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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다샤 Aug 10. 2020

동굴 속 호수

14. 장흥공작

14.     

호수의 사체 상태를 볼 때 완전의사를 가장한 위장의사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면 누가 위장을 했느냐를 밝히는 것이 과제이다.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용의 대상은 서울의 서부경찰서 직원이다. 그런데 왜 이 먼 곳까지 내려왔는지는 아직 알 수 없는 부분이다. 혁은 치안본부에 서부경찰서 000 경장의 작년, 올해 업무보고 내용을 요구해 놓았다. 업무내용 중 사망자와 관련된 사실이 있다면 사건의 해결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관련성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사건은 또다시 미궁으로 빠져 원점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      

서울로 올라가는 차량 안에서 순진은 내내 부검기록과 죽은 호수의 병적기록 등 관련 기록 등을 살피고 있었다.      

오전에 정 형사로부터 걸려온 전화 내용에 따르면 강화에서 호수와 일했던 선장이 서부서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대공용의점을 조사하기 위했던 것이라고 했다. 정 형사의 표현에 따르면 참고인 조사임에도 꽤 강도 높은 조사를 했다는 것이다. ‘강도 높은 조사’ 그것이 정확히 어떤 조사인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서울에서 함께 만나기로 했다.     

치안본부 입구에서 순진을 내려 주었다.     

‘어디로 갈 예정이야?’     

‘자기가 사무실 안 가고 집에 간다고 하면 자기 집에 가려고 했더니 자기는 오늘 사무실에서 야근할 기세고. 그래서 오늘은 집에서 가서 오랜만에 샤워 좀 하고 푹 자려고. 내일 연락할게.’     

‘미안해. 자료 요청해 놓은 게 있어서 바로 확인해야 하고, 또 그동안 수사결과를 보고도 해야 하고 해서.’     

‘알았어. 어렵게 설명 안 해도 이해합니다요. 지도관님. 그럼 난 들어갈게. 수고해.’     

순진은 정류장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혁은 곧바로 치안본부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본부에 들어간 혁은 특수 1 과장에게 곧바로 그동안의 상황을 보고했다.     

‘그동안 여수에 내려가서 고생 많았다고 들었네. 단순 변사사건인 줄 알았는데 올라오는 보고서를 보니 뭔가 찜찜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던데?’     

‘네, 유쾌하지 못한 방향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같은 식구 뒤를 캐는 건 매우 민감한 일이라는 건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더는 이야기 하지 않겠어. 확실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덮는 게 좋을 거야. 이건 우리 조직뿐 아니라 개인을 위해서도 충고하는 거니 기분 나쁘게 듣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신중하도록 하겠습니다.’     

보고 뒤 미리 요청했던 서부서 대공과에 대한 수사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다.     

작년 한해 대공 공작계획과 활동, 올 한 해의 대공 공작 계획에 대한 자료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그중 눈에 띄는 제목 하나가 있었다.      

‘장흥 공작’     

장흥이라면 경기도 관할인데 왜 서울 서부서에서?     

‘여수 돌산, 인천, 강화도, 서울 은평, 이제는 경기도 장흥까지? 도대체 이 관계는 뭐지? 가만?’     

장흥공작보고서의 최초 기안 일자가 1985년 10월. 기안자는 나제국 경장과 강차벽 경사였다. 계급으로만 보면 기안자는 선임인 강차벽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이전 공작 성과보고서를 보니 꽤 여러 명의 보안사범을 체포하였고 그중 몇 명은 간첩 혐의를 받고 처벌을 받은 사건이었다. 강 경사는 보국훈장을 비롯해 여러 건의 표창 이력이 있었다. 서울 서부지역에서의 대공 업무는 아마도 강 경사의 관할인 듯싶을 정도로 성과가 훌륭했다. 그렇다면 나 경장과 강 경사는 한 팀일 가능성이 높다. 나 경장의 여수 동선에도 함께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장흥 공작의 목표는 장흥 37사단에서 근무했던 방위병이다. 작년 10월 장흥의 한 젊은 부부가 새로 이사한 자신의 집을 도배하다가 바닥 장판 밑에서 수십 장의 북한 삐라를 발견하여 구파발 파출소에 신고를 하였고, 이 보고가 서부경찰서에까지 접수되었다. 이에 대해 서부서 대공과는 곧바로 상부에 공작 승인을 올렸고, 이에 치안본부로부터 c급 공작 승인을 받았다. 공작 과정에서 이전에 살던 사람은 장흥 부대에 출퇴근하며 근무했던 방위병이었으며, 그 불온선전물 역시 그 방위병이 수집해 놓았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당시 함께 근무했던 동료 방위병들 여러 명이 서부서로 불려 와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수개월에 걸친 내사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수상한 대공용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공작이 종결되지 않고 다음 해인 1986년에 다시 공작 승인 요청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역시 치안본부로부터 별다른 성과도 없었던 이 공작이 승인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용의자는 주거지라고 기재된 인천에서 체포되어 7일간 서부서에서 조사를 받고 풀려났다. 서부서에서 지하철 역까지 데려다주었다는 내용이 공작 종결 보고서에 기재되어 있었다. 그랬다. 이 용의자가 바로 호수였던 것이다.     

1986년 6월 10일 여수 돌산에서 사체로 발견된 호수는 6월 7일 서울 서부경찰서에서 풀려났다. 아니 서부서 공작보고서에 따르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3일간 무슨 일이 있었을까? 아니 6월 1일 체포된 뒤로 사체로 발견된 10일까지 무슨 일이 있었길래 사망했을까?      

그리고 ‘순진’의 말에 따르면 서부서 경찰의 차가 6월 9일 무슬목에 왔다는 것이다. 6월 1일부터 6월 9일까지의 사이에 서부경찰서가 지속적으로 관여된 증거가 분명했다.     

혁은 당장에 서부서 담당 수사관들을 불러다 조사해보고 싶었지만 그것은 일을 그르칠 뿐이란 걸 알고 있었다. 먼저 서부서에서 조사받았던 최초 신고자들을 비롯해 참고인들을 조사해 보는 것이 순서였다. 혁은 보고서에 기재된 참고인의 명단과 확인사항을 꼼꼼히 적었다. 이미 시간은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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