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잊은, 그리고 잊을 사람들 #1.
20대 중반에 만났던 A는 그 자체로 빛이 났다. 전문직 종사자란 직함만으로 추측할 수 있는 고액연봉, 모노톤으로 도배된 잘 꾸민 자가, 오랜 자기관리로 다진 건강한 식습관. 물려줄 것이 많은 부모님까지. 요즘 시대 급부상한 육각형 인간, 알파메일을 형상화한 듯한 사람이었다.
그를 만났던 25살의 나는 그것과 비교해 초라했다. 네임밸류 떨어지는 학교의 신문방송학과 재학생, 평일은 물론 주말까지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유지되는 회색빛 세계.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을 넘기 위해 잠도 줄여가며 노력하는 가난한 아나운서 지망생. 카메라 테스트마다 성형이 절실하다고 지적받는 한심한 외모까지. 또래 누구와 견주어 내세울 것 하나 없는 갑갑했던 시절.
A를 만나는 동안 딱히 그를 사랑한 적은 없었다. 그를 잡아 팔자를 고치겠다는 신데렐라 스토리도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와 함께 있으면 스스로 열등감이란 불구덩이에 기름을 붓고 있어 불편함이 컸다. 아무리 노력한들 38살의 나는 결코 A와 같은 삶을 살 수 없다는 걸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기껏 현실로부터 도피한 삶을 살고 있었는데, 그를 만나면 내가 가진 초라한 현실을 마주한다. 그게 사랑보다 컸다. 다시 말해 '건강하지 못한 연인사이'라는 뜻. A는 내게 '내 또래에선 찾을 수 없는 빛이 있다'고 말했지만, 그 프리즘이 무엇인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모르니까.
*해당 부분의 더 디테일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어진다.
(딱히 이길 필요는 없지만) 내겐 열등감으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는 방패가 있었다.
혈육. 평생 동반자로 살아야 하는 아주 가까운 형제. 내겐 선천적인 지병과 그 후유증으로 장애를 얻은 친누나 '알스트로메리아'가 있다. 그녀는 발달장애 중증 판정을 받아 사회생활은 고사하고 바깥도 제대로 돌아다니지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사실 방패보다는 짐짝에 더 가까운 존재다. 인지능력이 심하게 떨어져 집 근처 편의점을 가도 길을 잃는 사람이라 삶의 작은 부분까지 보호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오히려 내가 '알스트로메리아'를 지켜야 하는 방패가 맞다.
반대로 말하자면 나의 미래는 안 봐도 '알스트로메리아'로 가득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결국 경제적 능력이 없는 그녀를 온전히 돌봐야 하는 건 내 몫이다. 그것은 전통적인 대한민국 사회에서 결혼이 불가능한 내게 딱히 큰 부담도, 짐도 아니었다. 오히려 타인과의 결합 없이 여생을 누군가와 평생 함께 할 수 있다니. 노화란 필연적으로 우울과 고독을 동반하기 마련. 그 메마른 세계에서 혼자 말라가지 않도록 서로가 물질적으로/정신적으로 지탱하며 살 것이라 믿었다. 당연히 내 가치관 형성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알스트로메리아'의 존재는 A가 노력해도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는 방패이자 존재였다. 그가 가진 몸이든 커리어든. 노력만 한다면 완벽하게는 아니어도 언저리까진 따라갈 수 있다. 타고난 외모는 사실 이미 내가 이긴 상태였다. (그러니 그가 나를 좋아했겠지만) 하지만 노령의 부모님에게 동생을 낳아 달라고 떼를 쓸 수도 없는 노릇. 반대로 그것이 그의 가치관 형성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리라.
A는 외동이었고 공부만 했던 탓인지 친구가 없었다. 38세가 되어서도 여전했다. 사회성이란 울타리에서 열 발자국 이상 떨어진 사람이었다. 타자로부터 기대와 선망을 받아본 적은 있어도 일반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탓일까. 그는 타인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감각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외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그는 늘 관계를 통해 그 갈증을 해소하려 들었다. 그 대상은 언제나 연인이었다. 다른 관계에서 얻는 충족감을 모르기에 '사랑을 모르는 사랑꾼'으로 자란 어른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이기적이기 짝이 없는 성향이다. 자신은 남을 위해 희생하고 무언가를 소모할 생각은 없으면서 남들이 자신의 외로움을 해소해주길 바라는 마인드. 연애를 진득이 고찰한 적도 없는 주제에 진정한 사랑을 운운하는 자세까지.
내 미래가 '알스트로메리아'로 가득한 꽃밭임을 짐작하고 있었던 것처럼 A 또한 '고독'으로 가득할 미래를 대비하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 가치관이 가장 충돌을 일으킨 것은 '동반자'에 대한 인식이었다.
A는 내게 있어 '알스트로메리아'같은 존재가 없었기에 동반자에 집착했다.
당연히 그 형태는 부부여야만 했다. 10년 전 기준 38세. 이미 미혼이란 신분 자체가 이상한 꼬리표가 될 나이였고 설렘만 가득한 연애가 가능한 때도 아니었다. 자연스레 연인을 선택하는 기준이 '동반자가 될 사람'이었고 그걸 기준으로 다양한 것을 판단하고 점수매기는 사람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파트너에게 메리트는 제시하지 않은 채 헌신만 바라는 최악의 상대였다.
결혼 생각이 없는 나는 당연히 그에게 어울리는 피앙세가 아니다. 아픈 누군가에게 기생해 심적으로 의지할 심산이었기에 30년 뒤 찾아올 고립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건물주, 갑부, 금수저가 돈 걱정 없는 노후를 설계하는 것처럼, 내겐 외로움과 고독이 없는 노후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A가 바란 삶은 사소함의 연속인 것들이었다. 주말에 카트를 끌며 동반자와 장을 보고 같이 누워 주말에 TV를 보며 여유를 부린다든가. 집 근처 카페에서 각자 책을 읽거나 할 일을 하고. 무슨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상의를 하며, 서로의 일상에 선택 권한을 가진 삶. 전부 내겐 니즈가 없는 것들 뿐이다. 오히려 그것들은 꼭 부부가 아니어도 누릴 수 있는 베네핏이다. 동반자로서 장을 보면 애인과 크게 달라지나? 예산이 공동이라는 점?
이유는 안 봐도 뻔하다. A는 친구가 없었고, 가족들에게도 소홀했다. 원인을 분석하자면 내게 동반자가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그도 그런 자잘한 관계에서 오는 축복에 관심이 없었다.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연애. 사랑. 그리고 남자. 그게 전부였다. 감자탕을 먹더라도 남자와 먹어야만 맛을 느끼는 전형적인 애정결핍형 남미새. 그런 그에게 동반자란 안정적인 사랑의 상징이었던 셈이다. 빛바래지 않는 깊은 사랑이 모든 것을 잊게 할 것이라 믿는 연애란 종교의 광신도.
나는 달랐다. 이성애자라 해도 어차피 가난하고 병든 가족 때문에 결혼을 선택하지 '못' 했을 삶이다. 사랑의 궁극적 형태, 종착지. 뭐 그런 종류의 것들을 모두 포기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물론 이런 환경이라도 연애에 빠지면 모든 걸 내팽개치고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나는 사람도 많다. 당연히 나는 연애보다 나와 가족, 그리고 '우리'를 구성하는 모든 관계가 우선인 성향이었기에 사랑의 결실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맞다.
환경 탓도 있지만 어쩌면 사랑에 대한 가치를 서로 다르게 매긴다는 이유가 컸던 것 같다.
같은 천장을 바라보며 누운 어두운 방. 몸을 비스듬히 돌리며 그에게 물었다.
"A는 왜 인생 동반자에 집착해?"
여과 없이 집착이란 단어를 사용한 기억이 선명하다. 그 답을 이해가지 위한 질문은 아니었다. '나와 당신은 서로 다른 미래를 그리고 있다'는 것을 전하기 위한 서두에 불과했다. 그는 금방이라도 잠이 들 것 같은 노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이 너무나 외롭잖아."
"외로움은 꼭 연인으로만 해소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면 서로 인생을 지탱할 동반자가 필요해."
"그건 명백하게 외로움과 다른 감정이야. 그건 다양하고 복잡해서 누가 옆에 있다고 해서 쉽게 해소되거나 사라지는 건 아니라고 어떤 책에서 봤어."
외로움. 그는 결코 그 단어의 이면을 파헤치거나 깊이를 헤아려본 적이 없다. 딱히 그의 잘못만은 아니다. 그 세세한 맥락을 모두 짐작하기엔 우리의 어휘력이 너무나 부족하다. 한국어는 무수히 많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모두 '외로움'이란 한 단어로 정의한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다른 말을 찾을 수 없어 곤란할 정도다. 어휘는 생각을 지배한다. 언어에 민감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 내면을 세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사실 그걸 고찰하는 것도 시간낭비라 여겼을 사람이다. 분명 단어를 그 자체로 받아들인 채 37년을 살았겠지. 초조함, 불안, 불쾌감, 분노 등의 감정을 '짜증'으로 표현하는 10대 청소년처럼, 단어에 매몰돼 감정의 울부짖음에 귀 기울이는 방법도 모르고 견뎠으리라.
특히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지 않고 상대방을 '어리다'는 표현으로 깔아뭉개는 그 태도도 싫었다. 중학생 때부터 노자와 공자 사이에 껴서 도덕경을 논하고 싶어 했던 나다. 그가 20년 넘게 수학을 공부한 것처럼 나도 그 시간만큼 인문학을 공부했다. 그것을 세대차이라는 가위로 싹둑 끊어버려 대화가 단절된다. 그와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이었다. 짐작할 수 있듯 A는 나에 대해 무지했다.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응축시킨 페르소나로만 사람을 판단하며 그 뒤에 있는 본성까진 바라보지 못했다. 허구한 날 동반자 타령 하더니 그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야 대체 뭘 근거로 파트너를 찾는단 거야.
별안간 당시 그 이후 이상하게도 열등감이 사라졌다. 고작 그깟 이유로 존재여부도 불투명한 '영원'을 찾아 '이쪽이란 사막'을 전전하는 그가, 내 눈엔 신기루가 만든 오아시스를 쫓는 행위처럼 보여 우스꽝스러울 따름이었다. 그가 지금껏 쌓아 올린 금자탑들도 모두 허상처럼 보였다. 열심히 만든 몸조차도 외로움과 성욕이 빚어낸 추악함이었고 커리어 역시 정신적 성장을 대가로 지불한 물건에 불과해 보였다. 선망이란, 관점이 바뀌는 것만으로 이리 쉽게 무너지는 것이었구나.
이런 과격한 표현이 맞을 진 모르겠지만, 사실 그는 외로워 마땅한 사람이었다.
그가 가장 높은 가치를 매기는 것은 사랑이었다. 우정 나부랭이에 할애할 에너지는 없었다. 그런 주제에 외로움에 사무쳐 인형 고르는 감각으로 애인을 만든다. 애인이 생기면 모든 것이 그 위주가 되어야 맞다는, 연애 종교가 주입한 이상한 사상을 강요했고, 당연히 3개월 전 잡아 둔 지인들과의 일정 따위 모두 취소하고 매일 보는 애인과 보잘것없는 하루를 보내는 것을 더 선호하는 사람이었다. 그따위로 굴면 당연히 외로워야지. 공부를 하지 않으면 성적이 나오지 않고, 밥을 많이 먹으면 살이 찌는 것처럼. 그렇게 살면 당연히 외로워야 이치에 맞으니까.
반대로 그는 '연애교'가 주장하는 기묘한 교리를 설파하며 그것이 진리인 양 내게 믿음을 강요했다. "어떤 관계도 영원할 수 없다"를 강조하며 더 이상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도 어렵고 생겨도 어린 시절 우정 같은 뜨거운 감정을 교류할 수 없다고. 나도 언젠가 반드시 그걸 느끼는 때가 올 거라고 얘기했다. 저기요, 죄송한데 그건 당신이 그토록 찾는 부부사이도 마찬가지예요. 아니, 애초에 그쪽은 그걸 느껴본 적이 없으시잖아요.
지겨웠다. 영원한 관계 따위 세상에 존재할 리 없다는 건 철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기본적인 사실이다. 초등학생 때 반 중심 역할이었던 내가 지금은 그 아이들과 동네에서 마주치면 인사하기 애매해 일부러 멀찍이 떨어져 걸을 때부터 이미 느꼈다. 관계란 상황과 입장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어차피 예쁘게 쌓은 모래성에 불과하단 것을. 그래서 인간은 평생 고독과 마주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미 중학생 때 블로그에 썼을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그 관계 모든 것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 그것들 하나하나가 모여 내 세계관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고 여길 뿐이다. 왜 3개월 남짓할 연애엔 그리 집착하면서 못해도 3년짜리인 친구에겐 집착하지 않는 것인지 그와 나는 어느 시점 이후로 매일 가치관 충돌을 일으켰다.
동반자를 찾는 사람과 동반자가 필요 없는 사람.
이 소모전이 지쳐 결국 나는 그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어쩌면 A는 너무 많은 걸 가져서 외로운 것 같아."
그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는 이랬다. 서로 너무 바쁘니 효율적인 이별을 추구하자는 이유로 메신저를 통해 이별을 제안했다. 짧은 텍스트 안에 그간 쌓인 모든 감정을 담아 보낸 뒤 그의 곁을 떠났다. 그가 진짜 반려자를 찾을 수 있도록 빨리 옆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그에게도 나은 방향이기를 바라면서.
어찌 됐든 A와의 만남은 모든 것을 다 가지고도 외로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내 인생의 의미 있는 사람 중 하나로 기억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A가 그토록 동반자에 집착한 이유를 깨닫게 됐다.
이제와서 갑자기 반려자를 찾고 싶다고 생각한 건 아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서서히 고독이란 그림자가 닥치기 시작하면서, 그것이 만드는 그늘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A를 비롯한 내 친구들이 미래의 고독에 대비하며 '레인보우 실버타운' 따위를 논하는 동안, 사회에서는 갑자기 비혼에 관한 담론이 부쩍 늘었다. 덕분에 비혼이라 주장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도 많이 심플해졌다. "요즘은 그게 편하지" 같은 가벼운 존중도 돌아온다. '전통적 의미의 가족 결합'을 운운하며 설득을 시도하는 사람도 많이 줄었다.
사회현상을 분석하기 위한 글은 아니기에 자료를 제공하며 글쓰기는 어렵다. 개인적으로 잡지와 언론사에서 구르며 다양한 사람들을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추측해보자면, 여성에게 있어 비혼이 크게 대두된 큰 이유는 굉장히 복합적이다. 여성운동이 활발해진 것과 전통적 가부장 사회의 몰락, 그로 인해 깨진 결혼에 대한 환상, 여성의 사회적 진출로 경단녀가 되기 싫다는 가치관의 만연 등을 이유로 들 수 있다.
남성들에게 있어서는 지금껏 사회의 기득권 세력을 형성하던 남성들의 영향력이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부분이 크게 작용한 걸로 추측된다. 페미니즘이 과하게 변질되며 결혼을 무덤처럼 생각하는 남성들도 늘었다. 무엇보다 남성들에게 가장 크게 와닿는 부분은 경제적 부분과 경쟁사회의 심화다. 초기 결혼 비용이 사회초년생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나 결혼적령기가 점점 늦어지고, 여기서 오는 부담감이 심하게 작용했으리라 본다. 애초에 남성들은 여성들만큼 자발적 비혼주의를 주장하는 경우가 없기도 하다.
비혼에 관한 담론이 부쩍 늘어난 이유로 추측되는 것은 이처럼 사회적, 경제적인 이유가 대부분이다. 이는 현재 비혼을 운운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에 비해, 노인고독사라든지, 안락사, 실버 소사이어티 등 이런 '혼자서 해결해야 할 부분'에 관한 담론이 비례하지 않다는 점에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어린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A의 사례처럼 중장년 이후에 찾아오는 외로움은 돈과 커리어로 커버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저출산을 이유로 국가 소멸까지 거론되는 대한민국에서 1인가구를 위한 정책을 활발히 펼친다는 것은 당분간은 상상하기 어려운 와중에, 노년의 삶은 어느 덧 20년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대한민국에서 비혼주의를 표방하며 살기로 결심한 이상 간과해선 안 된다. 1인가구와 비혼주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단어는 독거중년과 독거노인이라고. 자녀가 있어도 독거노인이 생기는 사회에서 비혼주의자가 이 굴레에서 자유로울 확률은 현저히 낮다. 비혼주의가 감내할 진짜 현실은 3040 커리어우먼들에게 해당하는 내용이 아니다. 그보다 더 미래에 기다리고 있을 고독한 노년생활이다.
아직도 많은 비혼주의자들이 커리어와 자기 관리만으로 독거노년의 외로움을 해소할 수 있으리란 착각에 빠진다. 그러면서도 환갑이 넘어 빈 집에 홀로 남겨진 느낌은 굳이 생각하지 않고 덮어둔다. 심지어 먼 훗날엔 비혼가구가 늘어 관련 커뮤니티도 활성화될 것이고, 성 소수자 실버타운이 생길 것이라는 둥, 근거 없는 믿음에 빠지기도 한다. 돈을 많이 모아 둔 노후는 혼자 있어도 괜찮다며 늙어보지도 않은 주제에 장담한다.
현실은 언제나 상상보다 잔혹한 법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사적인 연락은 줄어들고 혼자 있는 시간은 많아진다. 더군다나 대한민국에선 환갑이 넘어서도 당당한 셀러리 맨으로 살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커리어와 고독은 더더욱 분리해야 한다. 무인 가게를 운영하며 취미 생활에 몰두하는 노후를 산다면? 젊고 창창할 때 취미생활이 없어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다 늙어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새 취미를 찾을 수 있을까. 지금이야 젊어서 주변에 친구들도 많고 커리어도 쌓을 수 있으니 이 이야기가 크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어쩌면 이성애자들이 선택하는 비혼이란 '언젠가 결혼을 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수반하기에 몇 수 앞까지 내다볼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외로움, 고독. 이 모든 것은 내가 쌓아 올린 모든 것과는 별개로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마치 죽음처럼. 그 시절의 A가 나이를 먹고 사무치는 외로움에 시달렸던 것처럼.
나와 A, 그리고 '알스트로메리아'는 각각의 이유로 비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인간은 절대 홀로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없다. 따라서 결합이 불가능한 입장으로선 홀로 말라비틀어진 미래를 상상하며 두려움에 떨게 되는 것은 필연이다. 셋 다 그게 싫은 존재들이다. 비록 아픈 사람에게 정신적으로 기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끊을 놓지 않으려 하는 기생충. 그 대상이 되어 자유를 잃더라도 경제적 독립이 불가능해 새장에 갇힐 수밖에 없는 새. 그런 미래를 죽었다 깨어나도 선택하고 싶지 않은 고상한 공작. 그와 나의 당시 관계는 비혼주의가 감추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지금 생각해도 흥미롭다.
그들의 선택이 가볍다는 이유로 그걸 비난할 순 없다. 인생은 모두 저마다의 선택이 있기에. 다만 기왕 평생 독신을 표방하기로 했다면 이 정도는 최소한 깊게 생각해봐야 한다는 조언만 전하고 싶을 따름이다. 나와 내 주변은 이미 '홀로 늙어 죽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생각을 가지고 있다. 영화 '메종 드 히미코'를 보고 오열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 다 이유가 있다. 우리는 페미니즘이나 결혼활동 실패의 방패막으로 쓰이는 비혼주의보다 그 미래에 대해 더 깊고 심도 있게 생각해 본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신을 고집하고 싶다면, 그 선택을 응원하되, 부디 조금 더 깊은 생각을 해볼 수 있게끔 A와의 이야기를 곁들여 보았다.
2024년. 그와 연락이 끊긴 지 벌써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당연히 아나운서는 못 됐고, 그나마 언론인의 끈을 붙잡기 위해 시작한 기자생활은 진작에 그만뒀다.
그 시절과 비교하면 살은 거의 20kg 이상 불어났고, 피부과를 아무리 다녀도 늘어진 탄력을 되돌릴 순 없었다. A처럼 멋진 대리석 바닥이 아닌 겨울엔 추워서 옷을 다 입어야 하는 일본식 가옥에서, 인테리어라곤 고려하지 않은 살림살이 몇 개 얹어 살고 있다. 역시나, 그때 생각했던 미래 그대로다. 그때의 나는 찬란하게 빛났던 A 씨와 모든 것이 다르다. 그래서일까. A조차 해결할 수 없었던 고독이 당시 그가 겪었던 것보다 더 큰 쓰나미가 되어 다가오는 것 같다.
사실 어릴 때 A보다 나은 부분이라고 느꼈던 감정들은 애초에 반려자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조차 갖춰져 있지 않았던 내가 그저 그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만들어 낸 신기루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아버렸다. A도 신기루를 쫓고 있었지만, 나 역시도 환상 속에만 존재하는 오아시스에서 모래를 퍼먹고 있었단 것을. 덕분에 내 남은 인생은 A가 경험한 감정의 순서를 뒤늦게나마 밟는 수준이 예정되어 있다. 모든 것이 화려했던 A조차 극복하지 못했던 재앙을 초라하기 짝이 없는 내가 이겨낼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참았던 고독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를 감싼다.
ㅡFIN.
[나를 잊은, 그리고 나를 잊을 사람들 시리즈]
사랑, 질투, 욕정... 어떤 관계든 반드시 뿌리가 되는 감정은 존재합니다.
이를 잘 다스릴 줄 안다면 인간관계는 책 보다 좋은 성장촉진제가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내가 떠나보낸 가족, 친구, 동창, 연인들을 추억하며.
그들이 내 인생에 있어 어떤 자양분이 되었는지 정리하는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제 경험을 통해 독자 여러분도 다양한 인생을 경험해 본다면 좋겠습니다.
*본 에세이에 등장하는 인물은 여러 경험을 섞어 만든 가상의 존재입니다.
불편함 없이 읽어도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