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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영노트 Mar 10. 2020

드디어 신입직원이 되었습니다

존버의 끝은 달콤했다


2010년 겨울, 졸업도 하기 전에 서울로 올라왔다.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쌓기 위해서다. 대학시절 나름 성실하게 보낸 덕분에 지방대지만 수석 졸업을 했고, 공모전 수상 경력, 기사 자격증 취득, 대기업 현장실습 경력까지 갖추며 취업에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영어성적이었다. 학원도 다녀보고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독학도 해보았지만 내가 살고 있던 울산에서는 한계가 있었기에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강남에서 가장 유명한 토익학원부터 찾아 등록했다. 학원에 도착하면 먼저 온 순서대로 강의실 입구부터 줄을 섰는데, 그 줄은 백 명은 족히 넘는 학생들로 비상계단까지 끝없이 이어졌다. 원하는 자리에 앉기 위해 늘 한 시간 전에 도착해 줄을 섰고, 영어 단어를 외우며 그 시간을 채웠다. 매일 수업까지 포함해 8시간이 넘는 시간을 영어에 투자했다. 예습하고, 수업 듣고, 복습하고. 이 사이클이 더해질수록 내 귀와 뇌는 점점 영어를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좀처럼 오르지 않던 점수는 3개월째 되는 달 정점을 찍었다.



모든 스펙이 갖춰졌으니 이제는 실전에 돌입할 차례이다. 처음에는 사기업 위주로 입사지원을 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스펙이란 스펙은 다 갖추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현실은 서류조차 통과하기 어려웠다. 사기업의 세계에서 내 자리는 없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자신감은 바닥끝까지 곤두박질쳤다. 시작부터 이렇게 어려운 데 합격을 하더라도 지방대 출신인 내가 과연 내가 잘 다닐 수 있을까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결국 공기업으로 눈을 돌려 채용공고를 확인하던 중에 인턴 모집공고를 보았다. 인턴 경력이 있으면 서류 지원을 할 때 가산점을 받을 수 있으므로 고민 없이 지원했고, 2011년 봄, 출근의 기회를 맛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이 문제였다. 비슷한 시기에 나는 비정규직 인턴으로, 옆 팀에는 정규직 신입으로 입사를 한 직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속된 자와 소속을 꿈꾸는 자 사이의 보이지 않는 경계 속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 일쑤였지만, 그럴수록 불안하게 흔들리는 마음을 더욱 다잡아야만 했다.




우여곡절 끝에 8개월의 길었던 인턴생활이 종료되고 다시 취업 준비가 시작되었다. 집 근처 독서실을 끊고 매일 그곳으로 출근했다. 아침 일찍 독서실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다이어리 정리였다. 그날 하루를 위한 다짐 문장과 해야 할 일을 기록하고, 오늘 하루 내가 공부할 분야와 양을 시간대별로 계획했다. 달력이 나와있는 먼슬리 노트에는 그 달에 예정된 채용공고 일정을 모두 기록했는데, 서류를 통과하면 동그라미, 떨어지면 가차 없이 가로줄을 그었다. 꼬박 1년 동안 지원한 회사만 해도 40개가 넘었다. 우리나라에 기업이 이렇게나 많은데, 왜 나를 받아주는 곳은 한 군데도 없는 건지! 그러다 수많은 가로줄 사이에서 동그라미가 그려지는 날에는 꺼져있던 의지력이 심폐소생술을 받은 것처럼 되살아났고, 다음 시험 일정에 맞추어 디데이 표시까지 하며 일정관리에 더욱 신경 썼다. ‘지원 횟수는 중요하지 않다. 떨어지는 횟수도 중요하지 않다. 1승만 하자!’ 나의 마음은 그렇게 단단하게 다져져 있었다.



운이 좋게도 면접까지 갔던 경험도 여러 번 있었지만, 결과는 늘 실패로 돌아갔다. 여러 사람 앞에서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서툴기도 했고, 혼자서 준비하다 보니 한계가 있었다. 온라인 취업 카페를 찾아보다 스피치 학원 정보를 발견했고, 당장 찾아가 상담을 받고 등록했다. 수업의 모든 과정들은 카메라에 담겼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영상을 돌려보며 표정과 자세,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 등 문제점을 분석했는데, 나는 이 시간이 가장 두려웠다. 내 눈으로 내 모습을 직접 본다는 것 자체가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불안한 듯 움직이는 손과 눈동자, 한껏 경직된 어깨,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 표정. 나는 분명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마주한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수업이 거듭될수록 나의 얼굴에도 드디어 철판이 깔리기 시작했다. 한결 자연스러워진 제스처와 말투, 면접관을 놓치지 않는 초롱초롱한 눈빛까지 장착하며 자신감도 되찾을 수 있었다.




면접 준비를 하다 보니 나의 관심사는 자연스럽게 외모로 넘어갔다. 외모지상주의는 아니지만, 합격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었다. 평소에는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며 잘 살아왔는데 막상 고치려고 들여다보니 밋밋한 내 두 눈에 시선이 꽂혔다. 속쌍꺼풀이 있긴 하지만, 눈두덩의 살 때문에 눈 화장을 하면 번지거나 티가 제대로 나지 않아 면접을 보러 갈 때마다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쌍꺼풀 수술에 성공한 친구에게 연락해 같이 병원을 찾아가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친구의 눈은 수술을 했다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전혀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친구를 만날 때마다 나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들었던 적은 있었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해야겠다는 의지가 나를 이끌었다. 병원에서 끝이 얇고 뾰족한 막대로 쌍꺼풀의 모양을 잡아보니 눈매가 한층 또렷해졌고, 신뢰감까지 생기는 듯했다. 예뻐진 모습으로 당당하게 면접을 보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까지 벅차올랐다. 결국 예약금 오만 원을 내고 쌍꺼풀 수술 날짜를 잡아버렸다. 



 그런데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수술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면접이 덜컥 잡힌 것이다. 다른 회사도 아니고 내가 가장 가고 싶은 회사였기에 고민은 가중되었다. 완벽하게 예뻐진 모습으로 면접을 보고 싶은데 수술 예후를 장담하기는 어렵다. 부기가 금방 빠지면 상관없겠지만, 만약 그 반대라면 퉁퉁 부은 눈과 한껏 작아진 자신감으로 면접을 망칠지도 모른다. 수많은 가정을 이리저리 하다가 문득 내가 도대체 이걸 왜 고민을 하고 있나 싶었다.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오죽하면 쌍꺼풀 수술까지 하려고 했을까. 이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한 걸음 물러나서 보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고, 무쌍으로 살라는 하늘의 뜻이라 받아들이며 기분 좋게 수술을 취소했다. 솔직한 내 모습 그대로 면접을 본 결과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몇 백만 원 날릴 뻔했는데 돈도 굳고 시원하게 최종 합격까지 거머쥐게 되었다.



© judebeck, 출처 Unsplash


취업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까지 나의 지난날을 돌아보니 안쓰러움 그 자체다. 합격의 문을 통과하기 위해 홀로 얼마나 많은 계단을 쉬지 않고 올라왔는가. 취업을 준비하는 취준생들이 모두 나와 같은 길을 걷는 것은 아니겠지만, 원하는 직장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목표를 이루겠다는 간절한 마음만큼은 비슷할 것이다. 그리고 분명한 건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이 길고 어두울수록 합격을 쟁취했을 때의 성취감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는 것. 그 어느 때보다 밝은 빛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 마침내 존버의 끝은 아주 달콤하다는 것을 함께 느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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