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소식, 강구항의 하루)
시장엔 사람들이 살아간다. 활기찬 사람들이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가고 있다. 새벽에 찾은 재래시장의 한 모퉁이엔 시골에서 캐온 냉이가 있고, 산자락에서 뜯어 온 돌나물이 자리하고 있다. 머리에 수건을 쓴 할머니는 허름한 장갑을 끼고 호호 손을 불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새벽잠을 털어내고 나가지 말라는 아들의 손을 뿌리치고 왔으리라. 혹은, 아들 트럭에 실려 좋은 자리 잡으려 새벽잠 설치고 왔으리라. 아직 햇살도 비추지 않아 썰렁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님을 기다리며 자리를 비우지 못한다.
십여 년 전쯤부터 자리한 콩나물 파는 할머니는 어느새 머리가 허옇게 빠졌지만, 좌판에는 두부와 상추가 늘어났고 가끔은 채소와 도토리묵도 팔곤 하신다. 언제나 무뚝뚝한 듯하면서도 얼굴에는 늘 건강함이 넘쳐났었는데, 세월의 무게는 어쩔 수 없는지 해마다 얼굴빛이 변함은 어쩔 수 없는가 보다. 콩나물이 떨어지자 콩나물을 가져오라는 전화를 부탁한 적이 있는 할머니는 아들이 콩나물 공장을 하는 듯하다.
오늘도 떡을 파는 아주머니는 보이지 않는다. 늘 그 자리에서 맛있는 떡을 팔곤 했지만, 어느 날부턴가 자리를 비우고 말았다. 시장에 들러 떡을 사면 한두 개 덤을 주며 맛을 보게 했던 아주머니였다. 얼굴은 핼쑥할 정도로 핏기가 없는 아주머니는 언제나 웃는 낯으로 떡을 팔면서도 그 옆을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시장에 가면 의례히 떡을 사야만 했는데 보이지 않아 아쉽다. 혹시 병이라도 난 것이 아닐까, 또는 집안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지만 알 길이 없어 답답하기도 하다.
커다란 도마에 생선을 놓고 생선 파는 아저씨는 오늘도 건장한 팔뚝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활력이 넘친다. 넉넉한 검은색 점퍼를 입은 아저씨는 언 생선을 큼직한 도마에 놓고, 힘차게 칼을 휘두르는 모습이 언제나 인상적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생선을 다듬는 아저씨는 오늘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찾는 손님이 드물어 조금 서운한 듯하다. 생선 장수 아저씨 옆에 앉은 열무 파는 아주머니는 오늘은 싱싱한 상추도 곁들여 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오래전에는 여름이 되어야만 구경할 수 있었던 상추가 어느 계절에도 맛볼 수 있을 정도로 제철이 없어 조금은 아쉽다.
철 따라 나오는 채소와 과일이 있어 철을 기다리는 맛과 멋이 있었지만, 지금은 계절도 없이 언제나 접할 수 있음이 아쉽기도 하다. 봄철이 되어 냉이를 맛볼 수 있어야 하지만, 겨울에도 냉이를 맛볼 수 있게 되어 기다리는 재미가 덜 하고, 더구나 맛이 그 맛을 따라가지 못함은 어찌하겠는가?
커다란 좌판에 가득한 사과는 가을 사과와 같이 싱싱한 맛이 없어 보인다. 어쩐지 오래되었다는 생각과 저온 창고에서 참을 대로 참고 나온 사과가 조금은 어설퍼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수북이 쌓여 있는 노란 감도 어설프게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얼른 집어 한 입 베어 먹고 싶은 생각은 없고, 왠지 가을에서 지금까지 보관하느라 상하지 않도록 하는 사람의 억지가 스며있는 것 같아 아쉽다.
뒤뜰에 심을 씨 더덕을 사기 위해 찾아 간 가게는 부부가 난로 옆에 나란히 앉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씨 더덕을 달라는 말에 얼마나 반가웠는지, 얼른 달려와 씨 도라지는 필요하지 않느냐는 물음이다. 더덕만 달라고 했더니 썰렁한 가게를 찾은 손님이 반가웠는지 한 주먹 더 주었다는 설명과 함께, 다정한 웃음까지 덤으로 주어 아침부터 기분이 좋다. 도라지를 심으면 꽃도 구경할 수 있고 도라지를 먹을 수도 있다면서 심어 보라 한다. 도라지마저 심으면 좋겠지만 그럴만한 땅도 여의치 않고, 그러면 또 일거리가 생기는 것 같아 사양하고 돌아섰다.
집 뒤에 있는 자그마한 언덕에 더덕을 심고, 숨 쉴 틈도 없는 텃밭에 꽃과 나무를 심으려는 욕심은 오늘도 끝이 없다. 넓은 세상에 나무 한 그루 심을 땅이 없음을 아쉬워하며 장만한 작은 시골집, 봄이면 나무와 꽃을 심고, 채소를 열심히 가꾸려는 욕심이 올해도 끊임없으니 말이다. 아내는 목백일홍을 심으려 오늘도 안간힘을 쓰는데, 목백일홍을 심을 장소가 마땅치 않아 고민 중이다. 올봄에는 아내의 원을 해결해 주어야 하지만 어디서 목백일홍을 사고, 어떻게 싣고 와야 할까? 무창포 해수욕장을 들어가는 입구에 핀 빨간 목백일홍에 반해 벌써부터 심으려고 마음을 굳혔지만 지금까지 해결해 주지 못하고 있다.
올봄에는 이것을 해결해 주고, 작은 넓이의 텃밭에는 상추와 가지를 가득 심어 열심히 가꾸어 보려고 했는데, 갑자기 씨 더덕이 생각나 들른 아침 시장 모습은 벌써 봄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곳곳에 펼쳐진 좌판에서 봄소식을 가득 전해 주고 있어 조금은 신이 났다. 돌아오는 길에서 만난 모종을 파는 종묘상 좌판에는 푸른 모종이 가득하다. 무슨 모종이 이렇게 나와 있는지 궁금하지만, 심을 만한 땅이 마땅치 않아 작은 텃밭이라도 잘 가꾸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돌아온다. 시장에서 만난 봄은 올해도 설렘을 가득 주어 아침부터 기분이 상쾌하다. 오랜만에 찾은 시장에서 상큼한 봄을 가득 안고 시골집으로 오는 길은 마음마저 가벼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