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기 전 나의 꿈 이야기
고등학교 3학년 때 한 대학교의 건축학과에서 주최하는 대회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고1 때부터 붙어 다니던 친구들 중에서 이과로 선택한 친구 두 명과 함께 팀을 만들었다. 주제는 나무젓가락과 고무줄만을 이용해서 가장 높은 구조물을 만드는 것이었다. 대회 하루 전날, 집에서 이리저리 시도를 하던 중 우연히 스프링처럼 늘어나는 구조물을 만드는 데 성공했고, 대회 당일 나의 아이디어를 적용한 작품으로 아이디어 상을 거머쥐었다. 그 경험을 토대로 내 적성에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에 건축과로 진학을 하게 되었다.
건축학과를 선택한 것은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건축 설계를 하는 것이 내 천직을 찾은 것처럼 재미가 있었고, 멋진 건축가가 되길 꿈꾸기도 했다. 3학년이 끝날 무렵에는 자신이 설계한 작품을 전시하고, 다른 건축과 교수님들을 초빙해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을 하고 피드백을 받는 과정이 있었다. 그때 내 작품을 본 한 교수님은 콘셉트부터 결과물까지 학생이 한 실력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잘했다는 극찬을 하시기도 했다. 그날을 기점으로 나는 내 실력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건축가가 되기로 결심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꿈은 좌절되었다. 4학년 여름방학 때 서울의 유명한 설계사무소에서 한 달간 현장실습을 하게 되었는데, 현실은 이상과 너무나도 달랐던 것이다. 학벌이라는 타이틀이 실력을 가늠하는 척도였고, 아무리 내가 실력이 뛰어날지라도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없었다. 그리고 어느 대학교를 나왔는지에 따라 회사 내 라인이 결정되었는데, 어떤 라인도 잡을 수 없는 나로서는 건축가가 되기 힘들겠다는 결론이 한 달이 채 되기도 전에 나버렸다. 어느 사무소에서 어떤 프로젝트에 참여를 했는지가 앞으로의 중요한 커리어가 될 텐데, 나를 끌어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니 꿈을 이어갈 자신이 없어졌다.
현실의 쓴 맛을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기도 전에 경험해버렸지만, 오히려 일찍 알게 된 덕분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스스로 합리화를 했다. 그리고 졸업학년이 되기 전에 휴학을 하며 스펙을 쌓았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현재는 공항을 관리하는 공기업에 입사해 9년째 경력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공항이라는 곳도 나의 꿈의 직장이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처음부터 꿈꿨던 곳은 아니었고, 첫 번째 꿈을 포기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면서 만든 두 번째 꿈이다. 정말 운이 좋게도 내가 꿈꿨던 장소에서 전공을 살려 현재에 만족하며 일을 하고 있지만, 건축사 자격증을 따고 최근 자신의 사무소를 개업까지 한 지인들의 소식을 들으면 마음 한 구석이 시려오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내가 가보지 못한 길이자 포기한 길을 누군가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결국 걷고 있다는 점이 배가 살짝 아프기도 하지만, 이 역시 내가 선택한 일이기에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임을 알고 있다. 그래도 미련이 남았는지, 건축가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건축가처럼 하고 싶은 일은 또 다른 꿈의 씨앗이 되어 내 마음속에서 자라고 있다. 아직은 공간, 색채, 디자인 등과 같이 추상적인 단어로 떠다닐 뿐이지만 내 안에 잠재된 것들에게 꾸준히 자극을 주다 보면 단어들이 서로 연결되어 구체적인 문장으로 만들어질 것이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