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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Jan 09. 2021

꽃피는 산골, 깊은 멍이 들었다.

(고향 생각, 부탄의 수도 딤프 :본인 촬영)

가끔 찾아가는 고향 집이 있었던 곳, 그리움이 있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셨던 곳이었다. 친구들이 어른거리고 밤길을 더듬으며 친구 집을 오가던 밤길이 그리운 곳이다. 지금은 검은 아스팔트가 넙쭉 엎드려 길을 안내하고, 위쪽으로는 둥그런 유리 속에서 빛이 나와 길을 밝혀주고 있다. 고향 집 앞쪽으로는 생전 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들어와 대궐 같은 집을 지었다. 남의 시선에 상관없이 전원주택이 아닌 수풀 속에 집을 지어 놓고 외자차를 타고 드나든다. 가끔은 강아지를 끌고 운동을 한다고 어슬렁 거린다. 그리운 고향땅을 더럽혀 놓은 듯해 불편한데, 친구와 드나들던 초가집이 생각난다. 헛간은 다 쓰러져 가고 있었고 고장 난 쟁기가 누워있던 시골집이었다.  


자그마한 삽짝 문이 있고, 안 쪽으로는 커다란 마당이 펼쳐진다. 왼쪽으로 야트막한 뜰팡에 올라서면 안방 문이 있고,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절절 끓는 아랫목엔 항상 밥그릇을 덮은 이불이 깔려 있었다. 윗목 쪽으로 있는 자그마한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어둠 컴컴한 윗방에 고구마 통가리가 삐딱하니 서 있다. 통가리 안에는 반쯤 남은 고구마가 있지만 썩어 가는 고구마도 있고, 자그마한 싹이 난 고구마도 있었다. 고구마  통가리 옆엔 누런 노끈으로 매어 놓은 횃대가 있었고, 횃대 위에는 때가 묻은 옷들이 겹쳐서 널려있다. 구석에는 콩나물시루가 허름한 헝겊에 덮여 목 타게 물을 기다리고 있다. 어둠 컴컴하고 퀴퀴한 냄새가 나지만 자주 찾아오는 친구의 집이다.


마당을 가로질러 가면 자그마한 샘이 있고 옆에는 작은 앵두나무가 있었다. 철이 되면 앙증맞은 빨간 앵두가 올망졸망하게 달려 마치 빨간 꽃을 연상케 했다. 앵두나무 밑에 있는 작은 샘에서는 사시사철 물이 졸졸 흐르고, 흐르는 물 옆에는 펀펀한 빨래돌이 놓여 있다. 앵두나무 위쪽으로는 거대한 밤나무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밤나무는 두 그루가 있는데, 한 그루는 밑동이 엄청 굵지만, 다른 한 그루는 가느다란 덩치에 많은 밤을 달고 있었다. 가끔, 바람이 불면 빨갛게 영근 밤이 맨 땅에 나뒹굴며 소리를 냈었다.


자식들은 대처에 나가 밥벌이를 하고, 두 노인이 손자를 데리고 농사를 짓던 이웃이다. 억척스러운 할머니는 잠시도 앉아 쉴틈이 없지만,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는 자주 막걸리에 몸을 맡기고 하루하루를 즐거워하셨다. 때가 묻은 흰 수건을 머리에 질끈 매신 할머니는 남자들이 해야 하는 일도 척척 해내시었다. 몸집도 크지만 얼마나 부지런하신지 비스듬한 산비탈 밭을 순식간에 일구고 씨를 뿌리신다. 할아버지는 여유가 있으셨다. 비탈진 밭고랑에 앉아 세월을 탓하지 않고 담배 연기를 뿜어내기도, 얼큰한 막걸리에 몸을 맡기기도 하신다.


도둑맞을 것도 없던 그 시절, 엄청난 것을 숨겨 놓은 듯이 높은 울타리를 만들었다. 주인 몰래 나무를 베어 높게 만든 울타리로 나의 영역을 표시하곤 했지만, 노력에 비해 효율은 엄청 낮은 노동이었으리라. 한 해가 지나 울타리가 허물어지면 모래성을 쌓듯이 또 울타리를 보수해야 했다. 나무를 베어 오고, 울타리를 따라 나무를 세워야 했다. 울타리가 쓰러지지 않도록 중간에 나무를 대고 새끼로 묶어 주어야 했다. 고단한 작업은 하고 또 해야 했는데, 무엇을 감추려 그리 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인정이 많으셨다. 마당 입구에 있는 감나무에서 감을 따서 주시기도 하면서 손자와 즐겨 노는 것을 언제나 좋아하셨다. 가끔 가을걷이를 마치고 시루떡을 하시면, 두텁고도 견고한 울타리를 뚫고 떡 접시를 건네주시곤 하셨다. 얼마나 주고받았는지 울타리는 커다란 개구멍이 나서 사람도 드나들 수 있었으니 울타리가 무슨 소용이던가? 어린 손자는 가끔 찾는 아버지가 사주신 축구공이 항상 자랑거리였다. 축구공을 발로 차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가슴에 안고 다니며 자랑을 했다. 축구공은 안고 다니는 건가? 오래전에 남긴 기억에서 깨어났다.


느닷없이 개 짖는 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고향 동네가 시끄럽다. 이웃에서 개를 사육하면서 동네를 발칵 뒤집어 놓는 개 짖는 소리다. 부모 때부터 잘 아는 사람들이라 무어라 할 수도 없는 사이다. 하지만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어오를 수밖에 없다. 고요하던 시골 동네 숲 속에 집을 지어 놓고 외제차로 거들먹거린다. 무더운 여름날, 먹고살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는 시간에 개를 끌고 운동을 한단다. 고단한 몸을 뉘어 쉬어야 하는 시간에 한 무리의 개가 소리를 질러댄다. 그리운 고향이 변해 가고 있는 현실이 안쓰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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