅이라고. 더럽고 위험한 세균을 박멸한 영웅!!!‘     

‘우리가 만든 국가는 민주주의라는 약속을 통해 서로를 믿고 신뢰하며 지켜가는 룰이 있는 거야. 그런 룰을 안보라는 이름으로 허물어버리는 너희들의 행동이 나라를 망치는 행동일 뿐이잖아. 뭐가 애국이라는 거야.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훈장과 포상금을 타내고, 승진에 욕심에 먼 너희들은 그런 잔치를 계속 즐기려고 조직을 유지하려고 끊임없이 선량한 시민들을 빨갱이로 몰아가고 있잖아. 네가 잡은 간첩들도 대부분 협박하고 고문하고 증거 없는 선량한 시민들이야. 형법적으로도 아무런 증거가 없는 선량한 사람들. 재심이 열리면 곧바로 무죄가 날 불쌍한 시민들이라고. 그런 시민들의 세금으로 넌 너의 가족을 뒷바라지 하지. 버러지는 너희 같은 놈들이 바로 버러지라고.’     

듣고 있던 강차벽은 벌떡 일어서 주먹으로 혁의 얼굴을 쳤다. 갑작스러운 일격에 쓰러진 혁의 몸에 올라탄 강차벽은 혁을 때리며,     

‘네가 뭘 알아. 죽은 놈 부검소견서나 끄적이는 너 같은 놈이 대공 사업에 대해 뭘 안다고 함부로 지껄이는 거야. 이 나라는 우리 같은 대공수사관들이 분단된 이 나라를 북한 빨갱이 새끼들한테 먹히지 않게 하려고 밤낮으로 헌신하고 노력하는 덕에 이 만큼 버텨 온 거야. 뭐, 형법? 형법이야 잡범들 잡는 법이지. 사상범 잡는 법은 따로 있는 거야. 병 증세에 따라 처방 약이 다르듯 범죄도 형법으로 다스리는 놈, 국가보안법으로 다스리는 놈 따로 있는 거야. 어디서 함부로 주둥이를 놀려.’     

이때 문을 열고 들어온 수사관들이 강차벽에게 달려들어 제압한다.      

끌려 나가는 강차벽을 항해 혁은 입가의 피를 닦으며 중얼거린다.     

‘치료는 당신이 필요해. 변해가는 세상을 부정하고 당신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 속에 사려는 당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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