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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Jan 21. 2021

남포 등 불빛, 어둠을 밝혔다.

(불빛의 추억을 따라, 라오스에서 만난 풍경)

옹기종기 초가지붕이 이마를 맞대고 있다. 북적거리는 한낮이 가고 밤이 찾아왔다. 툇마루 안쪽으로 창호지를 바른 작은 문을 뚫고 희미한 불빛이 나온다. 간신히 어둠을 뚫고 나오는 불빛이다. 소나무 등걸을 잘라 만든 등잔걸이에 앉은 등잔에서 나오는 불빛이다. 작은 초롱불은 가는 숨소리에도 숨을 할딱거린다. 엊그제 장날 받아온 기름을 넣고 등잔 심지를 북돋웠지만 어둠을 삼키기엔 힘에 겹다.


가느다란 등잔불이 애잔하면 귀한 초에 불을 댕긴다. 수시로 흘러내리는 촛물이 안타까워 특별한 날이나 누리는 호사이다. 등잔 밑에 둘러앉아 아이는 공부를, 어머니는 바느질을 한다. 작은 바람에도 일렁이는 등잔불을 기둥 삼아 온 식구가 모여 산다. 이렇게 작은 불에 기대어 긴긴밤을 보냈다. 긴긴 저녁을 넘기기엔 그것 만큼 적당한 일거리도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날  Lamp가 변해서 남포가 된 남포 불이 나타났다. 심훈의 상록수에서 채영신이 학예발표회 날 어둠을 밝혔던 남포 불이다. 세월이 흘러 대학시절, 남포 불을 다시 만났다. 귀한 걸음으로 다시 만났다.


70년대, 시골에선 궁핍한 삶에 초등학교로 배움을 멈추어야 했다. 초등학교를 빌려 배움을 열어주고자 했던 배움터에서 아이들을 만났다. 4년간 그들과 살아가던 중, 2년 동안 등잔을 만났고, 촛불과 남포 불을 만났다. 늦은 저녁,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교실엔 등잔불과 남포 불 그리고 촛불이 나란히 등장했었다. 아이들 아닌 반 어른들 책상엔 등잔불이나 촛불이, 칠판 허공엔 남포 불이 등장한 것이다. 형편이 괜찮은 아이는 촛불로 부를 시위 했고, 등잔불은 기가 죽어야 했다. 초등학교를 마친 지 오래되었기에 반 어른이 되어 등잔불과 함께 다시 책상에 앉은 것이다. 등잔불과 촛불 그리고 남포 불이 시골학교를 밝게 비추었다.


배움이 끝나면 집이 먼 아이들은 남포 불이 앞을 밝힌다. 험한 고개는 같이 길을 걸어줘야만 했다. 가르치는 일보다 먼 길 오가는 일이 더 힘에 겨웠다. 남포 불이 가려지면 헛발을 디딜 수도 있다. 험한 산길을 조심스레 다녀오면 밤이 이슥해진다. 허기진 배로 가르치고, 먼 집까지 데려다주어야 할 일이 끝나는 것이다. 어서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늦은 저녁과 밤은 동네 이장집 사랑채에서 해결한다.  


야간학교를 끝내고 잠을 청하던 시골 이장님 사랑방엔 손님이 왔다며 촛불이 켜져 있다. 높다란 뜰팡을 올라 다시 툇마루에 앉아 신을 벗어야 사랑방에 들어설 수 있다. 깔끔한 사랑방 구석엔 검은 책상이 놓여있다. 공부를 위한 책상이 아니라 용도는 따로 있다. 책상 위엔 광목으로 하얗게 단장한 이불과 요가 놓여있다. 커다란 베개도 이불 위에 놓여있다. 동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라며 촛불과 하얀 광목이불로 호사를 누리는 것이다. 소죽 솥에 데워 놓은 따스한 물로 세수를 하고, 어엿한 저녁상을 받는다. 반은 보리에 드문드문 쌀이 보인다. 거무스름한 된장찌개가 맛을 돋운다. 허기진 배를 채우자 노곤함이 밀려온다. 잠시 숨을 고르며 나른함에 젖어든다.


잠시 밖에서 사람 소리가 난다. 밖은 어두워 알 수가 없다. 창호지로 바른 문에 작은 유리가 발라져 있다. 컴컴한 밤에는 유리도 역할을 하지 못했다. 반 어른이 된 학생들이 왔다 갔는가 보다. 문을 살짝 열어보지만 아이들은 온데간데없다. 대신 툇마루엔 무엇인가 놓여있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찐 고구마가 환하게 웃고 있다. 가끔은 찐 밤이 툇마루에 뒹글고 있다. 잊지 못할 반 어른들의 수줍음이 만들어 낸 밤나들이였다. 언젠가 그 엄마들이 전국에서 모이기도 했었다. 참, 오랜만에 어둠을 밝혀주던 남포 불이 생각나게 하는 엄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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