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시간
아이가 잠들지 않은 밤 시간에 오롯이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감당하게 만든다. 우선 내가 그 시간을 써도 될지 고민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우리 집의 상황을 고려해 나의 스케줄을 유지할지, 포기할지를 선택한다. 유지하기로 했다면, 아이들의 목욕 루틴을 바꾸어야 하므로 저녁 식사시간 전까지 정신을 챙길 틈 없이 매우 바쁘게 움직여야만 한다. 손등에 생긴 습진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탓에 요 근래는 남편이 주로 목욕을 도맡아 하긴 했지만, 나의 스케줄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남편의 적극적인 협조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보통 이런 상황일 때는 둘째 아이를 먼저 재운 다음, 첫째 아이와 열심히 놀아주면서 엄마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게 한다. 아이가 좋아할 만한 여러 관심사를 유도하면서 말이다. 그러다가도 문득 아이가 나를 떠올리는 순간, 우려했던 문제가 터지고 만다. 그러면 남편은 더욱 에너지를 쏟을 수밖에 없다.
이번 주의 변수는 아이들의 컨디션이었다. 지난 월요일부터 첫째 아이가 열이 나기 시작해 오르내리기를 반복했기에, 이번 주 내내 어린이집을 보내지 못하고 가정 보육을 해야만 했다. 게다가 목요일 새벽부터는 둘째 아이마저 고열에 시달리는 바람에, 나의 온 신경은 아이들의 열이 내리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글을 쓸 수 없는 현실에 마음이 답답하기도 했다.
어젯밤에는 새로 시작하는 모임의 워크숍이 예정되어 있었다. 다행히도 두 아이들은 열이 내리면서 컨디션을 회복했고, 나는 예정대로 내 스케줄을 선택하기로 했다. 이제 제법 설명을 알아듣는 아이에게 '엄마, 이따가 잠깐 공부하고 올 거야. 금방 올 거니깐 걱정하지 마.'라고 미리 여러 번 이야기를 해두었고, 퇴근한 남편에게도 스케줄을 알리며 내 시간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막상 그 상황이 오면 아이가 슬픔에 빠지는 건 한순간이다. 어느새 책상 앞에 앉아있는 나의 옆자리로 와서 칭얼거리기 시작했고, 끝내 울음을 터뜨리며 닭똥 같은 눈물을 쏟아냈다.
"엄마랑 잘 거야."
“지우야, 엄마가 아까 이야기해 줬지?
엄마 공부해야 돼. 조금만 하고 금방 갈게.
아빠랑 먼저 자고 있어."
"엄마, 엄마랑. 엄마랑 잘 거야. 엄마~~~."
아빠한테 가있으라는 나의 말에, 아이는 문밖으로 나가 문 앞에 선 채로 나를 바라보면서 한참을 더 울었다. 남편이 와서 달래긴 했지만, 아이의 울음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어폰을 끼고 있던 오른쪽 귀로는 강의가 흘러 들어오고, 나머지 왼쪽 귀로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어와 내 안에서 뒤섞였다. 강의를 포기하고 아이를 재우러 가야 할까, 아이가 울더라도 남편에게 맡기고 내 시간을 지켜야 할까. 강의도, 아이의 말도, 그 어떤 것에도 온전히 집중할 수 없는 그 순간, 내 마음은 갈팡질팡하다 결국 나를 향해 움직이고 말았다.
아이를 향한 죄책감이 순식간에 나를 지배하긴 했지만, 이상하게도 내 몸은 의자를 떠날 줄을 몰랐다. 그 순간, 그 큰 감정을 누를 만큼 나를 향한 간절함이 훨씬 더 컸던 걸까. 이번 주는 책상에 앉을 시간이 거의 없었던 터라, 강의를 듣는 잠깐의 시간만큼이라도 꼭 지키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내 시간을 지킨다는 것은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덜어내야 함을 뜻한다. 네 살과 두 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는 그렇다. 남편이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이기에 감당해야 하는 순간들이 나를 선명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론 뒤섞인 물감처럼 알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앞으로의 시간들은 어떤 선택을 통해 나아가야 할지, 어떤 방향성을 갖고 걸음을 내디뎌야 할지,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많이 어렵다. 그저 기회가 닿는 대로,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고 믿을 뿐이다.
지우야, 엄마가 매번 미안해.
그런데 엄마도 간절했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