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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게 뭐길래

by 수말스런 여자

사랑한다!

"이것들아." 지긋지긋하게 끈질긴 내 안의 것들아!

결핍에 시달리는 내 속의 온갖 감정들아.

무슨 사연이 있길래,

무슨 까닭이 있길래 ,

아무리 살아봐도 늘 내 속은 홍어 속일 거나!

허당인 날들이여!

철 모르는 날들이여,

철 안 드는 날들이여!


이런 나를 넌 엄마라고 하면 난 어쩌란 말이냐?

내가 낳지도 않은 띠동갑 아래쯤의 장미야!


오늘도 추적추적 비는 내리고, 덩달아 마음까지 더 생숭거리는 추석 연휴를 앞둔 휴일이다. 내가 널 안 지도 벌써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널 처음 방문했던 날의 기억을 어찌 다 말하랴! 코가 숨쉬기도 버거운 락스 냄새가 진동하는 집에서 너는 정신이 가물가물하고 혼미해서 소통도 안 됐고, 그저 너처럼 버려졌다는 유기견인 기쁨이와 무력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지. 쿠싱 증후군이라는 희귀병 증상으로 뚱뚱하고 작은 키에 50이 되어가는 아가씨, 알고 보니 넌 병도 병이지만, 너도 모르는 불명의 약에 취해 흐물흐물 지내고 있었다.


나라에서 사각지대의 삶들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난 너를 만났다. 살다, 살다 난 너처럼 기막힌 인생은 처음 본다고. 그래서 난 살아갈 때마다 힘든 일을 만나면 조용히 내 투덜이 주둥이를 닫았지. 그리고 이 아이가 내게 무엇을 요구해도 난 밉지도 않았고, 탓도 하지 않았다. 당연하다고! 네가 뭘 배웠다고, 이 세상에 나와서 누구에게 뭘 받아봐서 똑 부러지게 살아내겠느냐고. 그런데 넌 이 험악한 세상에서 눈치코치가 얼마나 발달했는지 때론 나보다 더 언니였다. 겉으로 보기엔 항상 긍정맨이었다.


너는 태어나서 한 두 살 때쯤에 어느 후처로 사는 할머니가 데려가 키웠다지. 왜 그랬는지 이유도 모른 채. 그나마 그게 정을 느껴본 대충 7살까지의 기억이라고. 그러다가 본처의 아들이 데려가 그 집에서 끝없는 식모살이가 시작됐다고. 얻어맞다 못 견디고 도망쳐서 이 집 저 집 전전한 세월. 차라리 고아원에라도 갔으면 학교라도 다녔지. 학교는 문턱도 밟아보지 못했다고,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호적도 없는 인생이었다. 이십 대쯤인가 어느 집에서 호적을 만들어 줬단다. 나이 생일도 대충 어림잡아 그 흔한 삼월 삼짇날로 올렸다고. 대부분 버려진 아이들의 생일은 다 삼월 삼짇날이라고 넌 말했지. 혼자서 어찌어찌 한글은 익혔다고. 또 화장품 매장에서 일을 했는데, 깨끗이 청소한다는 칭찬이 좋아서 스테로이제 약까지 늘 먹으면서 일하다 보니 결과는 희귀병만 얻었다고. 거기에 장미는 경제 개념도 없으니 써댄 카드빚으로 날마다 악덕 대부업자에게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도 복은 받고 싶은 건지, 마음이 고픈 건지, 이상한 사이비 종교에 나가면서 헌금은 꼬박꼬박 잘도 헌납하고 계시니, 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난 헌금도 하지 말라고. 그 벌을 받는다면 차라리 내가 받을 거라고 했다.


나도 내 앞가림도 못하는 비실이건만 너는 정말 대책 없어 보였다. 하여, 난 내가 맡은 공적 업무 필요 이상으로 너에게 집착했지. 당장 금융 파산 신고를 신청했고, 악덕 대부업자의 협박에 매일 밤마다 벌벌 떠는 너를 겉으로는 태연한 척 토닥였지만, 나도 속으로는 너 못지않게 떨었다고. 우린 결국 법원까지 다니며 '파산 신고' 승리를 얻어냈다. 더 이상 빚에 시달리지도 않고, 대부업자의 공갈협박에서도 벗어나니 몸이 훨훨 날 것 같았지. 난 네가 또 수급자로 받는 금액보다 궁핍한 삶을 사는 걸 이상히 여겨 나도 귀찮아서 쓰지 않는 가계부를 넌 쓰게 했고, 난 구멍들을 찾아냈다. 한 달에 한 번씩의 파마, 염색 비용, 나도 돈 아까워 생머리로 거의 평생을 살 건만. 또 숨쉬기도 힘들게 많이 사용하는 락스 값. 날마다 락스를 퍼부어 집을 쓸고 닦았다. 헌금 외에도, 혼자 사는 사람의 특성이 문을 꼭꼭 닫고 산다. 바깥 세계가 무서운 거다. 난 갈 때마다 문을 열어젖혀서 조금씩 적응을 시켰다. 문은 닫고 에어컨만 켜고 사니 쥐꼬리만 한 수급비에서 여기저기 돈이 줄줄 새어 나간다. 그중에서도 제일 크고 불분명한 항목이 약값이었다. 자긴 이 약만은 먹지 않으면 죽는단다. 그러니 이 약값은 나가야 한다고, 이 약을 꼬박꼬박 먹으면서 무슨 신줏단지 모시듯 귀하게 여기고 있었다.


난 또 기가 찼다. 약봉지에는 약국명도 없고, 카드도 안 받고, 증거가 남지 않게 현금으로만 이 약을 팔고 있었다. 약은 치료의 냄새가 아니라 약사의 더러운 냄새만 진동하지만 어쩌랴. 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만 하자 하고, 장미에게, 보아 하니 이 약은 너를 살리는 게 아니라 서서히 죽이고 있는 듯하니 끊자고 했다. 단번에는 어려울 듯하니 한 번 양을 두 번에 나눠서 먹고, 그러다가 다음에는 네 번으로, 또 더 줄여서 그 양이 너무 적어 불안하면 거기에 설탕이든, 프림이든 넣어서 양을 늘려서 먹자고. 나를 신뢰했던지, 이 아가씨는 드디어 이 일도 해냈다. 어느 날 전화로 "언니 나 이제 그 약 안 먹는다고." 다 끊었단다. 그러고 나니 그 뚱뚱했던 살도 서서히 빠져나갔다. 그렇게 우린 서로 다독이며 살아간다. 그 아이는 신변에 무슨 일만 일어나면 일 순위로 저절로 내가 떠오른단다. 난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선에서만 들어주면, 그다음에는 힘겹지만 또 다른 대안을 찾아갔다. 나에게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는 질기고도 강한 잡초 같은 힘이다.


작년쯤인가 그런 삶에 또 한 덩이의 무게가 이 노처녀에게 얹어졌다. 다발성 골수암이란다.

"언니, 다른 사람들은 의사한테 그런 통보를 받으면 울고불고 야단인데, 난 그런가 보다 했어!" 하고 태연하게 말한다. 산다는 것에 이골이 났을까? 그런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완치되지 않는다는 말에 희망을 잃었는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나도 부둥켜안고 우는 일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저 지나간 일들만 스쳐간다.

같은 동네라 둘이 다니다 보면 더러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둘이 어떤 관계냐고. 장미는 우리 언니라고, 그러면 또 그 사람은 나를 빤히 쳐다보며 친동생이냐고, 꼭 이런 확인이 필요한가? 장미는 외모가 독특하니 한 번 본 사람이면 거의 인상이 남을 듯도 하다. 두상과 상체는 하체와 너무도 비율이 안 맞으니.

어제는 추석이 다가오니 잠깐 내 코빼기를 내비쳤더니, 그간 얼마나 마음이 무너졌으면 실컷 울고 나더니 내가 엄마 같단다. 장미의 그 말에 나도 마음이 쿵하고 무너진다. '장미야, 세상에 나같이 쌀쌀맞은 엄마가 무슨 엄마냐고.' 그래, 넌 쌀쌀맞고 차가운 엄마도 경험을 못해봤으니 그런가 보다고. 그렇지만 난 어쩌란 말이냐?

너를 살뜰히 챙기기에는 나 살기도 빠듯하다고. 변명이든, 아니든 간에 너무도 치사하고 속보이긴 마찬가지니 말이다. 널 버렸던 부모도 무슨 사연이 있었겠지요, 널 호적신고도 해주지 않고 버린 그 할매도, 널 그리 뚜드려 팬 그 아들 넘도, 왕싸가지 그 늘근 약국년도 무슨 사연이 있었겠지요 한다고 어디 용서가 되겠느냐고.


25.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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