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말스런 여자 Jul 13. 2023

삼우제를 지내고 돌아오는 길

시모님 삼우제를 지내고 돌아오는 길이다. 난 느긋하니  양손을 깍지 껴서 머리 뒤에 대고  조수석 의자를 뒤로 조금 젖히고 만고에 편한 여유를 잠시나마 누려 본다.

아랫녘에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비석 앞에 우산을 폈다. 이제는고인이신 시모님께 간소하게 삼우제를 드리고, 지난 금요일 (7.7)에 상경하며 있던 이야기다. 남편은 피곤이 몰려오는지 하품을 한다. 난 졸음운전이 염려되어 소리나 한가락 뽑아 보라고 청했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먼저 내가 운을 뗀다.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몇 소절 부르니 남편이 처음부터 다시 부른다. 흥부가에, 춘향가에, 별주부전에, 항상 마지막 곡이 흥타령인데 그날은 지쳤는지 못 부른다. 남편은 노래는 잘 부르지는 못하지만 우리 가락을 참 좋아한다.


 난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수감 생활을 하는 주인공인 앤디가 잠시 되어 본다. 앤디는 그 교도소 악덕 소장의 사무실에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서의 이중창 '저녘 산들바람은 부드럽게'의 LP판을 틀어 놓는다. 앤디는 문을 걸어 잠근 채 볼륨을 높이고, 교도소 곳곳에 노래가 퍼지도록 스윗치를 올린다. 그리고 자신은 느긋하니 의자에 기대어 두 손을 뒤로 깍지 낀 채 야릇한 회심의 미소까지 짓는다.  앤디도 아마 피가로 같은 고소한 느낌이었을까?   '피가로의 결혼'은 피가로가 백작에게서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기 위해 작전을 짜서 백작에게 한방 골탕을 먹이는 스토리다. 교도소 운동장에는 세상을 함부로 살아버린 수많은 죄수들이 느닷없이 스피커를 타고 흐르는 아름다운 선율에 감전된 듯한 영상이 소환된다. 그들도 잠시나마 현실도 잊고, 자신의 처지도 잊고 행복했으리라. 그들은 잊혀졌고 포기했던 꿈도 다시 꿨으리라. 앤디가 내일은 이 소동으로 당장 삼수갑산을 갈 망정 잠시나마 여유를 부렸던 것처럼,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이 아니라  차창 밖에서는 비가 쏟아붓지만 남편이 부르는 판소리에 느긋하니 빠져 다. 남편이 항상 부르는 첫 번째 곡은 사철가다.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어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드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허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이어서 흥부가다.

~~ 곱사등이 뒤집어 놓고, 맺은 호박 덩굴 끊어 놓고, 패는 곡식 모가지 뽑고, 여승 보면 겁탈하고, 애 밴 계집의 배통 차고, 우는 아이 더 때리고, 물동이 인 계집 입 맞추고, 등등 끝이 없다.

이어서 춘향가로,

춘향모친이 나온다 기가 막혀, 별 일 났네 우리 집에 별 일 났어. 야, 요년아 썩 죽어라. 지체도 너와 같아야, 너도 좋고 나도 좋지야. 내 딸 춘향이를 버리고 간다 하니,~~~ 어쩌고 저쩌고. 마지막 흥타령은 부르진 않았지만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소리다. 이 곡은 김수연의 흥타령이다.


흥타령


창밖에 국화를 심고

국화 밑에 술을 빚어 놓으니

 익자  국화 피자

벗님 오자  달이 돋네.

아이야 거문고  쳐라

밤새도록 놀아보리라

아이고 되고 허허 어

성화가 났네 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아이고 되고 허허 

성화가 났네 헤


만경창파수라도 음

못 다 씻은 천고수심

위로주 한 잔 술로

이제 와서 씻었으니

대맹이 눈으로

장취불성이 되었네.

아이고 되고 허허 

성화가 났네 헤


물보다 깊으리라

가을산보다 높으리라

달보다 빛나리라

돌보다 굳으리라

사랑을 묻는 이 있거든

이대로만 말하리라.

아이고 되고 허허 어

성화가 났네 헤


  이제 조금은 긴장과 피로가 풀리나 보다. 글 쓸 여유가 있는 걸 보니. 많은 이들이 시모님 상에 관심 가져주고 지켜봐 주니 힘이 된다. 이번 시모님 상을 겪으면서 난 많은 심적 변화도 겪었다. 한 사람이 이 땅에 다녀간다는 자체로 족했다. 문상객들을 만나면서 어머니에  대한 친밀감과 무게감도 더 깊어졌다. 온 땅이 어머니를 진정으로 추모하는 듯도 했다. 나 역시 이렇게 산다는 게 그저 좋았다. 문상객들의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사는 방식도 각양각색인 다양한 모습들도 보았다. 강남땅에서 최고의 노른자 자리에서 살든, 세상적인 성공의 위치에서 살든, 아니면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고 살든, 산촌에서 흙을 파고 살든, 이 나이가 되니 큰 의미나 차이는 모르겠다. 기왕이면 많이 쥐고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게 좋겠지. 그러나 이제  나는 채움이 아니라 비움의 때인 것을 절절이 느낀다. 그저 어디서 어떻게 살든 나름대로 최선의 삶이면 족하겠다.  아직은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 있는 두 눈이 영원히 닫히기 전에, 내게 주어진 삶을 그저 감탄하며 살아가는 날들이면 좋겠다.



https://youtu.be/gJhwxhDFcs0


작가의 이전글 아들과 향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