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짧은 2월 속에 봄이 웅크리고 있음을 느낀다. 머리가 아닌, 정보도 아닌, 일기예보도 아닌. 지금까지 살아온 내 몸의 감각이 예민한 촉수처럼 알아차린다. 세월이 갈수록 '산다는 게 참 잘 살았네 하는 것보다 사는 게 참 허당이네.'라는 아픔도 알아챈다.
삶은 감사해야 한다, 사는 게 적극적이어야 한다, 긍정적으로 살아야 한다. 늘 웃어라, 웃으면 복이 온다. 바꿀 수 없으면 상황을 받아들여라, 현재는 선물이다 등등. 온갖 좋은 말이나 문장들은 돈 지불할 필요도 없이, 귀에 못 박힐 틈도 없이, 온갖 메시지로, 동영상으로 차고도 넘친다. 이 세상에 차고도 넘친 것 중에 하나가 온갖 군데를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파고드는 메시지와 홍보물이나 영상물들이다.아이러니하게도 나도 지금 그 한몫을 하고 있는 중이다.
다른 달보다 짧은 2월은,이 달도 벌써 남은 날이 지나간 날보다 더 짧아졌다.
내 삶의 남은 날들처럼. 이젠 황혼 녘처럼짧은 시간과 온갖 미사여구의 넘치는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난 사는 날들이 엄마 품에 안겨 젖 뗀 아가처럼 편안하지는 않다. 산 다는 건 늘 문제 속에 있기 때문일까? 내가 삶을 편안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에는 명답도 정답도 없을 터. 내 몸이 그리 반응하는 걸 어쩌겠는가. 내 머리가 깨닫기도 전에, 내 인지 기능이 이건 이러이러하니, 저건 저러저러해야 한다는여과과정으로걸러질 틈도 없이, 몸이 먼저 그렇게 체득해 버린 건 아닌지.
겨울과 봄 사이에서, 지금 창밖에 보이는 사람들의 옷차림은 태반이 두꺼운 겨울 외투 차림이다. 몸은 이제 그 두꺼운 옷을 벗어버려야 한다는 걸 안다. 내 몸뚱이는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걸 한 발 앞서 가며,어릴 적 동화책에서 보았던 춥고 배고프고 어설프기만 한 베짱이처럼 버티며 여기까지 왔다. 이제 몸은 봄이 또다시 오고 있음을 그 무엇보다 먼저 감지하고 있다. 나의 필요와 결핍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허당인 대가리만 믿을 게 아니다. 마을 어귀에 서 있는 말 없는 장승처럼 70 개수가 버텨낸 이 늙은 몸뚱이의 저력이 결코 만만치 않으니, 2월처럼 짧은 남은 生들도 살아내겠지.
1월의 단상
일 년 12달 중에 벌써 한 달을 살았네. 난 한 달이 굴러갔는지, 기어갔는지 모르게 가버린 시간이다. 앞으로 얼마를 더 살아봐도 이 생이 끝날 즈음에도 그저 잃어버린 시간 같은 느낌일까!
내가 살고도 내가 살지 않은 것 같은 시간.
그건 왜지?
산다는 건, 내가 내 맘대로 상황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일까? 막히는 교통체증은 상황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삶도 그런 건지.
꽉 막힌 정체에 투덜대 보니, 그건 어린아이 같은 투정일 뿐. 어른은 하릴없이 그저 견딜 뿐이다.
그러니 묵묵히 1월을 마무리하자. 내일은 짧은 2월이 당당하게 다가온다. 언제나 군말 없이 365일을 짜 맞추는 건 다른 달보다 모자란 2월이다.
오늘따라 바람 한 점 없는 햇살은 유난히 따듯하다. 차가웠던 한 달의 날들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위대한 자연은 값도 없이, 이유도 없이 침묵으로 전한다. 햇살은 스스로 햇살을 비추듯이, 가슴은 스스로 가슴을 지켜낼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