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의 황홀함, 볼리비아에서 만난 풍경)
마을 전체가 계곡을 따라 아래쪽으로 향하며, 울타리에 둘러싸인 것처럼 아늑해 보인다고 해서 '전하울'이라 하는 동네에는 하늘 극장인 '전하울 극장'이 있다. 전하울 극장은 컴컴한 어둠이 서서히 사라지고, 어스름한 빛이 찾아오면 감각으로 빛을 알아차린 수탉이 긴 곡으로 극장의 개막을 알려준다. 수탉의 긴 서곡이 울리고 나면 덩달아 이웃집 닭이 품앗이하듯 울어주고, 드디어 닭들의 합창이 시작되면서 전하울 극장의 막이 올라간다.
주인이 장만해 준 멀쩡한 집을 두고 찬 바람에 웅크리고 잠자던 강아지도 컬컬한 목소리 다듬어 짖어주면, 온 동네 강아지와 개들의 합창이 시작되면서 산골짜기의 되울림으로 엇박자 되어 닭들의 합창에 그런대로 어우러진다. 어스름 빛이 찾아오고 산골에 합창소리가 골짜기에 길게 울려 퍼지면, 숲 속에서 선잠에 눈 비비던 산새들이 등장하며 전하울 극장은 서서히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둠 속에 갈갈대던 도랑이 모습을 드러내고, 도랑 언저리에 수줍은 듯 핀 노란 애기똥풀이 배시시 웃는 얼굴로 나타나며, 골짜기 타고 내려오는 맑은 산골 물에 몸집을 불리던 미나리가 머리를 들고 이슬을 턴다.
산골 합창대가 지칠 무렵에 앞산 산등성이에서 서서히 조명이 나타나는데, 산등성이 너머 나무 사이로 나타나는 조명 빛은 극장을 신비함으로 몰아넣는다. 안갯속에 묻혀있던 낙엽송이 서서히 나타나고, 널따란 오리나무 잎이 이슬에 반짝이며 등장한다. 어느새 피었는지 푸르른 소나무는 송홧가루 얹은 꽃을 삐쭉 밀어낸다. 밝은 햇살이 낙엽송 사이로 밝게 비추면 어느새 뒷산이 등장하고, 햇살 타고 날아가는 산새는 느린 동작으로 유영을 한다. 한 마리 새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면, 어디선가 떼새가 나타나 하늘 속 햇살 위에 수많은 점이 되어 날아간다. 이쯤 되면 산골 합창단은 서서히 퇴장을 하고, 이른 아침잠 설친 산 뻐꾸기가 허공을 가르며 대신 울어준다.
수많은 점들이 산등성이를 넘을 무렵이면 서서히 사람들이 등장하게 되는데, 산등성이엔 봄나물을 뜯는 사람이 그리고 배추밭 가엔 부지런한 농부가 서성인다. 봄비에 싹을 틔운 산나물은 아침, 저녁으로 이슬에 젖어 연초록이 물들어 진초록이 되었다. 하지만 부지런한 산꾼의 조용한 발걸음에 나무 밑에 숨어 살던 산나물은 그예 들키고 말았다. 높은 언덕 위에 싹을 틔운 두릅은 가느다란 바람에 하늘대며 봄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그 아래 고사리도 작은 싹을 내밀었다. 찬바람에 움츠렸던 취나물도 고개를 들었고, 어느새 홑잎 나물은 푸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농부는 자연과 어우러지며 대자연과 한 몸이 되는 참 아름다운 예술 쟁이이다. 허허벌판 밭뙈기를 갈아엎고, 시골의 향수를 불러오는 냄새를 풍기더니 어느새 밭고랑을 예쁘게 그려 놓았다. 농부 발길 아침마다 잦아지고, 어느 날 밭고랑에 점 푸름을 군데군데 심어 놓았었다. 아침저녁으로 농부의 숨결을 듣고, 내리는 이슬과 봄비에 젖어 어느새 몸을 불리던 배추는 푸름으로 밭고랑을 가득 덮었다. 농부가 간간이 풀을 뽑고 돌보던 배추밭은 이내, 검푸름으로 색칠해 놓았으니 농부는 세상에서 성스런 참 예술인이다.
하늘에서 내린 조명이 더 밝아지면 키다리 낙엽송은 이슬을 털어내고, 햇살에 반짝이던 오리나무도 이슬을 닦아냈다. 햇살이 산등성이를 넘어 뒷산으로 넘어올 때쯤, 푸르른 참나무가 바람에 춤을 추고 덩달아 하얀 찔레꽃이 아침을 노래한다. 하얀 찔레꽃 덤불에 햇살 가득해지면 동네 벌이 모두 찾아와 잔치를 하고, 하얀 나비도 아름다운 찔레꽃에 정신을 잃었다.
점심 나절 조명이 머리 위로 오면, 긴 그림자 서서히 줄어들며 전하울이 모두 졸음으로 꾸벅거릴 때, 어디서 날아왔는지 꿩 한 쌍이 고요함을 흔들어 놓는다. 한 쌍의 꿩이 긴 울음으로 정적을 흔들어 놓고, 숲 속으로 날아들자 극장이 다시 술렁인다. 조용하던 암탉이 알을 낳고 유세하듯 울어대고, 이웃집 닭이 덩달아 울어대면 새벽녘 합창은 또다시 시작된다. 오후의 나른함에 게으름 떨던 이웃 개가 엇박자 울음으로 대답하자 동네는 온통 소리에 소리로 가득해진다.
가끔 울던 꾀꼬리가 하늘을 날며 소프라노 목청 돋우고, 먼 산 뻐꾸기 덩달아 울어주면 합창단의 어울림은 극장을 흔들어 놓는다. 밭두렁에 서성대던 농부 예술가는 짙어가는 배추에 정신을 놓았고, 예술가의 붓질에 푸름을 뒤집어쓴 배추는 무럭무럭 몸집을 불린다. 옹기종기 모여사는 집들이 하루를 마감하려 연기를 피우고, 산새들 잘 집을 찾아 숲으로 찾아들면, 안갯속 전하울 극장은 서서히 어둠으로 몸을 숨긴다. 한집, 두 집 서서히 조명이 밝혀지고, 고된 하루를 견딘 몸 뉘려 발길 서둘 때, 산 뻐꾸기 긴 울음소리는 뒷산으로 빨려 든다.
하늘 조명이 서서히 뒷산으로 몸을 숨길 무렵, 낭랑한 합창은 논에서 시작된다. 후루룩 날갯짓으로 하늘을 날던 산까치가 숲 속으로 숨어들고, 논두렁에 농부 예술가가 발길 서둘 무렵에 물가의 개구리가 목청을 돋운다. 새벽을 여는 합창보다 음정이 잘 어우러짐은 합창대가 거대하고, 합창단원이 모두 한 식구라 그러하리라. 농부 예술가의 뛰어난 지휘 덕에 합창단의 쉼과 이어짐은 부드럽게 연결된다.
아침의 합창단보다 잘 어우러지는 구성진 목소리는 극장을 추억 속에 몰아넣는데, 농부 예술가의 발길 따라 쉼과 이어짐이 부드럽게 이어진다. 농부 예술가의 발길이 이어지면 동시에 숨이 멎고, 예술가의 발길이 멎으면 동시에 시작됨은 저녁 합창단의 특기이다.
목청껏 울어대던 야밤의 합창단이 지쳐갈 무렵, 얇은 손톱 달이 전하울 극장에 나타난다. 어스름 달빛이 전하울을 비출 때쯤, 닭들은 어느새 어둠 속으로 몸을 감추었고, 지치지도 않았는지 그 엇박자 소리는 달을 향해 전해진다. 이때쯤 전하울은 조용한 어둠 속으로 숨어들고, 목청 높여 울던 개구리마저 서서히 퇴장을 하면 전하울 극장은 서서히 막을 내려 하루를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