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을 깨워주는 소리, 카리브해에서 : 본인 촬영)
오늘도 어김없이 암탉이 알을 낳았는가 보다. 한 마리가 울더니 옆 닭이 울어 준다. 조금 지나 이웃집 닭이 울어댄다. 품앗이를 하는가 보다. 사람 사는 동네가 아니라 닭이 사는 동네라는 것을 알려 주는 듯하다.
인류에게 많은 혜택을 주고 있는 닭이다. 죽을 때까지 계란을 주고, 멋진 치킨이 되어 주기도 한다. 죽어서는 먹음직한 백숙이 되기도 한다. 젊은이들의 멋진 가슴을 만들어 주기도 하는 닭이다. 인류에게 완전식품이라는 최고의 선물을 준다. 몸까지 바치는 희생정신이 뛰어난 닭들의 울음소리이다. 그 정도는 들어줘야 되지 않을까 생각도 한다. 하지만 엄청난 유세를 하는 듯하다. 위대한 닭들이 살아있음을 과시하는 울음소리는 새벽을 열면서 시작된다. 참, 부지런한 시골 동네 소리꾼이다.
닭 보다도 먼저 시작하는 소리꾼이 있다. 동네를 따라 흐르는 도랑물이다. 도랑은 일 년 내내 물이 마르지 않는다. 여름에는 넉넉한 물이 시원스럽고, 봄과 가을로도 제법 많은 물이 흐른다. 다만, 겨울철에 들어서면 약간 줄어든 듯한 물이 흐르는 도랑이다. 언제나 동네를 활기차게 만들어주는 닭소리가 있지만, 끊임없이 흐르는 도랑물 소리가 시골 동네 주인장이다. 계절 따라 물이 흐르는 소리의 크기와 감동이 다르다. 여름 소리가 넘치는 물로 시원한 목청을 틔워 주는 소리라 하면, 가을 소리는 많은 생각 얹어주며 소곤대는 소리이다. 겨울로 접어들면 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겨울 벗어난 봄철 소리는 옹알거리며 봄을 깨우는 소리이다. 청량한 도랑 물소리와 닭 울음소리가 어울리는 사이, 가끔 강약을 조절해 주는 소리꾼이 있다. 느닷없이 끼어드는 동네 지킴이들이 짖는 소리이다.
사시사철 동네를 찾는 이들을 환영하는 소리이다. 작은 소리도 기어이 알아듣고 짖어대는 소리는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새벽을 여는 닭울음소리에 놀라 장단을 맞추기도 한다. 밤이면 달을 보고 느닷없이 짖기도 한다. 어느새 이웃동네 식구도 합류하면 소리는 완벽하다. 어김없이 품앗이를 한다. 길게 목을 늘여 짖는 소리는 매칼 없이 짖는 소리 같다. 배를 깔고 느긋하게 짖는 소리는 존재감에 짖는 소리 같다. 하늘을 향해 짖는 소리는 심심해서 짖는 듯하고, 하얀 달보고 짓는 소리는 허전해하는 소리 같다. 가끔 이웃동네 개들도 장단을 맞추며 그치지 않는다. 조용한 동네에 강약과 멈춤을 주는 건방진 소리이기도 하다.
동네에는 말리지 못할 소리꾼도 있다. 처마 밑에 재잘대는 새소리는 일 년 내 감당해야 하는 소리이다. 창문 열면 들리는 재잘거림은 물리칠 수가 없다. 봄철엔 집을 짓느라 재잘대고, 알을 품어 새끼가 태어나면 전 식구가 재잘댄다. 밥 달라고 재잘대고, 밥 먹으라 재잘댄다. 새 집인지 내 집인지 분간할 수 없는 집은 새소리로 가득하다. 산에서 가득한 새소리 넘치면, 처마 밑 새소리가 어울려 시골집은 신나는 굿판이 된다. 가끔 나타나는 산까치는 겁을 주는 소리꾼이다. 길게 뿜어내는 산까치 소리는 예쁜 이름을 뺏아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사람 위를 떼 지어 날며 시위를 하기도 한다. 먹음직한 먹거리는 놔두지 않는다. 검게 익은 블루베리가 남지 않고, 문 앞 산 머루가 온전하지 않다. 산새들과 놀고 있는 사이 님을 찾는 고라니의 긴 울음소리가 메아리친다. 애절하면서도 처절한 소리꾼이다.
시골에는 어울려 사는 소리꾼들이 많다. 이 소리꾼에 귀 기울이면 저 소리가 질투한다. 저 소리꾼에 마음을 주면 먼 곳에서 시기를 한다. 졸졸거리며 갈갈대는 도랑물 소리가 안락함을 얹어 준다. 늘어진 게으름을 닭 소리가 깨워준다. 낯선 사람 찾아오면 개들이 일러주고, 책상 앞에 졸려하면 산새들이 찾아온다. 그중에도 반가운 소리는 사람이 살아가는 소리이다. 이웃에서 놀러 오라 불러 준다. 안주거리 있으니 소주 한 잔 하러 오란다. 이웃에서 닭 모이 주는 소리도 들린다. 강아지 어우르는 소리도 들린다. 가끔은 동네를 구경하러 온 사람 소리가 들려온다. 봄이면 나물을 찾아오고, 가을이면 산 구경하러 온다. 모두가 한적한 시골 동네에 살아가는 반가운 소리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