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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정길 Jun 29. 2020

내가 너무 세게 쥐었구나

야구를 통해 돌아본 나의 과거

요즘 야구를 한다. 줄곧 보는 야구였지 하는 야구는 오랜만이다. 어렸을 적 동네 불알친구들과 당시 유명했던 선수들의 폼을 따라 하며 즐긴 기억이 어렴풋하다. 야구공도 흔치 않아 테니스공으로 대신했을 만큼 놀이형식의 야구 따라 하기였다. 대학 때는 야구를 어떻게 가르칠지에 관해 배웠는데 한 학기의 짧은 시간이었다. 그게 하는 야구 기억의 전부이다.

잊혔던 하는 야구의 기억은 교사가 되고 다시 살아났다. 학교에서 티볼과 소프트볼을 가르쳤는데 야구보다는 기능적으로 조금 더 수월해 큰 부담은 없었다. 그런데 근무지를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옮기고 신체적으로 기능적으로 더 성숙한 학생과 야구수업을 하게 되었다. 깊은 고민 끝에 “이참에 야구를 정식으로 해보자.”라고 생각하고 결심했다. 야구경기 경험을 통해 보다 자세히 알려주고 싶었다. 그것이 사회인 야구단, 나의 정식으로 하는 야구의 시작이었다.

내가 속한 사회인 야구단은 규모가 작은 편이다. 야구는 선수들이 각자의 포지션과 타격 순서를 가지고 있어 최소 9명이 뛰어야 하는데 첫 경기날 우리 팀은 9명이 왔다. 기회는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9번 타자 우익수. 내가 맡은 역할이었다.

사회인 야구라서 밀어쳐 우익수 방향으로 공을 보내기가 쉽지 않아 수비를 할 때 공을 만지는 일은 별로 없었지만 공격을 할 때 타석에 들어서는 것은 여느 타자와 똑같았다. 한두 번 타석에 덜 설 수는 있지만 똑같이 상대 투수를 상대하고 배팅을 해야 했다. 타석에 들어서 보니 상대 투수가 내뿜는 위압감에 짓눌렸다. 요 근래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스크린 야구장의 타석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빠르고 묵직한 공이 스트라이크존을 뚫고 정확히 포수의 미트에 꽂혀 들어왔다. 2 스트라이크. 라도 해야 했다. 힘을 주고 배트를 휘둘렀다.

상대 투수의 빠른 직구는 배트에 정확히 맞은 것 같았다. 알루미늄 배트에서 뿜어내는 타격음은 경쾌했고 허공에 울러 퍼지는 메아리는 하늘에 쏘아 올린 화살처럼 막힘없이 뻗어갔다. 타격음만 그랬다. 야구공은 정반대로 맥없이 허공을 가르다 멈춰 상대 좌익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배트를 너무 세게 쥐고 스윙을 해서 몸 전체가 굳어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부드러운 스윙 대신 딱딱한 스윙이 야구공을 뒤늦게 밀어냈고 평범한 좌익수 플라이 아웃이 되었다.


아드레날린이 온몸을 지배했던 타석에서의 짧은 시간을 뒤로하고 터벅터벅 더그아웃에 들어오니 엄지손가락의 통증이 느껴졌다. 타석에서는 못 느꼈던 통증인데 역할이 끝나고 긴장이 풀어지자 느껴졌다. 이 역시 배트를 너무 세게 쥐어서 스윙할 때 뼈가 울린 것이었다. 이것저것 다 안된다고 자책하며 배트는 왜 끝까지 세게 쥐었을까 생각했다. 힘을 빼고 부드럽게 스윙하고 임팩트 순간에만 힘을 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알고는 있었으나 실천이 되지 않은 게 문제였다. 무엇보다 처음이라서 그랬던 것이다.

2012년 그해도 그랬다. 군대에서 장교로 막 전역해 교직생활을 시작한 첫 해였다. 20대의 왕성한 혈기와 열정은 운동장도 다 못 담을 만큼 차고 흘러넘쳤다. 두말할 것도 없이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군대에서 병사들을 통솔하고 지휘했던 것처럼 학교에서도 학생들을 지도하고 교육하면 다 잘될 줄 알았다. 자신 있었고 호기로웠다. 타석에서 배트를 세게 쥐고 풀스윙 했던 것처럼 그해 학교생활이 그랬다.

결과는 처참했다. 한 달을 1타수라 하면 12타수 2안타 정도랄까?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힘만 잔뜩 들어가 있어 배트를 세게 쥐고 스윙한 타석에서의 나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잘 따라오는 듯 보였으나 타격음만 크고 멀리 뻗지 못한 야구공처럼 금세 튕겨져 나갔다. 우여곡절 끝에 첫 제자들을 졸업시켜 떠나보내니 엄지손가락이 아프듯 가슴이 시렸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너무 아쉽다.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의 도널드 글리슨처럼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어두컴컴한 장롱 속으로 들어가 두 눈을 감고 주먹을 불끈 쥐는 우스꽝스러운 포즈도 백번이고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힘을 빼고 또 힘을 주는 방법을 알 듯하여 “그때로 돌아간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마음이 가득하다. 그때는 처음이라 모든 것을 너무 세게 쥐고 있었다.

돌아보면 2012년 그해가 있어 지금의 나도 있을 수 있었다. 힘이 잔뜩 들어가 세게 쥐어볼 때가 있어 힘을 뺄 때를 알게 되었다. 나의 교직생활이 그러했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돌아와 야구장을 바라보면 “야구도 그러하겠지?”라 생각한다. 나도 모르게 열심히 하다 보면 가랑비에 옷이 젖듯 천천히 힘도 빠질 거라고. 그리고 부드럽고 임팩트 있는 스윙으로 멋있는 안타를 칠 수 있을 것이라고. 살며시 배트를 쥘 수 있는 그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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