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정길 Oct 21. 2020

스포츠와 불문율, 그리고 배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가짐

며칠 전 미국 프로야구(MLB)에서는 화끈한 배트플립 장면이 연출됐다. 시카고 컵스의 타자 콘트레라스는 홈런을 쏘아 올린 뒤 배트도 같이 하늘로 쏘아 올렸다. 무려 아파트 4층 높이까지.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배트플립은 미국에서는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다. 그 대가는 다음 타석에서 톡톡히 치러야 했다. 상대 투수의 공이 어김없이 몸쪽으로 향해 들어왔고 타자는 예상했다는 듯이 피하지 않고 공에 맞아 1루로 걸어 나갔다. 지역마다 나라마다 문화적 차이가 존재하기에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스포츠에서도 공통으로 적용되는 암묵적 규율이 있다.     


불문율은 상세한 문서 따위로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사회 구성원들이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지키는 규율을 뜻한다. 스포츠에서 불문율은 꽤 많다. 야구에서 점수 차이가 클 때 도루나 번트를 하지 않는 것, 축구에서는 경기 종료 전 이기는 팀이 공을 돌리지 않는 것, 농구에서는 점수 차이가 클 때 작전타임을 쓰지 않는 것 등이 대표적인 불문율이다. 규칙 안에서 진행되는 것이 스포츠지만, 규칙이 모든 것을 다 포괄할 수는 없기에 불문율이 존재한다. 특히, 도덕과 양심 같은 정의적 영역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사람의 감정도 불문율을 존재케 하는 요소이다. 스포츠는 기계가 아닌 사람이 하기에 경기장에는 무수히 많은 감정이 뒤섞여 녹아있다. 상대방이 최선을 다하지 않고 대충 한다든가, 깔보고 무시한다는 느낌이 들면 으레 감정이 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감정은 자연스레 불문율과 연결되었다.


감정은 스포츠의 페어플레이 정신으로도 연결된다. 상대를 배려하고 최선을 다하는 마음가짐이 페어플레이 정신의 본질이기에 불문율과 다르지 않다. 상대의 감정을 생각하는 것이 배려가 되고, 불문율이 되고, 페어플레이가 되는 것이다. 스포츠에서 페어플레이가 강조되는 만큼 불문율이 강조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만약 불문율을 지키지 않으면 어떨까?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반칙은 아니지만, 그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되어있다. 또한, 페어플레이에 어긋나는 경우가 많아서 곱지 않은 시선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사실 곱지 않은 시선으로 끝나면 다행이다. 보복구가 날아오기도 하고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불문율을 지키는 것은 상대를 위한 배려의 또 다른 표현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승자와 패자가 가려지는 냉혹한 승부의 세계 속에서 서로 마주하며 기쁨과 환희, 아쉬움과 슬픔을 공유하기에 상대를 위한 배려가 스포츠에서는 더욱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스포츠의 불문율을 ‘규칙으로 묶어놓을 수 없는 서로에 대한 자발적인 배려’라 생각한다.




학교 체육수업에서도 스포츠의 불문율을 통해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알려주고자 한다. 작년 탁구수업에서는 엣지를 맞춰 득점했을 때 상대 친구에게 ‘미안’이라는 말과 함께 손을 들어 마음을 표현한 학생이 있었다. 구체적으로 탁구의 불문율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함을 말해 주지 않았지만, 스스로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었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은 주변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처음에는 엣지나 네트를 맞춰 득점하면 ‘앗싸’ 하며 좋아했지만, 점차 똑같은 상황에서 상대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을 건네는 것이 해졌다. 따로 불문율을 정의하고 말해 주지 않아도 그 안에서 새롭게 생겨나고 지켜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이 내가 불문율을 ‘규칙으로 묶어놓을 수 없는 서로에 대한 자발적인 배려’라 생각한 이유다.     


내가 체육수업에서 스포츠의 불문율을 강조하는 것은 어찌 보면 가장 아쉬운 부분이어서 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지닌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가짐’이 예전과는 다르게 약해지고 엷어지는 것 같아 아쉬울 때가 많다. 스포츠를 잘하기보다는 스포츠를 통해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데, 요즘은 상대보다 내가 우선이 되는 경우가 잦다. 그래서 상대와의 마찰이 빈번하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선행되면 자연스레 해결될 일이기에 더욱더 아쉽다.      


스포츠에서는 불문율이 지켜지지 않으면 곱지 않은 시선과 몸으로 향하는 공으로 되돌아온다. 현실 세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스포츠나 가정이나 학교나 다 똑같다. 똑같이 사람과 감정이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스포츠의 불문율을 통해 학교교육, 학교체육이 나아가야 할 길을 생각한다. 그리고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내 체육수업에 담고 공유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운동을 즐기는 우리의 힘을 믿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