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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Feb 14. 2021

어머님의 설날은 어떠했을까?

(설을 맞은 어머니, 노르웨이에서 만난 풍경)

어머님의 설날은 설 오기 전, 한 열흘 전부터 시작된다. 아, 그 전부터인지도 모른다.

빠듯한 살림살이 속에 가용 돈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으로 마련할까? 고민되는 일이다.

현금을 만질 수 없는 시골, 우선은 뒷 광 단지 속 쌀이 우선순위였다. 하지만 그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아버지가 아시면 절대 허락하지 않을 일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생각이 있다. 남은 겨울을 버티고, 햅쌀이 나올 때까지는 한참이 남아있다. 그렇다고 뾰쪽한 대안을 제시하거나, 돈을 듬뿍 쥐어주는 것도 아니다. 기어이 일을 내고 말았다.


쌀을 두어 말, 그리고 애지중지하던 고추 몇 근을 팔기로 했다. 기어이 쌀 두어 말을 머리에 이고, 고추 포대를 들고 오일 장에 나서야 했다. 쌀과 고추 값이라도 실하게 받았으면 하는 생각이지만 만만치 않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이고, 들고 나오는 품목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련한 돈으로 차례상에 올릴 준비를 한다. 다시 아이들 설빔을 준비해야 한다. 어떤 것으로 사야 하나?


성격이 까다로운 아들놈이 또, 투정을 할지 모른다.

마음에 들지 않아 투정을 하면 다음 장날 다시 바꿔다 주어야 한다. 주섬 주섬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신다.

차례상에 올릴 물건을 다락에 넣고, 아들놈을 불러 옷을 입혀 본다. 이만하면 좋을 듯도 하지만, 까다로운 아들놈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다음 장에 또 가야 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다행히 괜찮은 모양이다. 

어렵게 장을 보는 일은 마쳤지만, 설날이 다가오면서 할 일이 남아 있다.


다시 아버지와 신경전을 벌여야 한다. 가래떡을 준비해야 하고, 설날에 세뱃꾼들에게 내놓을 술을 빚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아버지는 못 마땅해하신다. 그러면 어쩌란 말인가? 답답하다. 말이라도 시원하게 해 주면 좋으련만, 말없이 쌀을 축내는 것을 싫어하고 있으니 말이다.

할 수 없이 결단을 하신다. 쌀 두어 말 가래떡을 하고, 닷대 정도 술을 빚기로 했다. 

떡은 동네 방앗간에서 해주니 걱정이 없고, 술은 손수 빚어야 했다. 가끔 나타나는 술 조사가 있어 걱정은 되지만, 일일이 양조장 술을 사 온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가마솥에 술밥을 하고, 넓은 멍석에 널어 열을 식힌다. 가을에 조심스레 만들어 놓은 누룩을 준비한다. 뉴룩도 술 조사가 나오면 걱정이라 깊숙이 숨겨 놓아야 했다. 술밥의 열이 식으면, 술밥과 누룩을 적당이 섞어 물과 함께 단지에 붓는다. 여기에 솔가지를 꺾어 넣으면 술맛이 좋았다. 이렇게 만든 술단지를 아랫목에 놓고 이불로 둘러 주어야 적당이 발효되어 맛있는 술이 된다. 동네 사람들이 환장하는 우리 집표 술이다. 술이 준비되면 방앗간에 들러 가래떡을 해야 한다. 일 년 내 방앗간을 이용해 준 덕에, 주인이 무료로 가래떡을 해주는 것이다.


쌀을 준비해 온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 탕탕거리며 돌아가는 방아 소리가 요란하다. 방아 소리와 기름 냄새가 뒤 섞인 방앗간은 동네 사람들로 북적인다. 드디어 우리 집 차례가 되고 기다리던 가래떡을 맞이하게 된다. 하얀 색깔로 기다랗게 나오는 가래떡에 하얀 김이 서린다. 먹음직스러운 떡을 뚝 잘라 아들놈 입에 넣어 준다. 그렇게도 맛이 있던 가래떡이었다. 이렇게 떡이 만들어지면 대부분 설 준비는 끝이 나고, 설날이 왔다.


어둑한 부엌에서 갖가지 나물과 떡국을 끓이며 설날을 준비한다. 차례상이 물리면 고난의 길이 시작되는 것이다. 가족들이 먹는 것이야 그렇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이다. 세배도 해야겠지만 어머님의 술맛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문제가 더 있다. 술을 즐기시지 않는 아버지가 동네 사람들을 불러 술을 주는 인심이 너무 후하셨다. 지나는 사람을 불러들인다. 술을 마시고 가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당신이 준비하는 것도 아닌데, 지나는 사람을 그냥 두지 않는다. 야속하기도 하지만 어머니는 어떠셨을까?


말없이 동네 사람들을 해결했다. 수도 없이 술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해냈다. 세배꾼들이 거의 끝이 날 무렵, 오후가 되면 어머니 친정 조카들이 세배를 온다. 그러면 문제가 생긴다. 언제나 술자리가 길어지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친정에서 온 조카들이다. 섣불리 대접할 수도 없어 정성을 다하지만, 언제 끝이 날지 알 수가 없다. 술 주전자가 오고 가다 술이 취하면 하루를 자고 가야 한다. 참, 어려운 일이 발생하는 순간이지만, 어머니는 한 마디 불평이 없는 설날의 행사였다. 어둑한 부엌에서 시작해서 부엌에서 끝이 나는 설날이 서서히 저물어 간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 설날이 다가왔다. 말없이 설을 맞이하셨던 어머님은 계시지 않는다. 온갖 동네 사람들의 술 시중을 드는 일도 없고, 친정 조카가 찾아오는 일도 없다. 술이 취해 하룻밤을 묵어 가는 사람도 없다.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사람도 없어졌다.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졌고, 풍속도 달라졌다. 입고 먹는 것도 전보다 훨씬 넉넉해지고, 그런 걱정거리도 없다. 오가는 정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올해는 일이 더해졌다. 코로나 19로 오고 가는 일이 없어야 한단다. 방역을 위해 그렇게 해야 한단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어떨까? 코로나 19가 막아주는 이 설은 어떻게 생각이 될까? 혹시, 코로나 19가 잘 막아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을까? 설날을 맞이해 생각해 보는 오래 전 어머니 설날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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