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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후 Feb 27. 2022

시대를 앞서 간 선비, 반계 유형원을 만나다

여름 비가 대차게 쏟아지던 8월의 첫날이었다.

부안의 채석강을 둘러보고 전남으로 향하던 중 우연히 반계 유형원의 유적지를 발견하였다. 역사를 배우면서 한 번쯤 들어 보았던 <반계수록>의 저자 반계 유형원. 알고 보니 그가 바로 실학의 비조(어떤 일을 가장 먼저 시작한 사람)이었다.


실사구시. '실질적인 일에 나아가 옮음을 구한다', '사실을 얻는 것을 힘쓰고 항상 참 옳음을 구한다'로 풀이되고 있는 말이다. 이런 실사구시의 정신을 실천적 삶으로 보여준 반계 선생의 정신이 깃든 반계 서당에 다다를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레었다.

마을에 인접하여 있기에 접근이 매우 쉬워 실사구시 비 앞에 바로 주차를 하고 천천히 반계 서당 쪽으로 올라갔다. 가파른 산길이 찾는 이들이 오르기 편하도록 잘 닦여 있고 중간중간 친절한 안내문과 함께 센서로 작동되는 듯한 목소리 해설까지 준비를 하여 방문하는 이들의 이해를 돕고 있었다.


십여 분이라는 짧은 시간 사이에 빗방울이 점차 굵어지더니 반계 서당이 바라다 보이는 지점부터는 굵은 장대비가 쏟아졌다. 한여름의 찜통더위를 한순간에 날려버린 장대비에 오히려 개운함이 느껴졌다.

서당 입구에서 가장 먼저 방문객을 반겨주는 것은 반계정이란 정자이다. 빗속임에도 불구하고 고즈넉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빗속을 뚫고 올라선 반계 서당의 대문간에서 잠시 숨을 가다듬어 보았다. 반계 선생을 흠모하며 수많이 이들이 이 대문을 통과했겠지... 나도 그 무리들 중의 한 명이 되었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밀려왔다.


잠시 툇마루에 걸터앉아 비 멍을 즐기며 이곳에서 오랜 시간 책을 읽고 집필에 몰두했을 반계 선생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그가 살았던 시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발발하고 조선 건국 이래 누적되어 오던 여러 가지 모순이 극대화되어가는 시점이었다. 농민은 삼정의 문란으로 삶이 파괴되어 노비나 도적으로 전락하던 암울한 시기...

조선 후기 국가 개혁안의 교과서라 평가받는 <반계수록>. 그의 개혁사상은 시대의 아픔 속에서 탄생했다 해도 과건이 아닐 듯하다. 반계 실학의 출발이 '약해진 국력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그 극복을 위한 성찰의 결과'라는 점에서 깊은 공감과 존경의 마음이 우러나왔다.


비 멍을 하며 잠시 상념에 젖어 있는 사이 빗방울이 점차 가늘어져 안개가 걷히면서 산 아랫마을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서당을 빠져나와 서당의 바로 뒤편에 위치한 반계 선생의 묘터로 향했다. 언덕을 올라 돌계단으로 올라가 보니 경기도 용인의 선영으로 안장하기 전에 잠시 묻혀 있던 묘 터가 남아 있었다. 여름철의 풀이 무성하고 봉분이 상한 부분도 있지만 오히려 화려하지 않음이 그분의 삶에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묘 터를 둘러보고 내려오니 어느새 비는 멈추고 안개가 걷혀 우반동의 너른 들판이 내려다 보였다. 선생은 이 들판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농부들을 바라보며 나라와 백성을 염려하는 <반계수록>을 집필하였을 것이다. 다시 한번 서당의 대문에 서서 예나 지금이나 힘없는 백성들의 삶의 터전을 바라다보았다. 경작하는 농민이 땅을 갖도록 해야 한다는 그의 경자유전 원칙과 균전제 사상을 생각해 보았다. 성호 이익과 다산 정약용으로 이어진 그의 사상의 맥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어떻게 해석되고 있는지에도 생각이 미치자 그의 사상이 실로 깊고 넓었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400여 년 전에도 이곳을 찾는 발길은 흔치는 않았을 테지. 유명한 역사 유적지는 아니지만 유서 깊은 장소임에는 틀림없기에 소박하게 닦인 길만큼만 뜻있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부안 우반동 반계 선생 유적지 지킴이인 부안여고의 '얼아로미'. 이 어여쁜 후손들의 자발적인 자원봉사 활동으로 이곳 반계 서당이, 반계 선생의 사상이 면면히 맥을 이어갈 것임을 확인한 것은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워지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어 주었다.







#반계서당 #반계유형원 #실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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