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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다샤 Aug 10. 2020

동굴 속 호수

15. 삐라

15.     

수첩의 주소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공중전화부스에 들어서서 수화기를 들었다. 수첩에 적힌 숫자의 마지막 버튼을 누르고 신호음을 기다리자 한참 만에 착신음과 함께 수화기 너머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아 안녕하세요. 장성만 씨 되시죠?’     

‘네, 그런데요. 누구세요?’     

‘저는 진실일보 사회부 순진 기자라고 합니다. 지금 집 근처에 와 있는데 잠시 만날 수 있을까요?’     

‘기자요? 기자분이 왜 저를 만나시려고요? 저는 만날 일이 없을 거 같은데요.’     

전화를 받는 상대방의 태도로 볼 때 상대방은 빨리 이 전화를 피하고 싶어 한다. 아마도 적당한 핑계를 대고 전화를 끊으려 할 것이다. 이런 경우 어디 한두 번 당하는 것도 아니다. 전화연결을 이어나가 취재원을 만나는 것이 바로 훌륭한 기자의 자질 중 하나일 것이다.     

‘갑자기 전화해서 놀라셨죠? 다름 아니라 호수라고 아시죠?’     

‘호수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상대방은 좀 전까지의 차분했던 목소리가 분명 아니었다. 떨리는 목소리는 흔들리고, 불안해하고, 조급해하며, 두려워한다는 것이 수화기로 충분히 전해지고 있었다..     

‘네, 호수요. 저희가 이번에 호수 씨를 취재하고 있는데 취재 중에 장성만 씨를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래서 함께 취재를 좀 하려고요.’     

‘호수를 취재한다고요? 호수를 무슨 일로? 그리고 저는 또 무슨 관계로 취재한다는 건지...’     

피하고 싶어 하는 심정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저희가 이번에 병영 관련한 특별 기사를 쓰고 있는데 장성만 씨가 근무했던 사단을 취재하게 되었어요. 관계자 분들도 그곳에서 근무했던 분들을 추천도 해주시고. 뭐 당황스러우시겠지만 잠시만 인터뷰해주시면 되니까 요 집 앞 빵집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나와 주실 거죠? 부대 이미지를 위해서도 그렇고, 특별히 추천도 받으셨으니 꼭 도와주실 거라고 믿어요.’     

잠깐의 침묵이 지나고 수화기 너머로 알겠다는 답변을 기어코 받아낸 순진은 20분 뒤에 근처 빵 집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20분 뒤 빵 집에서 들어선 장성만은 운동복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적어도 낮 시간에 일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목소리로 감지했듯이 빵 집을 둘러보니 장성만의 눈빛은 매우 불안하고 초조해 보였다. 다행히 오전 시간에 빵 집에는 손님이 순진 이외에는 다른 손님이 없었다. 곧바로 순진과 장성만의 눈길이 마주쳤고, 이에 장성만은 특별한 의심 없이 순진의 자리에 앉았다. 이유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분명 빵 집에 들어설 때보다는 얼굴의 긴장이 누그러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 여기 명함’     

하며 순진은 자신의 명함을 내밀었다.     

‘네. 저는 명함이 없어서...’     

명함을 건네받으며 성만이 말했다.      

‘그런데 무슨 기사를 쓰시길래 저에게 연락을 하신 건지 궁금하네요.’     

‘예, 수도를 방위하는 수도권 주변의 병력들에 대한 안보태세에 대한 취재기사를 쓰고 있어요.’     

‘그럼 직접 현역병들을 취재하시면 되지 않나요?’     

‘현역병들을 취재하자면 군사 관련 기밀사항이라고 해서 취재 협조받는 게 쉽지 않아요. 그래서 오히려 최근까지 근무했던 분들을 취재하는 것이 맘 편하죠.’     

순진은 환하게 웃어 보이며 성만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노력했다.      

‘제가 인터뷰하려는 건 별 것 아니에요. 작년에 장흥 사단에 근무하시다 제대하셨죠?’     

‘예, 그렇습니다만.’     

‘작년에 제대할 때 호수 씨도 함께 제대한 거죠?’     

‘네 맞아요.’     

‘방위병으로 18개월 근무하셨다는데 집에서 출퇴근하신 거예요?’     

‘예, 저는 집이 가까워서 집에서 직접 출퇴근을 했어요. 물론 집이 먼 사람들은 부대 근처에 방을 얻어 다니는 사람도 있기는 했어요. 호수가 그런 경우였어요.’     

‘아, 그랬군요. 부대에서 근무병들에게 안보 교육을 위한 정훈교육을 매우 잘 진행했다고 하는데 어땠나요?’     

‘정훈교육이라 봐야 저희 부대가 예비군 병력을 관리하고 훈련을 담당하는 부대였기 때문에 예비군 훈련 시 함께 정훈교육을 받는 것까지 포함하니까 일 년에 수십 차례 정훈교육을 받았다고 할 수 있죠. 외부에서 보면 투철한 안보교육, 정훈교육을 받는다고 알 수 있죠.’     

‘예비군 병력을 담당하는 것이라면 매우 힘들 텐데 포상 휴가나 표창 등이 다른 부대에 비해서 많다고 하던데?’     

‘군 업무야 당연히 힘들었죠. 예비군 훈련받는 병력들이 모두 제대군인들이라 어디 저희 말을 듣기나 합니까? 교보재 손실이나 유실을 막기 위해서 저희가 총기류나 교보재를 들고 다니고, 훈련 중 이탈하는 병력을 달래 가며 훈련을 진행해야 하니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에요. 그래서 다른 부대에 비해 포상이나 휴가가 많기는 했지만 장교나 현역병들에게 돌아가기 바빠요. 우리는 현역병들 보다 복무기간도 짧고 매일 출퇴근한다는 이유로 포상이나 휴가 혜택은 별로 없는 편이지요. 업무도 현역병들에 비해 더 많았지만 복무여건은 훨씬 나쁘다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다른 방법으로 포상휴가를 따내죠.’     

‘다른 방법으로 포상휴가를 따낸 다구요?’     

‘뭐 정기휴가나 포상휴가 나가기가 어려우니 저희들끼리 포상휴가를 받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 있어요. 저희 부대가 양주에 있는데 휴전선과 인접해서 있어서인지 북한에서 날아오는 삐라가 매우 많았어요. 삐라를 많이 모아 내면 분기별로 성과를 평가해서 가장 많이 부대에 제출한 병력에게 포상과 함께 휴가를 주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돌아가며 삐라를 한 사람에게 몰아줘서 휴가를 가도록 하는 거죠. 계모임 하듯이 품앗이하는 거죠.’     

‘아~ 그럼 삐라는 각자가 그렇게 모아 놓는 건가요?’     

‘아니요. 각자가 모아 놓으면 분실 위험이 높으니 한 사람에게 모아 주었다가 한 번에 제출했어요. 보통은 호수가 자취를 하고 있어서 호수가 사는 방에 모아 두었다가 그 분기에 휴가 갈 차례가 된 사람에게 모아두었던 삐라를 전해 주죠.’     

‘아, 그런 방법으로...’     

‘그런데 한두 달 전에 서부경찰서 경찰들이라고 하면서 찾아왔길래 이 이야기를 똑같이 해 준 적이 있어요.'     

'아, 그래요.‘      

순진은 장성만이 서부경찰서 수사관들을 만났다는데 특별히 반응하지 않았다. 괜한 오해나 의심을 받을 수 있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     

‘경찰이 무슨 기사를 쓰는 것도 아니고 왜 물어본 걸까요? 특이하네.’     

‘그러게요. 호수나 제가 특별히 다른 목적으로 삐라를 모았냐고 물어 보더라고요. 그리고 삐라는 어느 장소에 모았냐고 하길래 호수 자취방 장판 밑에 모아 두었었다고 했어요. 경찰이 찾아와서 물어보길래 하도 이상해서 경찰이 돌아간 뒤에 인천에서 일하던 호수한테 전화해서 물어보기까지 했다니까요. 호수 너도 경찰이 찾아왔었냐고... 그랬더니 호수는 별일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아이고, 제가 쓸데없는 소리까지 했네요. 기자님 좀 전에 뭘 물어보셨죠?’     

‘아니에요. 제가 여쭤볼 건 다 여쭤봤어요. 군에서의 안보태세에 관련된 상황에 대한 취재라 이 정도면 충분한 인터뷰가 됐어요.. 시간 내주셔서 고마워요.’     

‘고맙긴요. 별로 말도 잘 못하는데. 근데 기자님 남은 빵 싸가실 건가요? 아니시면 제가 싸가도 될까요?’     

‘아휴, 그럼요. 싸 가셔야죠. 인터뷰도 도와주셨는데 인터뷰 비용도 못 드려서 오히려 제가 죄송해요.’     

‘그럼 기사 나오면 저한테도 꼭 좀 보내주세요. 기사 잘 부탁드립니다.’     

성만이 남은 빵을 싸 들고 나와 빵 집 앞에서 인사를 나누고 헤어져 지하철역으로 돌아오는 길에 순진은 공중전화 박스를 찾아 들어갔다. 혁의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이혁 지도관입니다.’     

‘나야.’     

‘어, 몸은 좀 어때? 지금 어디야?’     

‘여기 홍제동인데 방금 호수와 함께 근무했던 방위병을 만났어. 삐라에 대해 물어봤는데 휴가를 갈 목적으로 한 사람에게 삐라를 모아주었다고 해. 그 삐라 모으는 역할을 호수가 한 거고. 그리니까 그 방바닥에서 발견된 삐라는 휴가를 갈 목적으로 방위병들이 모은 삐라였던 거야. 불온하거나 수상할 게 전혀 없는 상황인데 왜 호수를 조사한 걸까?’     

혁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했다. 그리고 무겁게 말을 이었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기 때문일 수도 있어.’     

‘돌아올 수 없는 강? 그게 무슨 말이야?’     

‘점심때 되어간다. 근처로 올래?’     

‘아냐. 지금은 좀 곤란하고 저녁에 어때?’     

‘좋아. 그럼 저녁에 보자. 수고해.’     

전화를 끊고 나서 순진은 지하철역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는 내내 돌아오지 못할 강이 무슨 뜻일까 생각해 보았지만 조금도 의미를 생각해 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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