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마실. 장엄한 안데스)
엊그제 일이다. 일찌감치 저녁을 해 먹고 10년 가까이 아내와 같이 다니는 화실을 가야 했다. 그러면 오후 다섯 시가 다 되었으니 아내는 밥을 하느라 부엌에 있어야 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아내는 오간 데가 없어 이방 저 방을 찾아도 없다. 할 수 없이 마당에 나가 보고, 뒤에 있는 창고엘 가봐도 보이지 않는다. 잠깐 볼 일이 있어 어딜 갔는가 보다 하면서 쌀을 씻어 전기밥솥에 넣고 스위치를 눌렀다. 조금 있으면 아내가 오겠지 하면서 내 일을 했지만 아내는 소식이 없다. 할 수 없이 이웃집을 찾아갔자 윗집 아주머니와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아직도 신이 나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슬쩍 불러서 화실에 갈 시간이라 하자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면서 집으로 오는 것이 아닌가?
시골살이를 하면서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이 아내가 시골생활에 적응하는 일이었다. 나는 본래 시골에서 살았기에 웬만한 일은 견디어 낼 수가 있지만, 아내는 도시생활에 익숙했던 사람이라 걱정이 많았었다. 이런 걱정을 갖고 시작한 시골살이는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아내가 너무나 잘 적응해 주고 있는 것이다. 속으로야 힘이 들고 고민도 있겠지만, 아직은 잘 적응하고 있어 다행이면서도 고맙기도 하다. 그중에 제일 좋은 것은 이웃들과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시골에서 생활을 해보지 않았기에 채소 한 포기 심는 방법도, 과일 하나 따는 법도 모르던 아내였다. 하지만 이런 것을 척척 적응해 나가는 것을 보고 한 시름을 놓게 되어 좋다. 채소 심는 방법을 이웃에게 알아보기도 하고, 이 시기에 심는 채소의 종류도 이웃들에게 척척 알아 온다.
오늘도, 이층에 앉아 이것저것을 하고 있는데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떠들썩하다. 아내는 멀리서 바라보더니 문을 열고 아주머니들의 대열에 합류한 모양이다. 나는 그러려니 생각을 하면서 이것저것을 정리한 지가 두어 시간은 족히 지났을 것인데, 아내는 아직도 소식이 없다. 그러려니 하면서 내 일을 계속하면서 저녁 7시가 다 되었다. 창밖을 내다봐도 사람은 없는데, 이야기 소리가 두런두런 들린다. 아무리 찾아봐도 사람은 없다. 할 수 없이 문을 열고 나가 보니 동네 아주머니들과 길가에 앉아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람 소리가 나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아 나왔다고 하자 아주머니들이 무엇인가 하면서 웃고 만다. 어디서 얻어 왔는지 모르지만 요즈음 한창인 고구마 줄기를 손질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아내는 자주 마실을 간다. 언제는 옆집 아주머니가 잡아온 다슬기를 까러 오란다고 나간다. 이웃집에 사시는 활달한 아주머니가 손수 냇가에서 잡아 온 것이란다. 싱싱한 다슬기를 삶아 그 작은 살을 발라내느라 한참의 시간 동안 수고를 했단다. 나야 싱싱한 다슬기를 넣고, 문을 닫고 먹는다는 아욱을 넣어 끓인 국을 시원하게 먹을 수 있어 그보다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 후, 친구들이 찾아와 삼겹살을 구워 먹고 아욱을 넣은 다슬기 국을 끓여 내놓았다. 모두가 감탄을 하게 해 준 아욱을 넣은 청정 다슬기 국이 되기도 한 다슬기다. 더러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전화로 소환을 한다. 그러면 뭔 일인가 재미있는 일이 있는 것이다.
여름철 대단한 간식거리 노릇을 하는 옥수수는 단골 메뉴이다. 이웃집에서 불러 가보면 한 자루의 옥수수를 따다 놓고 있단다. 이웃집에서 재배한 옥수수인데, 같이 옥수수 껍질을 벗겨 삶아 먹는 이웃들의 모임이다. 언젠가는 아내를 부르러 온 아주머니에게 아내가 외출을 했다 하자 그냥 가시고 말았다. 그런데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문을 열고 나가자 이웃집 아주머니가 찐 옥수수를 들고 오신 것이 아닌가? 아내가 없어서 손수 가지고 오셨단다. 맛있는 옥수수를 먹으며 오래전에 있었던 이웃들의 정을 느껴보는 시간이다. 이런 이웃들과 같이 있어 그들과 잘 어울리며 시골생활을 즐거워한다.
울타리를 맞대고 살던 시절의 이야기다. 서로가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 정월과 가을걷이를 끝난 가을엔 집집마다 시루떡을 하여 고사를 들이곤 했다. 넉넉지 못한 살림을 쪼개 떡을 하면, 울타리 너머로 주고받던 그 시절을 항상 그리워하며 살았는데, 이제야 시작하는 시골살이에서 그 정을 조금이나마 느껴본다. 아내가 울 너머로 이웃들과 어울리면서 마실을 오가며 즐거워한다. 시골에서 사는 것을 그렇게도 걱정했던 것들이 사르르 사라지는 시골살이이다. 특히, 아내가 적응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를 가장 걱정했던 것인데, 이웃들과 어울려 마실을 다니고, 먹을 것을 나누는 모습에서 그간의 걱정이 괜한 것이었다는 생각이다.
아내가 오늘 마실을 갔다 돌아오는 양손이 그득하다. 오늘은 파란 줄기가 쫄깃한 식감을 주어 손녀가 그렇게 좋아하는 고구마 줄기를 얻어왔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얻어 온 것을 동네 아주머니들과 모여 손질을 해서 가지고 온 것이다. 덤으로 가을철의 별미인 호박잎을 또 얻어 왔다. 시골에서야 지천인 호박잎이지만 주지 않고 모른 척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나는 이웃이 건네준 빨간 알밤도 한주먹 얻어 가지고 왔다. 한 줌의 고구마 줄기가 그렇고, 몇 개의 호박잎이 그렇고 몇 톨의 알밤이 값으로 따지면 얼마나 될까 하지만, 이웃들과 나누는 정을 값어치로 정할 수 있겠는가? 억만금을 주고도 얻을 수 없는 이웃을 얻었고, 낯선 동네에서 살갑게 살아갈 수 있는 정을 얻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래서, 아내가 또 마실을 가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