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풍경, 중국 천산 천지:본인 촬영)
마을이 계곡 아래쪽으로 향하여 마치 울타리에 둘러싸인 것처럼 아늑해 보인다 해서 '전하울'이라 하는 동네, 시골살이를 하는 동네이다. 시골집이 있는 우리 동네는 봄에서 가을까지 갖가지 이야기를 전해주는 작지만 아름다운 동네이다. 입구부터 심상치 않다. 마을에 들어서는 길 양쪽으로 국화가 나란히 심어져 있다. 조금 더 들어가면 비탈밭에도 국화가 가득 심어져 있다. 봄부터 싹이 돋아나 비바람을 뚫고 가을이 되면 노란 국화꽃이 핀다. 동네를 환하게 비추어 주는 동네의 보물이다.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커다란 느티나무가 우직하게 서있다. 사시사철 동네를 굳건히 지켜주는 우리 동네 수호신이다
봄이 왔다. 파란 국화 싹이 돋아날 즈음, 동네는 살아 움직인다. 밝은 빛이 감지되면 닭들이 먼저 아는 체한다. 닭들이 새벽을 알리면서 울어대면 동네도 깜짝 놀라 잠에서 깬다. 닭이 울고, 산새가 재잘대면 여기에 질세라 동네 지킴이들이 짖기 시작한다. 동네 식구들의 소리로 동네가 떠들썩하다. 하늘이 서서히 밝아오고 산 말랭이 낙엽송이 기지개를 켜면, 뿌연 안갯속에 산새들이 날아오른다. 햇살이 화살 되어 동네를 서서히 비추어 주면 동네는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게 봄이 왔다.
우선은 농부들 발걸음이 바빠진다. 비탈밭을 갈아야 하고, 논두렁을 손봐야 한다. 배추를 심을 비탈밭에 두둑을 만들어야 한다. 고랭지 채소가 유명한 유세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푸르른 배추를 키우고, 무를 심어 살찌게 해야 한다. 시골 동네 효자 품목들이다. 배추가 실하게 자라 가을이면 고랭지 절임배추가 넘치게 해야 한다. 서서히 따스한 바람이 불어오면 비탈 밭고랑에 점 푸름이 생겼다. 서서히 비가 오면서 간간히 햇살이 찾아왔다. 기어이 견딘 점 푸름은 긴 줄푸름으로 변했다. 그렇게 봄이 무르익어가면 사람이 발길도 바빠진다.
산나물이 자라나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홑잎나물에 잎을 내밀었다. 봄바람이 익어 갈 즈음 두릅이 순을 내민다. 사람들의 발길이 바빠지는 이유이다. 대지가 녹색으로 물들 즈음, 취나물이 나풀거린다. 거기에 고사리가 순을 내밀었다. 가끔 고비도 존재감을 과시한다. 파란 미나리는 벌써 키를 키웠다. 서서히 여름으로 치달으면서 줄 푸름이 밭을 덮었다. 농부들의 발길이 더 바빠진다. 동네 입구 국화도 잎이 무성해졌다. 서서히 꽃을 피울 준비를 해야 한다. 두툼한 푸름이 검푸름으로 익어갈 즈음, 동네는 여름으로 접어들었다.
산 말랭이에서 바람이 내려왔다. 동네는 더위와 상관없는 서늘한 동네로 변했다. 산에도 녹음이 넘쳐난다. 푸름이 도랑에도 물들었다. 도랑을 가득 메운 물줄기가 시원함을 선사한다. 계절에 따른 물줄기는 여름임을 알려준다. 종일토록 갈갈대며 여름이야기를 들려준다. 앞마당에 잔디도 키를 키웠다. 영산홍도 붉은 꽃에 물들었고 꽃잔디도 덩달아 붉어졌다. 뒤뜰 황매화가 바람에 너울 댈 즈음, 뜨락엔 철쭉이 꽃을 피웠다. 여기에 공작단풍이 넉넉한 잎을 키웠고, 수국도 하얀 꽃에 물들었다. 서서히 여름이 깊어가면서 하늘이 높아진다. 가끔 고추잠자리가 찾아오고 서서히 서늘한 바람이 산을 넘어온다. 가을이 온다는 징조이다.
가을 햇살이 따가워졌다. 서서히 가을 속으로 빠져든다. 마당가 잔디밭에도 햇살이 찾아온다. 여름까지 녹음이 넘쳐 망설이던 햇살이다. 높아진 파란 하늘에 고추잠자리가 맴을 돈다. 누런 들판에 메뚜기가 뛰고 앞산에는 알밤이 익어간다. 밤송이가 입을 딱 버릴고 하품을 한다. 동네 사람들이 바빠진다. 붉은 알밤을 줍기 위해서이다. 귀한 양식 빼앗길까 다람쥐도 바빠진다. 서서히 농부들 발걸음이 잦아진다. 배추를 뽑아 특급 절임배추로 한 해를 마무리해야 라기 때문이다. 계절이 빨리 지날까 걱정이다. 누런 들판이 하나둘 지워지더니 하얀 서리가 내려왔다. 앞산 낙엽송도 하얀 서리를 이고 있다. 국화가 한껏 피어 동네를 밝혀준다. 지나칠 수 없는 국화꽃이다. 맑은 햇살이 찾아오고 하늘이 높아졌다. 서서히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겨울이 온다는 소식이다.
겨울 초입, 긴긴 겨울 날을 준비해야 했다. 참나무를 한 트럭 실어 왔다. 겨울을 지켜 줄 겨울 식량과 같은 땔감이다. 조심스레 톱질을 하고 장작을 팬다. 경쾌하게 쪼개지는 나무토막들이 동네를 따스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장작을 모아 창고에 차곡차곡 쌓는다. 겨우내 따스함을 줄 땔감이니 힘들어도 감사한 마음뿐이다. 앞 산에는 낙엽이 가득하지만, 땔감으로 쓰이지 않아 서운하다. 오래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했을 낙엽이다. 낙엽 한 톨 남기지 않고 긁어모으던 오래전 시절이 그립기도 한 겨울이다.
따스한 햇살이 찾아와도 국화밭에도 허전해졌다. 가을까지 동네를 밝게 빛내주던 아름다운 국화 밭이다. 동네 길 양 옆엔 국화가 사열하듯 서 있었다. 꽃을 피워 동네를 밝게 해 주던 국화꽃이 진 것이다. 양옆으로 비탈진 밭에도 꽃이 진 국화가 과거를 회상한다. 가으내 꽃이 피면서 화려한 색깔로 벌을 모아 잔치를 하던 국화이다.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검게 말라버린 국화가 세월의 흐름을 알려준다. 국화밭 밑으로는 커다란 밭도 썰렁하다. 가을까지 빨간 고추를 달고 있던 고추밭이다. 고춧대만 남아 밭을 지키고 있다. 비탈밭도 텅 비었다. 가을까지 모든 것 내어 준 성스런 껍데기들이다. 껑충한 느티나무는 오늘도 근엄하게 동네를 지키고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많은 이야기 만들어 주었다. 모든 것을 내어 준 자연은 숨 죽이며 봄을 기다릴 것이다. 힘을 모아야 봄을 키울 수 있고, 세상 이야기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도랑물은 오늘도 졸졸거린다. 시골 동네 일 년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조용해진 전하울에 해가 넘어갈 즈음, 외딴집 굴뚝에 연기가 피어난다. 하얀 연기 저녁을 알려주면 온 동네는 저녁 이야기로 깊어져 간다. 따스한 군불을 지피고, 구수한 이야기로 겨울은 더 깊어간다. 그렇게 전하울은 겨울로 접어들었다.
겨울 속 전하울은 고요하다. 떠들썩하던 산새들도 어디론가 숨어들었다. 발길이 잦던 사람들도 발길을 멈췄다. 하얀 눈이 동네를 덮었다. 낙엽송도 하얀 눈을 쓰고 힘겨워한다. 가끔 울어대는 고라니 소리는 짝을 찾는 처절한 소리이다. 햇살이 산을 넘을 즈음에야 동네는 숨을 쉬며 하루를 연다. 긴 도랑은 여전하다. 도란도란 아직도 물이 흐른다. 깊은 겨울 속에 봄을 준비해야 하는 시골은 조용하기만 하다. 하얀 눈이 펄펄 또 내린다. 하늘 가득히 내린다. 산에도 들에도 눈이 내려 하얀 세상이 되었다. 여기가 천국 아닌 천국이다. 하얀 세상 밑엔 물이 흐르며 겨울 이야기를 전해준다. 여기는 전하울, 시골 동네 겨울은 그렇게 저물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