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마냥 Feb 11. 2021

설날, 무엇이 그렇게 좋았을까?

(설날이 주는 추억, 페루의 쿠스코에서)

설날, 오래전에 맞이하는 설날은 참 좋았다. 

무엇이 그렇게도 좋았을까? 

대단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세뱃돈을 안겨주는 사람도 없던 시절이다. 

왜 그랬을까? 그냥 좋았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넉넉지 못하던 시절이다. 

지질히도 궁핍함에 찌들어 살던 시절, 떡 한 조각이 그립고 밥 한 그릇이 귀하게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우선, 설이 오면 입을 거리 하나 얻어 입을 수 있었다. 그리고 먹거리가 평소보다 넉넉해졌다. 

더 좋은 것은 반가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멀리 떠났던 사람이 돌아오고, 또 만나러 갔다.

그것이 그리도 좋았나 보다. 그렇게 오래 전의 설날은 참 좋았다. 


오일 대목장이 서는 날, 어머니는 돈이 될만한 것을 머리에 이고 새벽부터 나가셨다. 무거운 짐을 편안한 듯한 얼굴로 이고 나섰다. 신기한 묘술장이 같았으니 참, 철부지였다.

조상들을 위한 차례도 준비해야 하지만, 자식들 설빔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못하게 입히지는 말아야 했다. 나는 못 입어도 자식만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했다. 돈을 준비하기 위해 아껴두었던 농산물을 팔아야만 했다.

우선은 무거운 쌀자루가 대세였지만, 가끔은 고추도 좋고, 씨암탉이나 계란도 좋았다. 때로는 지난가을 부엌 구석에 묻어 놓았단 알밤도 돈을 마련하는 밑천 거리였다. 


애지중지 마련한 자갈논에 하늘의 도움으로 모를 심었다. 태풍과 여름 비를 피해 얻은 피 같은 땀이 얼룩진 쌀이다. 무겁지만 발걸음만은 한없이 가볍다. 

봄부터 시작하여 여름내 뙤약볕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농사지은 고추도 한몫을 한다. 고추모를 기르고 밭에 이식을 했다. 가끔은 소독을 해야 하고,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도록 지지대를 세웠다. 그리고 가을을 기다려 붉은 고추를 거두었다. 내리쬐는 태양의 힘을 빌려 빛 좋은 고추를 얻었다. 먹을 고추는 희나리가 섞인 것을 남겨 놓고, 최고로 좋은 고추만 골라 포대에 담았다. 가을에 김장을 하고 남은 것을 소중히 간직했던 고추이다. 

더러는 봄부터 기른 닭을 팔아야만 했고, 씨암탉이 낳은 계란도 한몫을 했다. 이렇게 얻어진 피 같은 돈으로 차례상에 올릴 물건을 사고 자식들 설빔을 준비했다. 


어머니는 늘 이웃들과는 다른 생각이셨다. 대부분이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니던 시절, 어머니는 왠지 검정 고무신은 사주지 않으셨다. 언제나 검은색 대신 주황색을 고집하셨다. 너나없이 검은 고무신으로 무장을 하던 시절, 나는 주황색 고무신으로 티를 냈었다. 운동화를 사 줄 형편은 되지 못했으니 그거라도 남다르게 해주시려 했는지 모를 일이다. 주황색에 하얀색 테두리를 한 고무신과 빠질 수 없는 것은 큼직한 바지나 점퍼였다. 

넉넉함이 넘치는 바지나 점퍼는 커지는 몸을 대비해 산 것이다. 떨어질 때까지 입을 수 있도록 커야만 했다. 

이렇게라도 얻어 입은 옷은 소가 덕석을 입듯이 헐렁하지만, 철부지는 좋기만 하다. 그래서 설이 좋았나 보다. 


말씀이 없으셨던 아버지는 오랜만에 꼬깃꼬깃 숨겨 두었던 돈을 쓰셨다. 

명절이면 동네에서 돼지 도리기를 했다. 명절을 맞아 가족에게 고기라도 먹여 보자는 가장들의 선심이다. 마을에서 잡은 돼지고기를 두어 근 끊어 새끼줄에 묶어 들고 오신다. 일 년에 두 번 명절에나 만날 수 있는 고기 맛이다. 아버지가 고기를 끊어 오시고, 어머니는 가래떡을 하셨다. 쌀이 부족했던 시절이지만 어머니는 되도록 많은 떡을 하시려 했다. 오랜만에 아이들 배를 불려줄 생각이지만, 아버지는 늘 다른 생각이셨다. 쌀을 아껴야 남은 겨우살이와 여름을 날 수 있기 때분이다. 


설날을 맞이하여 새 옷을 얻어 입을 수 있고, 먹거리가 평소보다 풍부해졌다. 마음마저 풍요로운 설날이 된 것이다. 차례가 끝나면 동네를 돌며 세배를 한다. 세뱃돈을 줄리는 없지만, 언제나 맛있는 먹거리를 주기 때문이다. 온 동네를 돌며 어른들께 세배를 하고, 친구를 만나는 신나는 한 나절이다. 

외지로 나갔던 이웃들이 돌아왔다. 외지에서의 신나는 경험을 들을 수 있다. 멋지게 옷을 입고 등장한 이웃들이 신기하기만 하다. 외지에 나가기만 하면 돈을 벌 수 있고, 멋진 모습으로 고향에 올 수 있는 모양이다.

신나는 설 명절을 즐기는 사이, 먼 친척들이 오고 가는 즐거움이 있다. 이웃 동네 친척이 세배를 하러 오고 간다. 가끔은 용돈도 얻을 수 있어 운이 좋은 설날이 된다. 

술에 얼큰한 이웃들이 떠드는 소리로 동네가 시끄럽다. 동네는 오랜만에 떠들썩해지고 사람이 사는 곳이 된다. 설을 맞이하는 분위기에 젖어 다시 온 설날은 마음이 설레었다.


오래 전의 설은 그래서 참, 좋았다. 입을 것과 먹을 것을 걱정 없이 챙겨주시는 어머니가 계셨다. 세월이 흘러갔다. 이제는 챙겨 주실 부모님은 계시지 않고, 이제 챙겨주어야 하는 부모가 되었다. 

모든 것을 걱정해야 하는 부모가 되었다. 하지만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고 말았다. 입을 것과 먹을 것의 걱정이 없어졌다. 이웃을 오고 가는 정이 없어졌다. 가족 간에도 애틋한 정이 식었다. 세월이 그렇게 만들었다.

올해는 더 많이 달라졌다. 그렇지 않아도 변한 세월에 코로나까지 겹쳤다. 오고 가지 말라는 설이 되었다. 

서로를 위해 오고 가지 말라는 것이다. 예전의 설은 돌아왔지만, 모두가 서먹서먹한 설이 되었다. 

세상이 그렇게 변했고, 세월은 우리를 바꾸어 놓고 말았다. 어떻게 생각할까? 코로나가 막아 놓은 설날을.

참, 세상은 그렇게 변하고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하는 설이 되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복을 많이 받는 행복한 설이 되었으면 좋겠다. 공평하게 다 같은 복을!!



















매거진의 이전글 그것은 할아버지 담배냄새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