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다는 잘 있습니다 Nov 29. 2020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루카 1,28)

    ‘나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요.’


 가끔 나의 성격을 소개하게 될 때면 드는 생각입니다. 나에게는 상반된 성격이 세 개나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1.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의 성격 (내성적, 조용하고 착해 보인다고 함)

2. 편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나의 성격 (외향적, 장난치기 수다 떨기 좋아함)

3. 나만 알고 있는 나의 내면 ( 감정 기복 심함, 우울, 불안, 그런데 그 우울함 은근 즐김)     

  그리고 이 세 개의 성격들은 가족과 직장, 모임 1, 모임 2 등 여러 인간관계들에서 저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튀어나와 기능합니다. 나는 내가 외향적인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는 관계를 가장 좋아하며 내성적인 사람으로 있어야 하는 관계는 불편하다고 느낍니다. 이렇게 모순적인 성격 사이에서 어떤 성격이 나의 진정한 모습인지 혼란을 겪다 보니 편한 사람들과 있을 때 나오는 외향성을 나의 본래 성격이라고 믿기로 하였습니다. (사실 나는 내가 항상 외향적이길 바랍니다. 외향성을 바람직한 사회인의 성향으로 인식하는 사회에서 살다 보니 내향성은 고쳐야 하거나 숨겨야 하는 것으로, 외향성은 연기를 해서라도 갖추어야 하는 성향이 되어버렸거든요.) 모든 관계에서 외향적이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어떤 관계에서 내성적이라 만족스럽지 않은 나의 모습은 다른 관계에서 외향적인 나의 모습으로 채우면 되니까요.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인간관계들은 단 몇 개로 축소되었고 그 안에서 나는 내성적인 사람으로만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쉽게 상처 받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고, 거절을 잘하지 못하며 부당한 일을 당해도 바로 잡지 못하고 예민하고 쉽게 불안해하는 나. 이러한 못마땅한 내 모습만 반복하다 보니 스스로에게 불만이 쌓여갔고 그렇게 마음의 병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했던 MBTI 성격유형 검사는 나의 성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나와 똑 닮은 INFP 내적 쌍둥이들이 참 많으며 그들 또한 나와 똑같은 고민을 하며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지금껏 나의 큰 결점이라 치부해왔던 것들은 사실 INFP의 성격 특성 에 불과하다는 것, 모든 성격에는 장단점이 있듯 내 성격도 그렇다는 것.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자 한결 편안하게 내 성격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보는 관점에 따라 단점이 장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우유부단함은 사려 깊은 것으로, 감정 기복이 심한 것은 감수성이 풍부한 것으로, 걱정이 많고 예민한 것은 섬세하고 세심한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수태고지의 장면에서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은총이 가득한 이여라고 인사합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 곧 은총을 넉넉히 받은 이. 나는 이 구절을 읽자마자 성격으로 고민했던 지난날들이 생각났습니다. 하느님은 분명 나에게 감수성과 섬세함 등 좋은 은총들을 이미 넉넉히 주셨는데 나는 왜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투정을 부렸을까요? 또 나는 왜 은총이 부족하다며 다른 선물을 더 달라고 욕심을 부렸을까요? 그리고 누구보다도 나를 잘 아시는 하느님께서 내게 필요한 은총을 선물로 주셨는데도 나는 왜 그 선물을 거부했을까요? 이런 나의 지난 모습들을 떠올리자 내가 마치 ‘달란트의 비유’ 속에 나오는 어리석은 종처럼 느껴졌습니다. 주인이 준 달란트를 은총으로 받아들이고 잘 활용하여 몇 곱절로 불렸던 다른 종들과 달리, 달란트를 그저 땅에 묻어두기만 했던 어리석은 종. 그 종의 모습에서 부끄러운 저의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루카 1,28)의 말씀에서처럼, 주님께서는 내가 은총을 넉넉히 받았음을 알고 기뻐하기를, 그리하여 그 기쁜 마음을 가지고 주님께 받은 은총을 가치 있게 쓰기를 바라실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나와 화해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온전히 나를 받아들이기로 하였습니다. 내가 내향적이든, 외향적이든 또 어떤 성격이든 이제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진 출처: 미립 아트테인먼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