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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말스런 여자 Dec 07. 2020

지랄 총량의 법칙

                    메튜 본의 백조의 호수   

     

                    지랄 총량의 법칙

                                                

이런 말이 있다.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고. 내가 늘 '지랄'이라고 입에 달고 사는 말이기도 하다. 모든 인간에게는 일생동안 살아가면서  써야 할 지랄의 양이 정해져 있다는 법칙이다.

어떤 사람은 어려서 지랄을 떨던지, 어떤 사람은 중년, 아니면 늙어서라도 죽기 전에 기어이 지랄을 떨고 산다는 것이다.  나름 맞는 얘기 같기도 하다. 우리 주변에서 너무도 많이 보고 있지 않는가.


우리 시어머니와 살림을 합치면서 나는 주변의 권유에 따라 어머니 앞으로 보험을 들었다. 그때  보험을 소개해주면서 누군가가 하는 말이 자신의 친정어머니는 ㅇㅇ병원에  계신다고.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 힘들게 가족들이 내린 결정이란다. 친정어머니가 젊어서부터 그런 건 아니라고! 평생 시어머니와 시집식구들의 시집살이, 거기에 남편의 구박까지 다 받고 살아오셨다고.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친정어머니가 당신시어머니, 남편이 했던 몹쓸 행동을 고스란히 그대로 답습하며 사신단다.


이런 예는 경우가 심한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어려서는 순둥이였는데 나중에 까탈스러워지고, 반대로 처음에는 까탈스러운 사람이 무던하고 수더분하게 변하는 경우들은 주변에 다반사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나도 은근 신경이  쓰인다. 나도 늙어서 이 지랄이 더 심해지면 어쩌나! 누가 받아주지도 않겠지만. 아들, 며느리에게 다 떨면서 산다면 어쩌나! 그래서 드는 생각. 그래, 어차피 정해진 양을 떨 거면  빨리빨리  하루라도 젊어서 떨어 버리자.


"청춘아 돌려다오, 네 청춘아 어디 갔느냐!~~~"

친구가 자신이 부른 노래를 밴드에 올리며 건강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래 나도 늙어서 뒤늦게 청춘 타령하지  말고 지금 내게 남아있는 청춘의 잔존 능력을 찾아내어  건강하게 지랄을 발산해 보자고.

                           白山 作  (백조)


나름, 지금 살아가는 모양새도 그런 방향이기도 하지만.

젊어서는 탱자탱자 놀다가 뒤늦게   '이삭 줍기' 하며 살고 있는 현재 모습도 그런 거다.


'이삭 줍기가 뭐냐고? ' 밀레의 그림 고상한 이삭 줍기  풍경이 아니다. 먹고살기 위한 인생 풍경이다. 노후의 삶은 길어지고, 자식한테 부양을  기대던 세상은 사라져 가고, 그래서 생긴 현대판 이삭 줍기 인생이다. 은퇴 후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소일거리를 통해  얻은 작은 소득과 기존의 가지고 있는 수입과 합하여  살아가는 것이  이삭 줍기 인생이다. 삶에 무료함 내지 메마름도 없애주고 보람과 긍지도 있는 바람직한 측면도 상당 부분 있다.


나도 때론 철없이 쥐꼬리 봉급 같다 주고 위세 떤다고 남편에게 투덜 되기도 했건만,  내가 이삭 주워보니 알겠다. 그 쥐꼬리가 얼마나 큰 힘이었는지, 그 쥐꼬리만 한 것도  얻기가  얼마나 치사스럽고 버거운 지를, 나야 수 틀리면 그까지 것 언제든지 집어던지면 그만일 수도 있지만. 남편은 이러 지도 저러 지도 못하고 살아온 세월이다. 며칠 전에는 집에 들어오니  모자간에  약간의 트러블이 벌어졌다.


"네가 돈 벌어서 이 애미 써보라고  돈 한 푼 줘봤냐고?"

아들에게 터진 시어머니의 불만이다. 그렇구나. 마누라에게는 쥐꼬리 봉급이라고 무시당하고, 당신 어머니에게는 처자식밖에  모르는 불효자식이 되고, 남편도 이렇게 중간에서 힘겹게 살아왔구나! 싶다. 나도 이제 남편을 놓아줘야 되나 보다. 당신도 이제 면피는 했다고, 피박은 면한 것  같다고. 이제 됐다고, 당신 나름으로는 애쓰고 살았다고.


한때는 내가 왜 이러구 살까? 그런 생각쯤이야 왜 안 해봤겠는가.

여러 이유 중에 하나가 내가 늙어서  유산이라도 좀 받아서 편하게 살아볼까! 하는 치사함도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하늘도 나의 불량스러운 심보를  알았는지 덧없이 사라지더라. 언젠가는 남편에게 나의 속물스러움을 말하리라 했는데 이제 못 할 것 같다. 이제는 바락바락 대들어 이겨 먹을 것도 없는 힘없는 사람, 새삼스럽게 사람 맥 빠지게 만들고 싶지도 않다. 아니지! 내가 말 안 한다고 내 치사함을 어찌 모를 리가?

그저 우리는 언젠가부터 서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봐주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 넘어지고 실패하면서 얻은 선물이겠지.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

           

이야기 방향이 지랄에서 많이 벗어났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정리하면 인생살이가 억울하면 억울할수록 더 유별나게 지랄을 떠는 것 같다. 누군가의 친정어머니처럼! 그래서 올 가을도 작지만  나만을 위한 깜짝 이벤트를 계획했다.


메튜 본의 백조의 호수 발레를 보러 가자. 야리야리한 여자 백조가  아니라 멋진 근육질의 남자 백조가 역동적으로 펼치는 춤의 향연을. 고전 백조의 호수와는 완전 스토리가 다른  현대판 버전이다.

내일 보러 가는데 며칠 전부터 은근 기대되고  즐겁다.

더 늦기 전에 내게 아직 남아 있는 청춘의 잔존  감정들을 느껴보자. 이 가을에 나와 같은 누군가와 더불어 건강한 지랄을 발산해보련다.



                              19년  가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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