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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말스런 여자 Jan 13. 2023

아들과 향수


지금 내 몸에선 은은한 향이 내 코 끝을 맴돌지만 예전과 달리 싫지 않다. 요즘 향수의 매력에 빠져 있으니. 내게 향수란 너무 먼 세계라고만 여겼었다. 내 돈 주고 사본 적도 없지만 어쩌다 선물이 들어와도 곧바로 누군가에게로 흘려보냈다. 난 가끔 주변에서 접하게 되는 향수의 향에 더러 거부감을 느껴서인지 관심이 없었다. 그런 내가  이리 향수에 꽂혀 버렸다. 향수에 대한 책이 발단이다. 그걸 계기로 나도 뒤늦게나마  일상에 향기를 발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나만의 향으로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싶었을까? 마치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에게 다가가 자신이 지닌 온 향기를 당신의 발 위에 아낌없이 쏟아부어버린 것처럼.

하여 나는 향수가 궁금해져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온갖 다양한 종류에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뭘 선택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다  어떤 장면이 떠오른다. 아들이 외출할 때면 내 머리가 아플 정도로 강렬한 향수를 썼던 것이. 그래서 먼저 아들의 향수를 써보자 하고, 아침에 출근하기 바쁜 아들을 붙잡고, "아들, 엄마가 갑자기 향수에 꽂혔어. 네 향수 한 두 개만 줘봐"했다.


아들은 바쁘니 퇴근하고 와서 챙겨준다 하는 걸, 난 호기심 많은 고양이새끼처럼 기어이 한 개라도 내놓고 가라 했다. 아들은 대충 골라서 여섯 개 정도를  내놓았다. 난 이 향수  저 향수도 뿌려보고 또 시간 차이를 두고 뿌려보면서 지내는 중이다. 그러다 얼마 전 지인과  전화로 두 시간 동안 서로 삶을 나누다가 어떤 통찰이 온다. 그랬구나! 내가 향수에 사로잡힌 것은 향수를 뿌리고 싶은 행위 이면에는 향수를 통해 나의 존재감을 느껴보고 싶은 여리고 가난한 나의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향수는 완전연소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며 인공적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은 제 요소가 균형 있게 섞여 있는 합성물이며 '향신료'에 들어간단다.

"냄새와 향수 사이에는 경계가 있다. 냄새는 의도적이지 않지만 향수는 그렇다. 냄새는 적응하기와 방향 짚기에 도움이 되는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향수는 그와는 다른 종류의, 훨씬 의도적이고 개인적인 매력을 낳는다. 향수는 감성의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들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향수보다 더 개인적인 것은 없다"라고  장그르니에 철학자는 "일상적인 삶" 향수 편에서 말했다.


그랬다. '가장 개인적인 것', 난 이 말에 꽂힌 것이리라. 가장 개인적인 것은 나의 가장 살아 있는 정체성인 생명력과의 연결고리다가왔다. 그런데 난 여전히 나의 존재감이 뿌리내리지 못한 불확실한 구조물인 것을 향수를 통해 다시 또 확인한 것이다. 그래서 내 아들도 자신만본질인 자아를 찾아서, 무의식적으로 향수의 속성에 끌려 저렇게 향수에 취해 있었구나 싶다. 이런 마음이 들자, 내 의식의 에너지 파장은 순간 확  변해버린다.


 마치 항아리 속의 물이 어느 순간에 포도주로 변했듯이. 시인 바이런은 이 기적에 대해 "물이 그 주인을 만나니, 얼굴이 붉어졌도다"라는 단 한 문장으로 최고 학점을 받았고 가히  탁월한 명문으로 길이길이 사랑받고 있다. 관점에 이 포도주 사건은 마리아와 예수의  합작품이다. 아들이 어머니의 부탁을 들어준 거며 동시에 예수님의 기적 중에 최초의 사건이다.

"마리아여! 당신은 아들을 아셨나요? 잔칫집에 술이 떨어져 하인들을 시켜 빈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울 때, 당신은 아들이 이적을 행할 것을 아셨나. 마리아여! 난 아들을 모른답니다. 그래도 사랑은 하지요."

  늦었지만 '저 넘은 왜 저리 향수를 쳐 뿌리고 다니는 ?'하는 거친 눈빛 아니라, 그 아이는 자신의 정체성(나는 누구인가) 찾아 뿌리를 내리고자 하는 갈망으로 이해하려 한다. 기적이란 게 꼭 외형적으로 거대하고 초능력 사건이어야 하는가? 눈길 다정한 시선으로 아들을 바라봐 주고, 타자와 세계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볼 수만 있다면,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화학적 변화만큼이나 값지고 귀한 내면의  변화라 여기련다.


아들 방에 한눈에 셀 수 없이 진열되어 있는 향수병들,  향수 수집가처럼. 곧 다가올 아들의 생일에도 남편은 " 큰 애는 향수 좋아하니 향수 선물 해줄까." 한다. 그런데  서글퍼진다. 아들이 향수를 좋아하는 거는 안다, 그렇지만 정녕 본질은 향수가 아닐  수도 있기에. 우린 아들에게 진정한 필요가 무엇인지 알맹이는 놓친 채  부수적인 것들만 들이미는 것 같아서다. "사자와 소"부부가 상대를 배려한다고 사자는 소에게 고기를, 소는 사자에게 풀을 주려 하듯이.


마력을 지닌 향수를  통해 나와 아들의 내면 슬그머니 비집고 나온다. 나쁘지 않다. 아들이 향수통에 빠져 살아도 향수도  그런 아들도  관심도 없더니, 향수의 특성을 통해 나와 아들과 세계를 바라본다. 후각은 감각 중에서 가장 연구가 덜 되어 있단다. 여전히 나에겐 세상도 아들도 후각처럼 충분히 알지 못하고, 나와 너도 알지 못한 채  살아갈 것이다. 그래도 사랑할 수는 있음이 변함없는 진리라는 기에.


https://youtu.be/bEjBqr4 er6 U

         Mary, Did you k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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