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봄엔 감나무 꽃을 피워야 한다.

(감이 달린 감나무)

by 바람마냥

새 봄에는 감나무 꽃을 피워야 한다. 올해는 간신히 잎이 나와 감나무 모습만 보여주었다. 긴 세월 동안 아름다운 추억과 그리운 맛을 주었던 감나무이다. 고향을 기억해주고 그림움을 전해주는 따스함이 묻어 있는 나무이다. 언제나 가슴속에 있는 그리운 나무이지만 가까이할 수 없는 세상살이였다. 도시에서 삶이 그랬고, 삶이 바빠 그랬다. 초록 나뭇잎이 아름답고, 붉은 감이 그리우며 달큼한 맛은 혀끝에 남아 있다. 초봄에 어린 새싹이 나서부터 감이 익기까지 갖가지 추억이 있다. 붉은 감이 달린 감나무는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언제나 가까이 두고 만나고 싶은 나무였기 때문이다.


어릴 적, 뒤 울에는 커다란 감나무가 한 구루 있었다. 집 뒤로 커다란 밭 가장자리에도 한 그루가 자리하고 있었다. 초봄, 파릇한 새싹이 나오는가 하면 어느새 연한 녹색으로 하늘을 덮었다. 얼마 후 감나무에 꽃이 피기 시작한다. 옅은 주황색 꽃이 피면서 꽃 밑으로 작은 감이 열리면 서서히 여름이 익어간다. 감나무 잎이 짙은 녹색으로 갈아입을 즈음이 되면 어린 감은 어느새 아기 주먹만 하게 자라 있다. 여름이 더 깊어지면 묵직한 감이 되어 커다란 나뭇잎에 몸을 숨긴다.


여름내 거센 빗줄기와 바람을 이겨내면서 몸집을 불린다. 비바람에도 흔쾌히 몸을 맡기며 오는 계절을 노래한다. 서서히 여름이 깊어지고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비바람을 이겨낸 감은 가을의 전령 인양 시골집을 넉넉하게 만들어 준다. 바람 따라 그네를 타는가 하면 허기진 새들의 먹거리가 되기도 한다. 가을이 무르익을 무렵, 주렁주렁 달린 감은 진홍빛으로 물이 든다. 붉은 홍시가 바람에 떨어지면 조심스레 먹어 본다. 환장할 그 맛이 혀끝에 남아 있다. 감 맛은 아직 머릿속에도 남아 있다.


살아가는 동네는 산 골짜기에 위치한 곳이다. 해발고도가 약 300m 정도로 주변의 도시보다는 조금 춥다. 농작물과 나무들도 이웃 동네와 차이가 있다. 고랭지 배추를 비롯한 갖가지 푸성귀와 산나물이 가득한 동네이다. 초봄에 갖가지 산나물로 시작해 겨울에 빼놓을 수 없는 식량, 절임배추가 넘치는 곳이다. 가까운 도시에서 벚꽃이 질 즈음이 되어야 우리 동네는 꽃이 핀다. 이웃동네 꽃을 보고, 우리 동네 꽃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봄을 즐길 수 있다. 좋은 점이 너무 많다. 추위에 약한 꽃과 나무를 심을 수 없는 단점도 있다.


시골에 자리를 잡으면서 나무를 많이 심었다. 울타리 겸, 관상용으로 남천을 심었다. 회양목을 심고, 빨간 단풍나무도 심었다. 올해는 목백일홍과 사철나무도 심었다. 남도에서 홍가시나무와 황금사철도 공수해 왔다. 나무를 심어 놓고도 추운 곳이라 걱정이 많다. 매화나무가 염려되고, 화려한 단풍나무도 걱정스럽다. 남도의 식구들이 더 걱정이다. 다시 또, 감이 열린 감나무가 어른거렸다.


추운 곳이라 감나무가 자라지 않는단다. 어떨까 고민하다 반항이라도 하듯이 감나무를 심기로 했다. 감나무도 자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이른 봄에 그럴듯한 감나무를 구입에 뜰 앞에 심었다. 양지바른 곳에 심어 예쁘게 전지를 하고 정성껏 돌보았다. 봄이 다 가도록 몸살을 앓는지 잎이 나오지 않는다. 퇴비를 주면서 아침저녁으로 돌봐도 마찬가지였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5월이 되어서야 싹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동안은 뿌리가 자리를 잡느라 몸살을 앓은 듯했다. 천만다행이었다. 이웃에 볼 낯이 없을 뻔했다.


연초록 싹이 나오면서 점차 잎이 커지기 시작했다. 따가운 햇살에 몸을 맡기면서 제법 그럴듯한 감나무가 되었다. 감나무 위용을 갖추긴 했으나 꽃이 필 기색이 없다.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 말도 못 하고 여름을 보냈다. 잎이 무성한데 왜 꽃은 피지 않았을까? 정성이 부족했을까? 아니면 소독을 하지 않아서 그럴까? 갖가지 생각을 해봐도 알 길이 없다. 기억으로는 감나무에 소독을 한 기억이 없다. 특별히 퇴비를 준 적도 없는 것 같다. 할 수 없이 올해는 감나무를 잘 돌보는 수밖에 없었다.


올해는 퇴비를 많이 주기로 했다. 뿌리 주변을 파고 퇴비를 듬뿍 주는 것이다. 겨울을 잘 나게 해야 한다. 두터운 방한 옷을 입혀 주었다. 동해를 입으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이젠 계절에 맞기는 수밖에 없다. 감나무가 온전히 월동할 수 있도록 적당히 눈이 와야 한다. 또 하나는 적당한 추위가 와야 한다. 감나무가 온전히 살아남기 위해서이다. 새봄이 오면 무성한 잎이 나오고, 누런 감이 열리게 하기 위해서이다.


봄이 오면 두터운 외투를 벗은 감나무가 새싹이 돋을 것이다. 싹이 자라나 짙은 녹색이 될 무렵, 주황색 꽃과 함께 조막만 한 감이 달려야 한다. 시골집에 화려한 꽃잔치가 벌어지면, 감나무도 열매를 실어 멋진 풍경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노란 감이 열리면 아름다운 정원이 될 것이다. 오래전 추억을 되살려 주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꽃을 피워야 한다. 아내에게 붉은 감을 하나라도 따 주어야 체면이 선다. 이웃들에게 감나무가 살 수 있는 동네임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