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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잘 있습니다
Sep 08. 2021
2년째 계속되고 있는 거리두기 속에서 점점 마음이 굳어가던 중 비대면으로 여름 연수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쓰일 수 있다는 기쁨,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공허해진 마음을 가득 채우고 싶다는 생각이 저를 연수 봉사로 이끌었습니다. 또, 이번에는 하느님께서 저에게 어떤 은총을 주실지에 대한 기대감도 크게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저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봉사자로 불러 주시는 이유는 우리에게 필요한 은총이 있기에 그것을 채워 주시기 위해서라는 말씀을 마음속 깊이 간직해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행복하지 않은 지금의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느님께 받을 은총이 많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신앙의 단맛만을 쫓는 철부지 같은 저에게 부활의 영광을 보기 위해서는 십자가 수난을 거쳐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고 싶으셨나 봅니다. 연수기간 동안 우리가 짊어져야 했던 십자가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비대면 연수에 대한 매뉴얼도 없는 상태에서 많은 것들을 하나하나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부담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와중에 델타 변이로 인해 상향된 거리두기 방역 단계는 우리를 더욱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시간은 얼마 없고 해야 할 것들은 많은 상황에서 10명의 봉사자가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이 어렵게 되면서 기존에 준비해왔던 연수를 축소하고 수정하는 것이 불가피해졌습니다. 이러한 막막한 상황을 오직 사명감과 사랑으로 감내해야 하는 현실이 버거워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일도 아닌 하느님의 일을 하기 위해 모인 우리들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그분의 뜻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우리들의 마음을 잡아주었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마르 10,27), 라는 말씀에 의지하며 우리는 사명감과 굳은 마음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힘을 모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직접 불러 주신 열 명의 제자이니 누구도 우리를 대신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이러한 것들이 가능했던 이유는 우리 안에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오병이어의 기적도 체험했습니다. 음식을 구하기 어려운 늦은 밤 외딴곳에서 고작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의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신 그 기적처럼, 우리들도 온갖 악조건을 극복하고 연수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이제 각자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온 오늘 문득 생각해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은총을 주시기 위해 우리 를 봉사자로 불러 주신 하느님! 그렇다면 과연 연수가 끝난 지금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받은 은총은 무엇일까요?
희망입니다. 과연 코로나는 종식될까요?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까요? 저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1코린 15,10)의 말씀에서 답을 구했습니다. 지금의 내가 어떻든, 그리고 내가 인생의 어느 지점에 서있든, 현재의 내 모습을 하느님의 은총이 이끈 것이라 믿기로 했습니다. 비록 코로나로 인해 현재의 상황이 버겁게 느껴질지라도 이 모든 것을 하느님의 은총이 이끈 것이라 믿는다면 지금의 힘든 상황을 의미 있는 순간으로, 그리고 우리가 거쳐야 할 하나의 중요한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코로나가 끝나면’이라는 말로 모든 가능성을 묻어버리고 불확실한 미래의 어느 시점만을 희망하다 실망하기를 반복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가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 안에서 가능성을 찾아 당신이 주신 달란트를 가치 있게 쓰기를 바라실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비대면으로 열린 이번 여름 연수는 우리 안의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게 해 준 기회이자 또 다른 시작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사랑입니다.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라는 드라마 미생의 대사처럼 동료가 힘들어할 때마다 우리는 서로의 십자가를 함께 짊어졌습니다. 비록 대부분의 준비모임을 비대면으로 진행하여 봉사자들끼리 얼굴을 마주 보며 소통할 기회는 적었지만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금방 뜨거워졌다가 금방 식는 냄비와는 다르게 우리는 서로에게 은은한 온돌이 되어 부담스럽지 않은 온도로 서로를 감싸주었습니다. 덕분에 그 온기는 연수가 끝난 지금도 아직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이 훈훈함을 연료 삼아 또 얼마간 각자의 일상을 힘차게 살아갈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민들레 씨앗이 되어 또 한 번 온 땅으로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새로 뿌리를 내릴 그곳은 어떤 곳일까요? 과연 그분께서는 우리를 또 얼마나 성장하게 하실까요? 여름 연수를 통해 그분께서 가득 부어 주신 믿음과 희망, 그리고 사랑이라는 은총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기쁘게 살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