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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Feb 07. 2021

그것은 할아버지 담배냄새였다.

(할아버지와 사는 아이, 티베트에서 만난 풍경)

작은 오두막집엔 높다란 마루가 있었다. 흙으로 된 뜰팡을 올라서면 어른 허벅지 정도의 높이에 있는 마루, 어린아이는 오르기도 쉽지 않았다. 신을 벗고 앞으로 배를 대고 기어올라야 마루에 오를 수 있다. 힘겹게 마루에 올라 문을 열어야 방에 들어갈 수 있다. 고개를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문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안방엔 늘 이불이 펼쳐져 있었다. 어둑한 방에는 창호지를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가엽게 비추고 있다. 저녁이면 누추한 등잔불이 진한 어둠과 겨루고 있다. 여기가 친구의 집이었다.


친구는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친구를 따라 자주 놀러 가는 곳이지만 왜 할머니와 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엄마도 아빠도 어떠했는지는 묻지 않는다. 묻지도 않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아야 되는 줄 알았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밥을 끓여주고, 손자가 학교에 가는 준비를 해주어야 했다. 친구 집에 가면 먼저 만나는 것은 컴컴한 방이었다. 방 곳곳엔 지저분한 옷이 널려 있고, 누렇게 색이 변한 벽지가 눈에 보인다. 벽지가 찢어진 곳엔 누런 신문지로 벽지를 대신해 놓았다. 방에는 퀴퀴한 냄새가 배어 있다. 그렇게 자주 만났던 친구는 초등학교 저학년만 다니고 대처로 나갔다. 그 후 가끔 소식을 듣긴 했지만 어떻게 사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한참이 흘러 학교에서 근무를 했다. 신학기에 만난 아이에게서 담배냄새가 났다. 그것도 아주 진한 담배 냄새였다. 하지만 친구들은 어떤 내색도 하지 않는다. 고등학생이니 몰래 담배를 피우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몇 날을 망설이다 아이에게 물었다. 담배 피우냐고.. 아이는 머리를 설레설레 젖는다. 담배를 절대로 피우지 않았다며 눈 속에 진실이 담겨 있었다.


며칠이 지나 아이를 다시 만났다. 아이와 옆을 지나치면서 만난 것이다. 또, 담배 냄새가 지독하게 났다. 아이에게 담배를 피웠냐고 묻지 않았다. 전 날, 아이가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는 말이 너무나 처절해서였다.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나고서야 알았다. 학생이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아이라는 것을.


오래전에 떠난 친구 생각이 났다. 작은 방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던 친구 생각이다. 친구에겐 먹고사는 것이 문제였다. 냄새 따위는 남들이 신경 쓰는 사치에 불과했다. 먹고사는 것이 문제인데, 무슨 냄새인들 어떠랴. 그것은 신경 쓸 여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할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고, 근근이 학교에 오가는 것이 그의 전부였다. 공부가 어떻고, 옷이 어떠하며 냄새가 어떠하다는 것은 어린아이에겐 관심 밖의 일이었다. 어렴풋이 기억이 되살아 났다. 친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준 기억 말이다.


그렇다.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도 방법이라 생각했다. 어머니는 어떻게 되었고, 아버지는 어떻게 되었느냐는 것은 묻지 않았다. 밥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말도 묻지 않았다.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치스러운 충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으로 나의 할 일은 멈추어 있었다. 이젠, 담배냄새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건 할아버지의 담배냄새였기 때문이다. 삶이 고단한 할아버지는 담배를 피우셨고, 아이는 옷을 벗어 걸어 놓았다. 담배냄새는 온 집안을 삼켜버리고 말았다. 그에겐 담배냄새를 따질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오직 모르는 척하는 수밖에 없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중, 소풍날이 돌아왔다. 가끔 체육대회 날이 돌아왔다. 내가 할 일은 이것밖에 없는 듯했다. 김밥 한 줄에 500원 하던 시절, 한 보따리의 김밥을 샀다. 서글서글한 아이 친구를 불러 김밥 한 보따리를 건넸다. 다 같이 나누어 먹으라고.. 물론, 그  아이가 김밥을 같이 먹었으면 하는 희망에서였다. 누구를 의식하지 않고도 김밥을 배불리 먹었으면 했다. 그 후, 몇 번의 김밥으로 알량한 마음을 다독거려 보기만 했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할아버지와의 동거는 어떻게 끝이 났는지 궁금했다. 더 챙겨주어야 했을 걸, 무심했던 철부지 시절의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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