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날

(바람 부는 날에 바람마냥, 마추픽추에서)

by 바람마냥

태풍 마이삭과 함께 엄청난 바람이 한반도를 덮쳤다. 그런데 또, 하이선이 오고 있다. 비와 함께 엄청난 피해를 가지고 온 바람은 우리에게 많은 고마움을 주고 있지만, 서러움도 함께 주기도 한다. 우리의 삶과 떼어 놓을 수 없는 이 바람은 많은 생각을 갖게 하는 우리의 일상과 매우 밀접한 단어이다.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과 같은 아름다운 동요를 떠올리게도 하고, 태풍과 동반하여 엄청난 피해를 주는 바람이 있는가 하면, 흔히 '바람을 피운다'라는 뜻으로도 '바람'이 있기도 한다. 그런데 왜 나는, 그런 의미가 있는 '바람'이라는 단어를 즐겨 쓰면서 삶을 살아왔을까? 그 이유는 특별함이 없이, 그냥 좋아서였다.


바람, 어려서는 그 바람이 시원해서 좋았다. 책 보따리를 어깨에 메고 산을 넘어 뛰어 내려오면서 만나는 바람은 무엇보다 시원해서 좋았다. 이마에 흐른 땀을 식혀주어 좋기도 하지만, 가파른 언덕에 앉아 바람을 맞으려 쉴 수도 있는 '쉼'을 주기 때문이기도 했다. 부모님을 도와 따가운 햇살 아래 붉은 고추를 따는 일이 종종 있었지만, 어린 철부지는 그것이 그렇게도 하기 싫었다. 하지만 잠깐의 쉼 사이에 불어오는 바람은 그렇게 시원해서 좋았다. 바람 부는 방향으로 서서 한동안 바람을 마시곤 했다. 널따란 밭을 흔들며 다가오는 바람의 모습이 좋았고, 흐르는 땀을 식혀주는 그 맛이 너무나 맛이 있었으며 슬그머니 땀이 말라 가는 촉감은 잊을 수가 없이 좋았다.

DSC_0190.JPG 남아공, 케이프타운 테이블 마운틴에서

맑은 하늘에 부는 바람도 좋았다. 파란 가을 하늘 밑에 진빨강 코스모스가 일렁이고 그 위에 빨강 고추잠자리가 맴을 돈다. 한참을 돌아도 맨 그 자리에서 돌고도는 고추잠자리는 어지럽지도 않나를 걱정하면서 그 바람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고추잠자리가 바람의 고집을 이기지 못하는 듯하면서도 이겨내는 모습이 신기했고, 한 자리에서 바람을 따라 돌고도는 모습이 시선을 잡아 놓았다. 비 오는 날, 앞 산머리에 흩날리는 빗줄기가 바람을 못 이겨 사선으로 내리는 풍경은 두고두고 잊지 못하는 머릿속의 그림이다. 더러는 비바람을 타고 빗방울이 얼굴에 부딪치는 촉감이 신선했고, 바람 따라 실타래가 되는 빗줄기가 아름다웠다.

DSC_0341.JPG 그곳엔 희망봉이 있었다.

가을날에 맞이하는 바람은 사람을 고민 속으로 빠저 들게 해서 좋기도 했다. 해질 무렵 불어오는 바람 따라 떨어지는 낙엽은 가는 걸음을 멈추게 해서 좋았다. 낙엽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를 생각하고, 더불어 나는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가를 고민해보게 하는 바람이기도 해서였다.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을 밟으며 거니는 길, 우연이 만난 친구와 소주 한잔을 걸치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짬을 내주어 좋았다. 쓸쓸히 나뒹구는 낙엽을 보면서 옷깃을 여미게하는 바람이 좋았고, 낙엽을 쓰는 순간에 살짝 부는 바람은 낙엽의 속살까지 보여 주어 좋았다.


맛있는 바람도 있었다. 언젠가 네팔의 포카라 부근 사랑콧 전망대에서 만난 바람의 맛이다. 히말라야의 거대한 봉우리를 보기 위해 새벽 찬 공기를 무릅쓰고 올랐던 전망대, 거대한 히말라야 산봉우리가 떠오르는 햇살에 따라 나타났다가 없어지기도 하고, 없어졌다 나타나는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숨 막히던 순간이었다. 그때 거대한 봉우리를 거느린 히말라야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코끝에 얹어주는 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상쾌하면서도 시원하고, 깔끔하면서도 달콤한 맛은 무엇이라 표현할 단어가 적당치 않았다. 언제 그 바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를 지금도 그리워하지만, 아직도 그런 맛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티베트 여행을 마친 후, 칭짱열차에서 내렸던 북경의 바람은 너무 싫었다. 아직도 진저리가 처지는 바람이다. 더운 기운을 가득 안고 습기까지 머금은 바람은 지독한 도시의 냄새까지 품고 있었다. 끈적끈적한 바람이 앞이 보이지 않는 도시에서 얼굴로 밀려오는 바람은 숨을 멎게 했으며, 고산증으로 그리 고생했던 티베트로라도 돌아가고 싶은 바람이었다. 대신, 그와 같은 바람 속에 사람의 냄새가 가득 섞인 인도 바라나시 갠지스강의 바람도 있었다. 뿌연 안갯속에 매캐한 연기를 머금은 바람 속엔, 사람의 삶의 응어리가 깊게 배인 바람이었다. 강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사람의 심장을 멎게 하는데, 사람의 죽음과 영혼을 달래는 소리와 뒤범벅이 되어 생각을 멎게 하는 그런 바람이었다.

DSC01961.JPG 바라나시의 갠지스강

이런저런 바람을 만나고 하루하루를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오늘, 오늘도 시골집이 있는 골짜기에서 골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동네 전체가 계곡을 따라 아래쪽으로 향하며 울타리에 둘러싸인 것처럼 아늑해 보인다고 하여 '전하울'이라 하는 동네엔 나의 보금자리 '風留亭'이 있다. 전 동네가 아늑한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어 언제나 시원한 산 바람이 산에서 내려오고, 골짜기 곳곳에는 산나물이 지천인 동네이다. 동이 틀 무렵 산을 넘어오는 산 그림자가 길게 드리우면, 산새들이 마실을 다니는 곳, 언제나 골을 따라 물줄기가 그칠 줄 모르는 곳이다. 산을 넘어온 햇살 따라 긴 산 그림자 동네에 내려오면, 전하울의 작은 영화관이 문을 여는 동네이다. 새벽을 여는 닭소리가 산에 드리운 안개를 열어젖히면 덩달아 논길에 농부들이 등장하는 한 폭의 그림을 선사하는 아름다운 작은 동네이다. 거기에는 늘 시원한 산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오늘도 그칠 줄을 모른다.


살아오면서 수없이 만났던 바람들, 시원한 바람, 맛있는 바람, 싫었던 바람 등이 있었지만 언제나 잠깐의 만남이었고, 순식간에 이별을 해야 하는 바람들이었다. 맛있는 바람을 언제나 마실 수 없었고, 싫었던 바람도 언제나 만날 수 없었다. 언제나 잠깐만 만나야 했던 바람들이 그립고도 아쉬운 듯이, 나의 살아감도 잠깐의 순간 동안 소풍 오듯이 왔다가는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니던가? 시원한 바람이지만 영원할 수 없고, 싫은 바람이지만 영원할 수 없었으니 사람도 바람같이 살고 있다는 생각이었고, 그래서 언제나 바람처럼 살고 싶었다. 바람처럼 왔기에 바람처럼 살아가는 지금도, 바람이 불어와 잠깐 머무는 자그마한 집, '風留亭'에 몸을 맡기면서 바람마냥 살아감이 소중하고도 늘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